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인 (7) 간절한 기도 하나님 응답… 장학생으로 경기대 입학
‘대설가’ 꿈 접을 위기 한 절에서 기도
다시 오 선생 찾아가 전후사정 얘기
정태영 국문과 교수 만나 대학 생활 시작

김동리 선생은 다시 한번 내 아래위를 살펴보았다. 사람 됨됨이를 관상으로 읽는 것 같았다. 나는 자세를 바로 가다듬고 웃는 모습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
“내년에 신춘문예 당선하면 그때 와보거래이….”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내년까지 공돌이 신세로 서울 타향살이하는 눈치를 보였다가는 시골 정미소 애머슴으로 가게 될 게 뻔했다. 내가 꿈꾸는 대설(大說)도 중도에 끝나게 되는 게 가장 싫었다. 당시 나는 소설을 대접한답시고 대설이라고 나 혼자만의 은어를 쓰며 소설을 높여 불렀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동소문동 3가를 막 지나갈 때 ‘OO精舍(정사)’라는 간판이 덩그러니 달린 절이 눈에 띄었다. ‘옳다구나. 여기가 내 기도처구나’ 하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빡빡 민 승려가 문간 의자에서 지키고 있다가 나에게 물었다.
“어쩐 일로 왔는가.”
“예, 기도하러 왔는디유.”
그는 눈빛으로 허락했다.
‘예수님, 김동리 교수가 제가 대학에 외상 입학하는 것을 거절했는데 제 앞길을 환히 열어 인도하셔서 좋은 대학엘 꼭 가게 해주시유. 제 처지와 환경에는 ‘머슴주의보’가 내려져 있습니다. 제가 절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명한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뽑아 올린 기도는 정말 효험이 있었는지 기분이 좋아졌다.
‘재인아, 너 시골에 내려가면 머슴으로 잡혀가고 대설가의 꿈도 말짱 도루묵이니 다시 오영수 선생님에게 가보거라. 희망과 기도는 쉽게 응답되기도 하지만 오래 걸리기도 하는겨.’ 이런 환청 속에 나는 오 선생님의 집으로 갔다.
“김동리 선생이 뭐라카던가.”
“외상 입학은 안 되고 내년에 당선되면 오라고….”
“그 봐라. 데뷔라는 관문이 있능기라. 그걸 뛰어넘어 입학시켜 줄 사람이 아닝기라. 이걸 어쩐다.”
오 선생님은 곰방대에 담배를 채우면서 “게 경기대에 수필 쓰시는 교수가 내랑 친하니까 거기 가보거라. 가만있자, 좀 기다려 보게.”
오 선생님은 자신의 명함 뒷장에 초서 달필로 휘갈겨 썼다. 아마도 가정이 어려우니 등록금 면제하는 쪽으로 입학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을 거라고 오늘날까지도 추측하고 있다. 나는 명함 한 장을 달랑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손에서 땀이 나와서 명함이 자꾸 눅눅해졌다.
그 명함에 오 선생님이 쓰신 잉크가 얼룩진 사연을 단번에 읽은 정태영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학과장이 말씀하셨다.
“자네가 글을 쓴다고? 학보사 기자를 뽑는다니 내가 거기에 추천해 주지. 하루이틀 후에 내게 전화를 주게나.”
나는 등록금 중 수업료가 면제되는 장학생으로 특별 입학하며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절에서 내 기도는 간절했고 순수했다. 오늘날 생각하면 장소는 잘못됐는지 몰라도 기도의 대상만큼은 부처님이 아닌 하나님이었고 나는 오늘까지도 그것을 진솔하고 솔직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믿고 있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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