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인간·지구 위협”… 테이블 오른 ‘식물성 대안식품’
“‘먹는 것’이 인간과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내연기관차가 전기차 중심으로, 담배가 전자담배 중심으로 변화했듯이 식품 역시 식물성 대안 식품으로 성장의 축이 변화하고 있다.”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이사가 국내외 푸드테크 전문가 4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미래 식품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2024 헬시 이노베이션 콘퍼런스 서울’ 행사가 2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콘퍼런스는 세계가 주목하는 최첨단 대체 단백질 기술과 혁신적인 푸드테크에 관한 통찰력을 공유하는 장으로, 서울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관사는 아랍에미리트(UAE) 기반의 글로벌 투자사 하이타이(HiTi·Healthy Innovations Technology Investment) 펀드다. 앞서 지난 2월 UAE 두바이에서 제1회 콘퍼런스가 열렸다. 당시에도 생명공학과 식물 기반 및 배양 식품 산업 등 푸드테크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5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활발한 토론을 펼쳤다.
신세계푸드는 CJ제일제당과 함께 푸드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 업체다. 송 대표는 “식물성 대안 식품 시장도 기존의 식품 회사가 끌고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세계푸드는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베터 푸즈(Better Food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타깃은 ‘비건(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이 아니다. 송 대표는 “동물성 식품을 자주 즐기는 소비자들이 콜레스테롤이나 동물성 지방 등에 대한 걱정 없이 본연의 맛과 식감을 즐길 수 있도록 식물성 재료를 토대로 건강 기능 성분을 강화하고 약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 식품은 크게 3가지다. 기존에 먹고 있는 동물성 가축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더 건강한 고기를 먹는 것과 식물 위주의 식품과 세포 기반의 식품을 말한다.
세계가 푸드테크에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푸드테크는 말 그대로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식품과 농림축수산업 등 연관 산업에 정보통신 기술이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을 접목해 신시장을 개척하는 기술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와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푸드테크 시장은 2022년 2600억 달러(약 338조원) 규모지만, 오는 2028년이면 3600억 달러(약 468조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2034년이면 5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화로 약 700조원에 육박한다.
특히 과학, AI, 로봇 기술에서 전문성을 가진 한국은 글로벌 푸드테크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레이먼드 셰플러 하이타이 펀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UAE는 바이오테크나 식품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한국은 문화·기술적으로 풍부하고 지식도 넘치는 데다 중동 지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푸드테크 혁신 전략’을 통해 내년까지 1조원 이상을 투입해 푸드테크 기업의 연구·개발(R&D)과 글로벌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푸드테크 전문가들의 공통 관심사는 대체 단백질 기술의 진화다. 식물 단백질, 세포 배양 육류, 곤충 단백질 등 다양한 혁신의 결과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점차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인 농축 산업이 지고 있는 부담과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동시에 줄이고 다양한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그레고리 옙 CJ제일제당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리 식품 산업의 모든 시작점은 소비자의 통찰, 소비자의 기대에서 출발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로 식재료, 공정, 패키징(포장)을 꼽았다. 그는 “대체 단백질은 더욱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한 소비자의 니즈와 부합해 우리도 제품 개발의 옵션으로 적극 활용 중”이라면서 “공정에서는 제품을 어떻게 스케일업(규모를 키우는 것) 할 것인가가 중요하며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가장 먼저 보는 포장이 식품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져야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푸드테크 산업이 단순한 먹거리 제공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협업과 투자 확대, 규제 완화 ‘삼박자’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앤디 징가 전 EIT 푸드 CEO는 “유럽연합에서는 식품 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규제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푸드테크 규제 측면에서 보면 싱가포르가 가장 모범적 사례 지역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그는 “규제는 수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싱가포르는 전기차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 이를 식품 산업 규제 완화에 적용하며 언행일치를 보이는 주요 시장”이라며 “대체 단백질의 중요성을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셰플러 CEO는 “좋은 아이디어가 넘치고 과학자는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할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단계에서 추가로 스케일업 능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훈 디캠프 CEO는 “푸드테크도 밸류체인 전반에 산재한 문제가 많은데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구인 AI가 주어졌다”면서 “AI를 활용해 난제를 해결해나가면 산업을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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