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국민 MC”… 오랜 생활고 고백한 미남 방송인의 정체

‘원조 미남 MC’라 불리며 브라운관을 누비던 정재환을 기억하시나요?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1980~1990년대, 그는 ‘청춘행진곡’의 진행자로 활약하며 심형래·임하룡·주병진과 함께 국민 MC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훤칠한 외모와 단정한 말솜씨로 당대 청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었죠.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는 긴 무명과 생활고가 있었습니다.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1979년 개그듀엣 ‘동시상영’으로 데뷔했지만, 미남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코미디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고, 8년 가까운 무명 시절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받던 출연료는 회당 1만 8천 원, 한 달 합쳐도 7만 2천 원에 불과했습니다.

쌀이 떨어져 집에 돌아와 막막했던 날, 연탄이 없어 추위를 버텨야 했던 겨울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고백했죠.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인기가 찾아온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받은 프로그램 출연료가 250만 원이었다”라고 그는 털어놨는데요.

당시 배철수로부터 “인기 있을 때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남발하지 마라”라는 조언을 받아, 돈을 쫓기보다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그만큼 생활은 넉넉지 않았습니다.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그러나 바로 그 경험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방송 언어는 정확해야 하는데 내가 우리말을 잘 모르더라”는 자각 끝에, 마흔 살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고, 이후 대학원과 박사 과정까지 이어갔습니다.

방송인에서 역사학자, 그리고 한글 지킴이로의 반전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이제 정재환은 학자로서 10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서며 한국사와 우리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한국어의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죠.

출처 :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방송인으로 시작해 개그맨, MC, 그리고 학자까지.

여전히 무대 위에 서는 대신 강의실과 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정재환.

세월이 흘러도 그는 변함없이 ‘말’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앞으로 행보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