
영화 <공조2: 인터내셔널>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임윤아가 이번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엑시트> 이상근 감독과의 두 번째 호흡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관심을 모았다. 무엇보다 임윤아가 연기한 ‘선지’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귀여운 청춘의 얼굴이 아니라, 빙의된 악마의 웃음과 어린 소녀의 상처를 동시에 지닌 복잡한 인물이다.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저도 영화를 처음 보면서 ‘내가 저렇게까지 했었구나’ 싶더라”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자기 성찰을 동시에 드러냈다.
임윤아는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이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이상근 감독님과는 <엑시트>를 함께하면서 호흡이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 특유의 따뜻하고 묘한 색깔이 이번 시나리오에도 잘 살아 있었죠. 무엇보다 선지가 가진 서사와, 감독님이 뿌려놓은 떡밥들을 끝까지 회수하는 구조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관객들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할 장면 중 하나는 ‘악마 선지’의 웃음소리다. 레퍼런스가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참고한 건 없었어요. 감독님과 수없이 얘기하면서 만들어갔죠. 감독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시기도 하고, 제가 흉내를 내 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나의 웃음소리가 정착되면서 ‘악마 선지’의 톤이 잡히더라고요. 그게 기준이 되니까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이 작품에서 그는 사실상 ‘1인 3역’을 연기했다. “낮의 선지, 밤의 선지, 그리고 문양이라는 캐릭터가 표현하는 악마.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1인 2역 같지만, 저는 달랐어요. 진짜 악마를 연기했다기보다, 악마 코스프레를 한 소녀 문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상처와 외로움 때문에 더 큰 두려움을 내세우는 방식이랄까요. 그래서 무서움보다는 어린아이가 ‘나 무섭지?’ 하며 으르렁거리는 듯한 귀여움도 필요했어요”

그는 스스로도 대형 스크린에서 본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고 고백했다. “현장에선 몰입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사회에서 제 표정이 그렇게 클로즈업되니 ‘저게 나 맞아?’ 싶더라고요. 사실 그 순간순간은 선지로서만 살았기에 가능한 연기였던 것 같아요”
악마 선지의 연기를 준비하면서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 고민도 했냐고 묻자, 임윤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계산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이 캐릭터는 순수하게 개구쟁이처럼 보여야 했거든요. 그래야 후반부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득력이 생기니까요. 오히려 아이 같은 무심함이 더 중요한 지점이었죠”

촬영은 대부분 밤에 이뤄졌다. “생활 패턴이 바뀔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상근 감독님 작품은 늘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돼 있잖아요. 이번에도 인물이 많지 않은 대신,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었어요. 덕분에 밤에 촬영한다는 피로감보다, 선지라는 인물에 몰입하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코미디적 요소는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저는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관객분들이 웃어 주시면 정말 행복하죠. 그건 선지가 가진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도 그런 티키타카를 좋아하는 편이라, 촬영장에서도 자주 웃음이 터졌어요”

스타일링은 또 다른 화제가 됐다. ‘낯선지’는 차분한 생머리와 청순한 이미지, ‘밤선지’는 화려한 컬러와 파마머리로 극명히 갈렸다. “밤선지의 스타일링은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컸어요. 문양이는 20살 소녀지만, 100년을 살아온 존재잖아요. 그 사이 본 트렌드를 다 흡수해서 자기 취향대로 꾸민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화려함이 아니라, 꾸밈으로 외로움을 가린 소녀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치였던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화 속 이름들에 숨겨진 의미도 흥미로웠다. 임윤아는 직접 예를 들며 설명했다. “선지는 해(sun)의 선과 한자 땅 지를 합쳐 만든 이름이에요. 낮에 돌아다니는 아이, 밝은 아이란 뜻이죠. 반대로 문양이는 달(moon)에서 온 이름이고, 그래서 밤의 선지와 이어져요. 길구(안보현)는 ‘길을 구하는 사람’, 영식(신현수)은 ‘영혼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은 이렇게 무심히 지나가는 듯한 디테일에도 다 의미를 담아두세요.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생깁니다”

영화 속에서 인상 깊은 ‘폰폰쉬폰’ 빵도 빠질 수 없는 얘기였다. “실존하는 빵이 아니라 감독님이 상상해 만든 디저트예요. 현장에서 진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문양이라 그 빵을 집착하듯 먹는 모습은 악의라기보다는 장난꾸러기 소녀 같은 느낌이었죠”
액션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 다이빙 신이 대표적이다. “그 장면은 한 번에 촬영했어요. 다만 들어가기 전 포즈와 각도, 타이밍을 수없이 연습했죠. 감독님이 원하시는 그림이 나오도록 정말 여러 번 뛰어본 끝에 완성됐죠”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 이야기도 이어졌다. 안보현에 대해선 “겉으론 강인하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친근하다. 길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고 했고, 성동일에 대해선 “마치 오래 알던 분처럼 편안했다. 그냥 말 한마디만 해도 현장을 웃음으로 바꾸는 힘이 있더라”며 미소 지었다.
촬영 시기는 드라마 <빅마우스>와 <킹더랜드>와 겹쳤다. “쉴 틈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작품들이 나타난 시기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은 제가 원한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었어요” 주연 배우가 교체되며 제작이 지연되고 제목이 바뀌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담담했다. “저는 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개봉 시점이 늦어진 건 더 좋은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언론시사가 열린 CGV ‘윤아관’은 팬들과 자신에게 특별했다. “항상 이벤트를 준비해 주시는 팬분들 덕분에 힘이 나요. 제 이름이 걸린 극장에서 제 영화를 처음 공개한다는 게 너무 벅찼습니다”
조정석과 박정민 등 동료 배우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정석 오빠는 먼저 개봉을 했으니까 저한테 ‘잘 따라가라’며 응원해 주셨고, 정민 오빠는 <기적> 때부터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번엔 출판사 대표로 <악마가 이사왔다> 각본집을 만들어줬는데, 너무 예쁘게 나와서 감동했죠”
칸 레드카펫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주얼리 브랜드 행사로 참석했지만, 언젠가 작품으로 서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거기서 <악마가 이사왔다>의 해외 포스터를 처음 봤는데, ‘Pretty Crazy’라는 영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언젠가 진짜 제 작품으로 칸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연예인 임윤아와 인간 임윤아 사이의 간극을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얼굴로 살면 못 버틸 것 같아요. 저는 그때그때 제 본모습을 보여드리려 해요. 밝을 땐 밝게, 지칠 땐 차분하게. 18년 동안 활동하면서 제가 성장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야 팬분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걸어와 주실 수 있으니까요”
그는 가수와 배우라는 두 무대에서 동시에 호흡하며 감회도 남다르다고 했다. “인생의 반을 이 일을 하며 살았네요. 여전히 저희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 분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해요. 그래서 꾸준히, 후회 없이, 지금처럼 걸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특별히 제한은 두고 싶지 않아요. 밝은 캐릭터도 좋지만,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제 얼굴이 많습니다. 언젠가 새로운 장르와 톤으로 또 다른 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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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