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4년 중임제 개헌이 최선인가

김원배 2025. 1. 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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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한국에서 푸틴 대통령 같은 사람 나오지 말라는 법 있나요.” 지난해 가을 한 정치권 인사와 개헌 얘기를 나누다 들은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개헌 논의에서 많이 언급되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실제로는 3선 개헌과 독재로 가는 길을 열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4년 중임제로 재선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5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7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인한 투표불성립으로 폐기되자 투표에 참여한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채택된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적 비상계엄이라는 헌정사의 오점을 남겼다.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윤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민주주의가 회복력을 보인 것 같지만, 진영 양극화는 훨씬 더 깊어졌다.

연이은 대통령 탄핵으로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많다. 중앙일보 신년 여론조사의 바람직한 권력 구조를 묻는 질문에서 4년 중임제라는 대답이 43%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는 아마도 미국식 대통령제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주(州)가 먼저 세워지고 영국에서 독립하며 성립한 연방국가다. 양원제에 상원의 권한이 강하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현실에서 미국식 대통령제가 과연 이상적일까.

「 자칫하면 제왕적 대통령 강화
5년 단임하되 의회 임기 조정
결선투표, 부통령, 상원 도입

프린스턴대 교수인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책 『민주주의 공부』(Democracy Rules)엔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이 전 세계의 모범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대통령제가 특별히 더 민주적인 제도로 보였지만, 그건 정당 간 양극화가 극심하지 않았던 덕분으로 드러났고 놀랍게도 대통령제가 재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반드시 우월하지 않다는 뜻이다.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를 묶어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말이 나오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일 때 과연 총리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대로 여소야대에선 대통령과 총리의 대립이 상수가 된다. 4년 중임제는 자칫하면 제왕적 대통령을 한층 강화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양극화가 깊어가고 인구 감소에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극단적 진영 대결과 혼란, 경기 침체에 지친 국민은 이런 것을 한 번에 해결할 것 같은 지도자를 원할지도 모른다. 포퓰리스트 독재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난해 12월 11일 영국 하원에서 열린 '총리에게 질의' 시간에 제1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바데노크 대표가 질문을 하고 있다. 바로 맞은 편에 키어 스타머 총리(오른쪽 세번째) 등 노동당 지도부가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그보다는 다당제를 전제로 한 의원 내각제가 바람직하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영국 하원에선 ‘총리에게 질의(PMQs)’가 시작된다. 30분 정도 진행되며 의원들의 질문에 총리가 답을 해야 한다. 제1야당 대표에겐 6번의 질문 기회가 주어진다.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와 정권을 노리는 야당 대표 간의 ‘토론 배틀’을 볼 수 있다. 대정부 견제이지만 한편으론 야당 지도자를 키우고 검증하는 장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국회에서 좋은 지도자를 가려내고 키우는 시스템이 안 돼 있다. 야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직접 대정부 질문에 나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국회의원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에게 “예, 아니요로 답하라”며 윽박지르기만 한다. 게다가 문제는 내각제 선호도가 너무 낮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내각제는 10%에 그쳤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헌방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

지금 나오는 개헌안을 보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당선 가능성이 큰 대선 후보가 이를 받아들일까. 위 조사를 보면 5년 단임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33%였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차라리 대통령 임기를 그대로 두고, 다음번 23대 국회부터 양원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상원을 세워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늘리면 의원들의 반발도 줄일 수 있다. 하원 2년 6개월, 상원 5년이면 대통령 임기 5년과 묶어 선거 시기를 대략 맞출 수 있다. 상·하원이 서로를 견제할 수도 있다. 지난해 연이은 공직자 탄핵과 예산 감액 사태를 봐도 막강한 국회 권한을 어떻게 제어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막말하고 실력도 없는 국회의원(하원)은 임기를 줄여 선거에서 빨리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결선투표제를 두고, 부통령을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하더라도 부통령이 이어받으니 정권이 바로 바뀌지 않는다. 다수 야당이 탄핵할 실익이 적어진다. 87년 헌법에서 5년 단임을 선택한 것은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을 막는 대안이 명쾌하지 않다면, 그 선택은 아직도 유효하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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