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으론 먹을 게 없다"…'도시락파' 된 직장인 여기 간다

“점심에 밥 사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 1만5000원 이상 쓰는 경우도 많아요. 식비가 부담돼서 요즘엔 점심 약속을 잘 안 잡고 혼자 간단하게 해결해요.”
서울 종로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3년 차 회사원 박모(30)씨는 최근 점심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는“입사 초기엔 친한 직장 동료와 점심시간에 맛집을 찾아다녔는데, 요즘엔 식비 지출이 너무 커 약속을 줄이고 있다”라며 “냉동 볶음밥 등으로 도시락을 싸 오거나, 편의점이나 분식집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외식 물가가 오르며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이 심화하자 저렴한 간편식이나 구내식당을 찾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편의점 등 유통 업계는 도시락과 가정간편식(HMR) 제품군 확대에 나섰다. 구내식당에 위탁 급식을 운영하는 급식 업체들도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1만원으론 먹을 게 없다”
푸드테크 기업 식신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국 직장인이 점심시간(오전 11시~오후 2시)에 쓴 평균 식대는 1인당 1만37원으로 전년 동기(9923원) 보다 올라 1만원을 돌파했다. 직장인이 자주 찾는 주요 메뉴 가격도 1만원을 넘었다. 한국소비자원의 외식비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주요 8개 외식 메뉴 가운데 1만원 미만 메뉴는 김밥(3462원)·자장면(7308원)·김치찌개(8192원)·칼국수(9308원) 등 4개뿐이었다. 지난 2019년 9월 1만원 미만이었던 냉면(9577→1만1923원)과 비빔밥(9115→ 1만1038원) 가격은 3년 만에 1만원을 넘었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도시락파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점심값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도시락 싸기, 편의점 이용하기, 커피·디저트 줄이기 등이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자취하며 직장을 다니는 김모(28)씨는“식비를 아끼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을 자주 먹는데, 간편하면서도 맛있어서 좋다”라며 “퇴근길에도 편의점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사 가는 날도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편의점 간편식 매출은 크게 늘었다. 지난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시장조사업체 마켓링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편의점의 대용식 매출은 지난 2022년 상반기 대비 17.6% 성장해 편의점 전체 매출 증가율(3.6%)을 웃돌았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밥값 부담이 커지며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라며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점이 외식을 대체하는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편의점 업계는 인기 제품을 리뉴얼(재단장)하고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제품군 확대에 나서고 있다. CU는 27일 세계 미식여행 콘셉트의 HMR 브랜드 ‘헤이밀스’를 론칭하고 멕시칸 옥수수 덮밥, 마파두부 덮밥 등 신제품 4종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엔 GS25가 누적 판매 3500만 개를 돌파한 인기 제품 ‘혜자도시락’을 리뉴얼한다고 밝혔다. 이마트24는 지난 10일 라면과 밥을 결합한 도시락 ‘토핑라면정식’을 출시했고, 세븐일레븐은 지난달 22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도시락 시리즈 ‘맛장우도시락’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편의점과 함께 구내식당을 찾는 직장인도 늘었다. 식신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구내식당 이용자 비중은 30%로 전년 동기(22%)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하모(33)씨는“회사 구내식당은 가격이 4000원으로 저렴하고 밖에서 먹는 것만큼 맛있어서 자주 이용한다”라며 “외부 식당으로 나가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더 걸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빠르게 해결하고 남는 시간엔 쉬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고물가에 불경기가 이어지자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지출하는 식비는 작은 인상에도 부담을 크게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급식 업체들은 이렇게 찾아온 고객을 계속 잡아두기 위해 분주해졌다. 우선 인플루언서나 유명 외식 브랜드와 협업으로 트렌디한 메뉴를 빠르게 제공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22일 방송인 정준하·이봉원과 함께 구내식당을 방문해 직접 만든 요리를 제공하는 ‘셀럽테이블’ 시즌 4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부터 진행된 이 이벤트는 여경래·이원일·정호영·오세득 등 유명 셰프들과 함께 100회 이상 이어졌다.

CJ프레시웨이는 지난 10일 디저트 카페 ‘노티드’와 협업해 전국 급식장에 ‘노티드 미니 시그니처 우유 생크림빵’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아워홈도 지난 4월 일부 구내식당에서 한국에 진출한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의 대표 메뉴를 제공해 화제가 됐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구내식당은 외부 음식점들과 경쟁하면서, 과거의 단체급식 이미지를 벗고 음식 수준이 꽤 높아졌다”라며 “구내식당을 찾은 직장인 고객들이 만족하도록 화제의 외식 브랜드와 협업 등 여러 시도를 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글 뗐다? 착각 마라” 서울대 교수가 찍은 ‘문해력 골든타임’ | 중앙일보
- 김수미 "제 유골은 국립묘지로"…사망 두 달 전 뜻밖의 유언 | 중앙일보
- "돈 빌릴 땐 오전엔 가지 마라"…대출의 신이 픽한 은행 2곳 | 중앙일보
- 이홍기 또 최민환 감쌌다…"성매매 업소 아니라면? 책임질 건가" | 중앙일보
- 주6일 근무 부활할까…임원 신호탄, 파격 결정 대기업들 어디 | 중앙일보
- [단독]빈소서 한동훈 만난 MB "불편했지만…재집권 위해 朴지지" | 중앙일보
- 천우희 손때 묻은 모자 뭐길래…새벽 4시 오픈런, 7시간 줄섰다 [위아자 2024] | 중앙일보
- 5년 만에 '1억에서 20억'…벽에 붙인 바나나 깜짝 정체 | 중앙일보
- 대북제재에 '파병금지' 없다…북한군, 러 전선 투입 초읽기 [view] | 중앙일보
- "정년은 65세, 노인은 70세 적당"…불 붙은 연령 경계선 대이동 [임계점 온 노인 기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