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특별지시로 납북됐는데.. 상류층 대접 받으면서 영화 제작한 부부의 최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 최은희와 신상옥

1982년 4월, 정부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는 발표를 한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배우 최은희와 감독 신상옥이 북한에 납북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4년 전, 1978년에 납북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이혼 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던 중이었다.

영화 합작 제안을 받아 홍콩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예고 없이 북한으로 끌려간다. 김정일의 지시였다.

당시 김정일은 영화에 집착할 정도의 관심을 가진 인물로, 최은희를 북한 영화 발전을 위한 ‘필요한 존재’로 여겼다.

“납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위원장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내가 슬퍼하니까 ‘최 선생, 나 좀 보시오.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고 해 웃지 않을 수 없다”고 납치 당시를 회상했다.

신상옥/김정일/최은희

신상옥은 납치된 전 아내를 찾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다가 같은 방식으로 북한으로 끌려간다.

이후 두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붙잡혀 수용소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김정일/최은희/신상옥

단식 끝에 기절한 후 ‘반성문’을 계기로 최은희와 재회했고, 두 사람은 김정일 앞에서 다시 부부가 되었다.

그곳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하게된다.

김정일, 영화에 미친 독재자

김정일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여겼다. 수만 편의 영화를 수집했고, 영화 제작 이론서까지 집필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의 영화는 반복적이고 도식적인 내용에 그쳤고,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남한의 영화인 납치’라는 발상이었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에게 영화제작사 ‘신필림’을 다시 세우게 했고, 영화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기차 충돌 장면이 필요하다 하자, 달리는 기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실어 폭파하게 했고, 바람을 찍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했다.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

북한에서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사랑 사랑 내 사랑' 등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고,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타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정일은 이 결과에 무척 만족했고, 부부에게 해외 여행까지 허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북한이 아닌, 자유를 원했다.

8년 만의 탈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영화제 참석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감시를 피해 미국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에 성공한다. 8년 만의 탈출이었다.

이들은 이후 미국에서 북한 체류 당시를 녹음한 육성 파일을 공개했고, 그 속에는 김정일이 납치를 직접 지시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2000년,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상옥은 2006년 세상을 떠났고, 최은희는 2018년 4월 16일, 9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유해는 각자의 생을 함께했던 기억을 안고 한국 땅에 남았다.

신상옥은 한때 최은희를 배신했고, 최은희는 그런 신상옥을 떠났지만 결국엔 다시 함께였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 기대었고, 영화를 만들며 생존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이들의 선택을 두고 ‘자진 월북’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녹음된 테이프 속 김정일의 육성이 모든 의문을 지웠다.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진 시절이었다.” 그리고 “잘 대해줬지만, 원망의 감정을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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