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2주기, 세은 아빠의 다짐 "이름 없는 조의금, 사회에 돌려드릴 것"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 이태원 참사 당시 상황을 전하는 진정호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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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이는 집안의 막내로,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여행을 좋아하던 세은이는 항상 주변에 웃음을 주던 존재였다.
"세은이는 집안에서는 제 편이었어요. 엄마와 큰딸이 저에게 잔소리를 하면 세은이가 저를 위로해 주곤 했죠. 제가 운전할 때 졸까 봐 옆에서 계속 얘기해 주는 딸이었어요."
진씨는 딸과의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참사가 있던 날, 세은이와 언니는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며 집을 나섰다. 세은이는 이태원으로 언니는 홍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은 엄마가 TV에 속보가 뜨는데 아이들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데 1시쯤 전화가 왔어요. 세은이가 깨어나서 엄마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얘기한 거예요."
▲ 제주여행에서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진정호 씨 (사진제공 : 진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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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의사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혹시라도 필요할 수 있으니 지정 헌혈을 해놓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큰딸이 이런 사연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한 5분쯤 지났을까, 병원에서 막 쫓아오더라고요. 지정 헌혈 문의가 너무 많아서 병원 업무가 마비됐다고 연락처를 좀 바꿔달라고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날 세은이를 살리겠다고 지정 헌혈에 나선 이가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은이와의 이별은 막을 수 없었다. 병원으로 옮긴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솔직히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게 맞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무서웠어요. 아내와 큰딸을 다독이면서도 무서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어요. 한참 나이 어린 처남한테 무섭다고,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했어요."
▲ 시민들이 보낸 따뜻한 연대에 감사함을 전하고 있는 진정호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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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이를 잃은 마음을 달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저 세 식구가 의지하며 집안에 머무른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 기숙사 생활을 했던 세은이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도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친구 아버지를 만나 같이 울고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나눌 수 있었다.
▲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용산집무실 앞을 찾았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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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조금씩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뉴스고 뭐고 전혀 안 보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위험 신고가 계속 들어갔는데도 왜 경찰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사고 이후에 사고처리는 왜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같은 생각과 의문을 품은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 유가족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대통령이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행안부장관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시민단체 계신 분들, 변호사 분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맞아요. 그래서 국회에 요구를 하게 됐죠. 특수본에서 내놓은 결과는 그냥 공중 유체 현상이라는 말밖에는 없었어요. 누구를 기소하지 않겠다는 설명만 13장이고 누구를 기소한다는 말은 없었어요. 저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죠."
유가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는 처벌해달라는 요구를 하며 행진을 1년 반 이상 이어갔다. 진종오씨는 그동안 행진한 거리를 계산해 보니 500km가 넘는다고 전했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행진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반을 다니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고요. 이후에 다시 특별법이 통과됐고 특조위가 구성이 되었죠."
참사 당일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 지역에 많은 인파가 모였고 좁은 골목길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인파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안전 대책이나 인력 배치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고됐고 특히 경찰과 안전 요원의 수가 부족하여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일었다. 긴급 구조와 응급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했죠. 실제로 경찰도 용산구청도 몇십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니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식 문서도 있어요. 그런데 다들 설마 했다는 거예요. 그날 최초 신고가 6시 34분에 있었는데 그 뒤로도 계속 신고전화가 들어왔어요. '긴급 레드'가 계속 떴는데 왜 현장에 안 갔냐고 물어보면 그냥 관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인근 파출소 옥상에서 현장이 다 보여요. 그리고 한 50m 거리에 소방서가 있어요. 참사가 일어났는데 거의 2시간 동안 뭘 한 건가요?"
진씨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위험신호가 계속 뜨는데도 괜찮겠거니 하고 넘긴 안일한 인식이 사고를 불러온 셈이다. 매년 배치했다는 안전요원은 왜 하필 그때는 없었을까, 왜 구청과 경찰은 위험상황을 예측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의구심과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 이태원 사고 재난심리지원 현장상담소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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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읽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많아요. 분향소를 지킬 때 어떤 분들이 지나가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일이 있어요. 그래도 그냥 넘기는데 댓글은 정말 아프더라고요. 언론사에도 관련 기사에는 댓글 창을 닫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렇게 해주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어요.
▲ 딸 세은과의 즐거운 순간 (사진제공 : 진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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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 덕분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죠.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 분들은 저희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씀하셔요. 뭐가 미안한가 물으면 제대로 세월호 참사 문제를 해결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어요. 그런데 오송 참사가 일어나는 걸 보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어요."
"26일에는 서울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열려요. 그날 이태원역에서 4대 종단에서 기도회를 해주기로 하셨어요. 기도회가 끝나면 대통령실 앞으로 해서 서울시청까지 행진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함께해 주시면 좋겠어요."
진씨 가족은 매주 세은이가 잠들어있는 옥천을 향한다. 세은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는 서로를 지키고 의지하며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세은 아빠 진정호 씨는 "우리는 평범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은평주민이고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가슴 아프게 바라보던 보통 시민이었다"라며 "참사는 어느 날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 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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