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자폐증' 정보부대도 있다…이스라엘 '1000 vs 0' 승리 비결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34년간 이끌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으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내부 정보를 어떻게 획득했는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신은 이스라엘 시긴트(신호 정보) 담당 8200부대, 이스라엘군 정보국 아만, 시각적 이미지에서 정보를 얻는 9900부대 등에 주목했다.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헤즈볼라의 반격에도 이스라엘인은 단 한 명도 사망하지 않은 건 양측 정보 역량 등의 격차가 가져온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스랄라 암살 세 번 실패 후 정보수집 재조정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34일간 전쟁 당시 나스랄라를 암살하는 데 세 번이나 실패한 뒤 헤즈볼라에 대한 정보 수집 방향을 대폭 조정했다. 군사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적 영역, 이란 혁명수비대와의 관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의 관계까지 샅샅이 살폈다.
특히 8200부대와 아만은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8200부대는 컴퓨터 분야에 특화된 이스라엘의 상위권 고등학교 인재들이 지원하는 곳으로, 적들이 보내는 유무선 신호를 가로채 군사정보를 뽑아낸다. 아만은 해외 담당 모사드, 국내 담당 신베트와 다른 군 정보기관으로 8200부대 뿐 아니라 휴민트(인적 정보망) 담당인 504부대, 최첨단 기술 장비를 맡는 81부대가 아만 소속이다.
돌파구를 마련한 건 2012년 헤즈볼라가 시리아에 조직원을 파견했을 때다. 알 아사드 정권은 이슬람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가 주축인데, 역시 시아파인 헤즈볼라와 동맹 관계였다. 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헤즈볼라 대원들이 파견됐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전역에서 반군과 전투를 벌였다.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헤즈볼라는 시리아 정부군 뿐만 아니라 부패로 악명 높은 시리아 정보 기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던 러시아 정보 기관 등과 접촉하면서 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이들을 감시하던 이스라엘과 미국 정보기관은 물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의 중동연구소 프로그램 디렉터인 란다 슬림은 “헤즈볼라가 시리아로 활동 무대를 넓히자 (헤즈볼라) 내부 통제 메커니즘이 약화되고 (이스라엘 등이) 대규모로 침투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고 평했다.
포스터·장례식도 정보…9900부대, 시각이미지 분석
헤즈볼라가 정기적으로 사용한 ‘순교자 포스터’ 형태 부고도 이스라엘 측엔 정보 원천이었다. 사망한 헤즈볼라 대원이 어느 마을 출신인지, 어디서 죽었는지, 친구들이 부고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는지 파악 가능했다. 또한 이들의 장례식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고위 지도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 이스라엘 입장에선 흔치 않은 기회였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정찰 위성과 드론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사이버 해킹 기술로 헤즈볼라 관련자들의 스마트폰을 도청해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의 9900부대는 테라바이트 단위로 시각적 이미지를 조사해 사소한 변화까지 찾는 알고리즘을 작성했다. 예컨대 길가, 터널 통풍구의 콘크리트 보강재를 식별해 급조 폭발물, 지하 벙커를 찾아내는 식이었다. 9900부대는 일반인들은 알아채기 어려운 미묘한 변화를 판독할 수 있는 천재 자폐증 병사들이 위성사진 판독 등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헤즈볼라 대원을 파악하면 그의 일상적인 모든 움직임 패턴을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했다. 아내의 휴대폰, 자동차의 주행 거리계나 위치 장치에서 빼낸 정보 등도 포함됐다. 9900부대는 해킹한 CCTV 카메라, 심지어 TV 리모콘의 마이크에 포착된 목소리까지 활용해 신원을 구별했다고 한다.
그렇게 감시 대상 요원의 일상적인 움직임이 평소와 달라지면, 이스라엘 정보 장교가 조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국경 인근에서 이스라엘군을 공격하려던 2~3명의 헤즈볼라 대전차 분대 지휘관을 식별할 수 있었다. 이들의 일정을 모니터링해 공격을 앞두고 갑자기 소집됐음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정보활동을 통해 이스라엘은 수년간 표적을 파악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공습 첫 3일간 이스라엘 전투기가 표적 3000곳 이상을 타격할 수 있었다.
1982년 헤즈볼라의 신베트 폭파 설욕
헤즈볼라도 1982년 레바논 티레에 있던 이스라엘 첩보기관 신베트 본부를 폭파하는 데 성공하는 등 상당한 정보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측의 드론을 해킹해 이스라엘군의 목표를 사전에 파악하는 걸 뒤늦게 알아챈 이스라엘은 각종 해킹 기술을 갖췄다.
이스라엘의 지난 두 달 간 헤즈볼라에 대한 공세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이를 두고 영국 가디언 등은 이스라엘이 수년간 정보 역량을 가자지구보다 레바논과 이란에 집중해왔다고 전했다.
27일 나스랄라 사망 직후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스라엘 측이 나스랄라와 다른 지휘관의 회동 사실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은 27일 공습 전에도 나스랄라의 소재를 파악 하고 있었다는 게 이스라엘 관리의 전언이다.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원하겠다며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기 시작한 후 군정보국 아만이 나스랄라의 위치를 파악하고 전투기를 이륙시켰으나, 백악관은 전쟁 확대를 우려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습 취소를 요구해 무산됐다고 익명의 이스라엘 관리가 FT에 전했다.
그러다 네타냐후 총리와 장관들은 나스랄라 사망 이틀 전인 지난 25일 나스랄라 제거 작전명인 ‘새 질서’(New order)를 논의했다. 이 자리엔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데이비드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 로넨 바르 신베트 국장,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도 참석했다. 모사드는 지난 17·18일 레바논의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 폭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일 가디언은 프랑스 매체인 르파리지앵을 인용해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이 공습한) 벙커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린 첩자는 이란인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해당 매체는 정보 출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헤즈볼라, 이스라엘 과소평가·이란 과대평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6일 이후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19일 이후 헤즈볼라의 공습으로 이스라엘인은 단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배경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과소평가하고 이란과 연합군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WSJ은 “헤즈볼라가 오만의 희생양이 된 반면 이스라엘도 이제 비슷한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특히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상 침공을 시작하고 레바논의 정치 구성을 재편하려 시도할 경우 그렇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근거로 나스랄라와 고위 지휘관이 죽었지만 헤즈볼라는 여전히 전투로 단련된 전사들과 레바논 요새의 준비된 지형에 대규모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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