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시서 시집온 '연지곤지 양평댁'...신혼여행은 가평 가요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 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 여러분의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이 또한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될 겁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
경기도 양평의 어느 산자락 아래 항아리가 많은 집에 새 식구가 생깁니다.
그 항아리 많은 집은 십여 년 전 하늘로 먼저 가신 아빠의 뜻을 이어 엄마와 남동생이 살뜰히 지켜온 터입니다.
된장과 간장 내음이 퍼져 나가는 이곳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참 많은 사람이 좋은 추억을 가진 곳이기도 하지요.
그 터에서 남동생과 평생을 함께할 친구가 백년가약을 맺는 결혼식이 열립니다.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동생은 기꺼이 그 일을 선택했고,
새 친구 또한 그 일을 함께하기를 다짐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 자신들이 가꾸어 나갈 항아리 사이에서 전통혼례를 올릴 모습을 그려보니 참 예쁘고도 뭉클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백발이지만 소녀 같으신 외할머니,
누구보다 지혜로운 엄마,
우리 부부와,
새로 하나가 되는 남동생 내외의 인생에 기억될 또 하루의 기쁜 날을 기록하고자 사연을 보냅니다.
김효임 드림.
결혼식 날을 택해 가족을 찾아갔습니다.
이왕이면 가족이 다 모이는 날,
모두가 행복에 겨운 날,
전통 혼례복을 입은 모습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릴 요량이었습니다.
막 도착하니 가족사진 촬영 중이었습니다.
연신 웃는 신랑 신부와 가족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채였습니다.
신랑 신부가 친구, 동료와 사진을 찍을 때 사연을 보낸 효임씨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 “여기 장독이 정말 많네요. 이게 다 아버지께서 꿈꿨던 결과인가요?”
A : “네. 원래 아빠가 어릴 때 인천에 사실 때부터 농부가 되는 게 꿈이셨대요. 인천에서 다른 일을 하시다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양평으로 이사를 다 같이 왔어요. 처음부터 농사를 지으신 건 아니고 양로원에 살았어요. 어르신들이랑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 생활을 좀 했어요. 그러니까 어르신들에게 봉사하시다가 동네에 정착하신 거죠.”
Q : “농사를 지으려고 정착하신 건가요?”
A : “네. 원래 항아리가 있는 이 자리가 비닐하우스가 있던 자리인데 당시 태풍에 다 날아갔어요. 이후 여기에 어머니랑 황토집을 짓고 메주를 만들기 시작하셨죠. 원래는 호박, 고추 이런 작물을 하셨는데 좀 어려웠나 봅니다. 그러면서 돌파구를 찾은 게 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농사지으실 때부터 친환경을 많이 생각하셨어요. 자연을 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계신 터라 아버지뿐만 아니라 동네 분들도 함께 유기농을 하게끔 했죠. 여기서 유기농을 하려면 땅 자체도 유기농이어야 하니 아빠가 여기를 계속 그 방향으로 발전을 시키셨었죠. 그게 20여년 전이네요.”
Q : “여기 장독 중에 마을 분들이 기증하신 것들도 있다던데요.”
A : “맞아요. 아버님을 동네 분들이 좋아하셨어요. 저희에게 장을 가르쳐 주신 것도 동네 분들이고요.”
Q : “그런데 아버님 어쩌다가 꿈을 다 못 이루시고….”
A : “겨울이었는데 아침에 못 일어나셨어요. 동생이 군대가 있었을 때였거든요. 전 서울에 있었고요. 갑자기 그렇게 아빠가 가시고 나니 엄마는 장 만드는 일을 접으실까 하셨더랬어요. 일단 시작한 거니 마무리는 하셔야 되겠다는 생각에 거의 한 4~5년을 혼자 하셨어요.”
Q : “그러면 동생은 언제부터 이 일을 한 겁니까?”
A : “제대하고 자기 일 하고 싶다며 나가서 일했죠. 그러다 4~5년 전 자기가 이어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나 봐요. 대견하죠. 그런 생각을 했다니….”
Q : “그런데 오늘 결혼한 신부도 대단한 거 아닙니까? 젊은 사람이 힘든 일 하려고 나서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A : “저도 그래서 처음에는 되게 놀랐어요. 이런 걸 하겠다고 여기에 들어온다니 놀랄 밖에요. 만나보니 이런 친구도 있구나, 인연이구나 싶더라고요. 원래 시골에 살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뒤에 고구마밭이 있었거든요. 이 집 처음 왔을 때 고구마 캐고, 잡초 뽑고 그러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엄마가 그 사진을 보여주는데 조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하하. 얼마나 잘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잘하는 것보다는 그냥 둘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잘하려 고생 말고 둘만 행복하면 되죠.”
누나의 진솔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도 여기 들어와 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조차 못 가질 만큼 힘든 일인 줄 알기에 선뜻 나서준 신부가 너무나 고마운 겁니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둘만 행복하길 바랄 뿐이라고 한 겁니다.
이때 신랑과 신부가 왔습니다.
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더니 그새 배달 주문이 들어왔나 봅니다. 신랑은 그 일을 처리하러 자리를 비웠습니다. 신부 지연씨에게 어떻게 여기로 올 생각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A : “원래 결혼할 마음이 없었는데 재민씨 만나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결혼하기로 했어요. 하하.”
Q : “농사는 지어 보셨나요?”
A : “아니요.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어요.”
Q : “ 장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데 걱정 안 되던가요?”
A : “어머님께 좀 더 많이 배울 작정이에요.”
Q : “배우더라도 힘은 들 텐데요.”
A : “솔직히 뭘 하든 안 힘든 일 없잖아요. 사실 도시에서 치열하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시골에선 좀 여유로우면서 힘들게 살 수 있잖아요.”
여유로우면서 힘들게 살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마침 신랑 재민씨가 왔습니다.
재민씨가 오니 지연씨가 또 할 일 있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시골살이가 사실 이렇습니다. 결혼식 날인데도 일은 이어집니다.
재민씨에게 대놓고 물었습니다.
Q : “처음 봤을 때부터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오던가요?”
A : “ 저는 조용한 성격인데 효임 누나처럼 활달한 성격이라서 좋았어요.”
Q : “결혼하면 여기 와서 살 것이란 생각은 들던가요?”
A : “처음에는 이럴 줄 몰랐어요. 그런데 지연이가 먼저 “나 양평에 가서 살까?”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집에서 하는 전통혼례도 지연이가 하자고 했고요. 지연이가 바로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스타일이에요. 너무 선뜻 와준 게 너무 고마워요.”
Q : “이제 결혼식 끝났는데 신혼여행 가셔야죠. 어디로 가나요?”
A : ” 원래 양평으로 가려고 했어요. 둘 다 집돌이 집순이라서요. 하하. 그랬더니 다들 그래도 제주도는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펜션으로 가려고 했었어요. 그러면 우체국 택배 보낼 때마다 집에 다녀올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좀 떨어진 가평으로 가려고요. 하하.”
이제 갖 결혼한 부부에게서 부창부수란 생각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힘든 일에 뛰어든 신부, 신랑의 웃는 모습이 가을마냥 넉넉했으니까요.
사실 재민씨 아버지가 꿈꿨던 농원의 이름은 ‘가을 향기’ 입니다.
가을 하늘 푸르른 날,
가을바람 포근한 가을 들녘의 ‘가을 향기’에서
가을처럼 넉넉한 웃음 그득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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