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명 제자 이름을 불러준 선생님... "김춘수님의 '꽃'처럼요"
[최미향 기자]
▲ 프랑스어 한춘우 교사 |
ⓒ 한춘우 |
온몸의 근육이 굳어 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래 '사랑의 찬가'를 에펠탑 위에서 불렀고,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하고 부르는 그녀의 '사랑의 찬가' 열창에 눈물을 흘리며 전율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샹송이 들리거나, 프랑스어가 보이면 마음이 설렌다는 한춘우 교사.
"물론 많은 분들도 그랬겠지만, 셀렌 디온의 등장부터 모든 것이 저에게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프랑스어에 애정을 갖고 있는 저는 남들보다 더 감동을 느꼈던 것 같아요."
프랑스어에 대한 발음의 규칙성, 문법 규칙, 단어의 어원 등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 그녀는 36년 지기 전 충남 서령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였고, 퇴직 후에도 여전히 서산문화원에서 '프랑스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프랑스어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겠다는 한춘우 교사. 지난 20일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방금 생각한 건데 제게 프랑스어는 '사랑스런 동반자'"라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 예전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불문학과에 등록할 정도로 인기 많았다고 들었다. 선생님은 당시 주변의 권유로 프랑스어를 전공했는데 고민은 없었나?
"고민이 없을 정도로 2학년부터 듣게 된 불문학 강의가 기대 이상이었다. 훌륭한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문학 강의는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프랑스어를 잘 몰랐던 나는 원서와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문학작품을 읽고 분석했는데, 그 과정도 재밌을 뿐만 아니라 언어 자체에도 매력있었다.
▲ 서령고 재직 중 수업 사진. |
ⓒ 한춘우 |
"서령고는 남학교다. 여교사가 거의 없어서 관심을 좀 받지 않았나 싶다(웃음). 여기다 나의 노력의 대가도 한 보탬이 됐다. 우선 내가 가르치는 400여 명의 학생 이름을 모두 외우려고 노력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출석부에 붙은 사진을 복사해놓고 쉬는 시간마다 이름을 가리며 외웠다.
학생 때 얌전하기만 했던 한 제자는 고등학교 3년 다니면서 자기 이름을 기억하여 불러준 선생님은 나밖에 없었다고 졸업 후 손편지를 보내왔다. 수업 중에는 모든 학생의 얼굴을 골고루 쳐다보려고 애썼다. 재밌는 것은 당시 감시 당한다고 생각했는지 '졸지도 않는데 왜 자꾸 쳐다보시냐'고 따지듯 질문한 학생도 있었다(웃음).
또 비결 중 하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꼈던 많은 경험담과 함께, 43일간의 프랑스 연수에서 나누었던 현실감 있는 대화 내용을 회화 수업에 적용한 것이다. 당시 학생들의 호응이 확연히 달랐었다.
졸업 후에 제자들이 나를 기쁘게 해줬던 말은 '프랑스어도 좋았지만, 선생님 삶의 철학 얘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였다."
- 당시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1999년부터 도입된 교육과정이었다. 일본어, 중국어 등과 함께 제2외국어 과목 중 한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일본어 쪽으로 대거 몰렸다. 프랑스어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수강자가 많지는 않았다.
▲ 프랑스 연수(1990년) |
ⓒ 한춘우 |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 중 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다양한 교과가 선택되더라도 교사 수급문제가 뒤따른다. 해마다 달라지는 수요에 맞추어 교사를 미리 선발해둘 수도 없고, 순회교사제도를 활용하더라도 학생지도나 평가 등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프랑스어 교사의 경우는 아주 오랫동안 교원임용시험조차 없어서 신규발령이 단절된 상태다. '불어교육'을 전공한다는 것은 교사가 되기 위함인데 정작 교원임용시험이 없다면 학생들의 진로는 막혀버리는 거다.
이런 제도적인 결함 때문에 대학에서도 모집중단이라는 조처를 내린 것 같다. 다행히도 2021년도에 교사협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듬해 프랑스어 교사 채용시험이 부활되긴 했지만, 그 숫자는 전공한 학생 수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프랑스 문화(문학, 예술, 역사 등)를 통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프랑스어를 잘 구사해서 프랑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할 확률은 그리 높지가 않다.
게다가 요즘은 번역기도 훌륭하다. 더욱 크게 보아야 할 것은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배움으로써 유연한 사고, 타인에 대한 배려,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 등 사고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거다.
▲ 서산문화원에서 프랑스문화 강의 . |
ⓒ 한춘우 |
"솔직한 심정으로 여기서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은 쉽게 들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니, 폭발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낯설어서 그런지 나중에는 인원이 부족하여 폐강될 줄 알았다. 간신히 살아남긴 했지만(웃음). 수강생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처음에는 '프랑스문화'라는 강의 제목이 부담된다고 느꼈는지 인원이 쉽게 채워지지 않아 폐강되는 줄 알았다. 아는 후배에게 강의 신청 좀 하라고 했더니 한국문화도 모르는데 무슨 프랑스 문화를 배우냐며 도망가더라(웃음).
수강하시는 분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준은 상당히 높으시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일반인들이라 듣기 어려워하시면 더 쉬운 내용으로 전환하려고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을 정도였다. 재밌게 강의를 들으시면서도 준비해간 내용을 척척 소화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랑스문학'을 주제로 강의한 날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어렵기도 해서 재미없어하시겠구나' 생각했다. <어린 왕자>를 시작으로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얘기까지 했는데 뜻밖에도 수강자들의 관심과 호응이 매우 높았다. 더 놀라운 것은 전체 강의 중 가장 흥미 있었던 부분을 '프랑스문학' 시간으로 꼽을 정도였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평소에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진다. 어떤 일을 할 때 '이유'가 분명해야 추진도 잘되고 재미도 있다. 이 습관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매우 유익하게 쓰였다. 가령, 학생들에게 갑작스런 질문을 받아도 소신 있는 답변을 막힘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물론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그건 하늘의 몫이라 생각한다.
▲ 제자들과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운동도 하는 한춘우 교사 |
ⓒ 한춘우 |
"졸업 후에 학생들이 찾아온다는 것은 재학 중에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추억, 또는 고마움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 이름을 기억해준 선생님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경우는 거의 그런 것 같아요. 누구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 같아요. 김춘수님의 '꽃'처럼요.
저는 우연히 제자를 만났을 때 먼저 아는 체를 하기도 해요.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먼저 인사해주길 바랄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랑스 낭시고등학교에서 한때 국어 교사로 재직한 프랑스의 거장 '에릭 로메르'는 인간이 지닌 여러 문제를 녹여 내어 많은 사람에게 사색과 성찰의 기회를 줬다. 이처럼, 한춘우 교사의 지나온 발자취도 조금은 에릭 로메르를 닮아있다.
프랑스어라는 교두보로 제자들과 함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는 그녀의 웃음이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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