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잘됐으면 좋겠다"는 한동훈, 뛰어내릴 용기 있나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곡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일은, '내가 어떤 음악을 듣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일 수도 있고, 자신이 구축하고자 하는 '나'의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 혹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등등일 수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한 대표의 '플레이리스트'는 범상치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좋아하는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언급하는 '문화적 소양'을 보여줬고,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소개하면서는 자신을 '뮬저씨'(음악·악기 커뮤니티 '뮬'에서 활동하는 아저씨), '방구석 기타리스트'라고 지칭하며 친근감을 줬습니다. 비틀스의 <컴 투게더(Come Together)>를 선곡하고선, 의정갈등에 대해 "다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라는 정치적 메시지까지 남겼습니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모습 |
ⓒ CBS 유튜브 캡처 |
네 번째 곡으로는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에 수록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저녁 노을에(Im Abendrot)>를 선곡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었습니다. 10분에 가까운 성악곡은 일곱 곡 중 가장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런 곡을 플레이리스트 중간에 배치한 것은 장난이나 객기 같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한 곡'은 소개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죠.
후반부의 세 곡은 전반부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90년대 한국 펑크의 성지나 다름없는 홍대 클럽 '드럭'을 다녔다면서 크라잉넛의 <명동 콜링>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중 비교적 최신이라며, 미국의 펑크밴드 그린데이가 2004년에 발표한 <웨이크 미 업 웬 셉템버 엔즈(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틉니다. 그리고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던 비틀스의 <컴 투게더>로 마무리. 후반부 세 곡은 라디오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한 밴드의 유명한 곡이라는 점에서 전반부와 달리 힘을 뺀 느낌입니다.
정훈님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저는 한 대표가 꽤 섬세하게 구성한 플레이리스트가 아닐까 싶더군요. 앞부분은 과거 기타리스트이자 록 키즈로서의 '이상'을 보여주고, 뒷부분은 나이 들어가면서 힘 빼고 듣는 곡과 더불어 정치인으로서의 선곡(컴 투게더)을 통해 '현실'을 보여준 거라면 지나친 해석인 걸까요?
제가 한 대표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재미는 음악가들의 정치적 성향이 대부분 한 대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그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록 뮤지션이라 그럴 겁니다.
특히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당대 청년들의 '히피즘'을 대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린데이의 곡은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 앨범에 수록된 것이고요. <컴 투게더>를 만들고 부른 비틀스의 존 레넌 역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심지어 한 대표는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씨가 자신이 국민의힘(소속)이라서 SNS 친구를 신청해도 안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음악과 이념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우향우'를 하면서 퇴행을 거듭하는 윤석열 정부의 전 법무부 장관, 현 여당 대표의 플레이리스트라기엔 '속 편한 선곡'이 아닌가 싶어서, 방송 말미에는 좀 얄미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대표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존 레넌이 폴 매카트니한테 '너는 왜 이 절벽 앞에 와서 뛰어내리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둘이 성격이 그만큼 달랐던 거죠. 제가 정치인으로 정치를 시작했고요. 저는 세상이 좀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고...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고 또 국민들이 잘됐으면 좋겠고요. 그걸 위해서 또 절벽에 뛰어내려야 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합니다."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한 인터뷰에서 존 레넌에 대해 "존은 항상 절벽을 뛰어넘고 싶어 했다"라고 밝히면서, 자신과의 성격 차이를 드러낸 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박재홍 아나운서가 "의미심장합니다"라고 하니 한 대표는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난 말이고요"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는 말을 갑자기 생각나서 할 리는 없을 겁니다. 한 대표는 어쩌면 존 레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대표로서의 위신이 서지 않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 24일 열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 전, 별도로 독대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독대 요청을 거부했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대표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식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이날 만찬은 말 그대로 '밥만 먹고' 끝났습니다. 의대 증원 문제나 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합니다.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재차 독대를 요청했다고 하나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정훈님은 한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그는 비대위원장 시절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길을 찾는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지금의 민주당보다 훨씬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외교·정치·경제·노동·환경 등 각 부문에서 난맥상을 노출시키고 있는 윤 정부와 이에 발맞추는 국민의힘을 보고 '실용·합리'라는 가치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국민의힘의 현 모습에는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한 대표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이 된 그에게는 법무부 장관 시절 언뜻 비쳤던 개혁적이거나 인권친화적인 모습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게 부과된 지연이자를 면제시켰고, 제주 4.3 일반재판 수형인을 '직권 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다시 재판을 받아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국가배상소송에 대해선 상고도 포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자마자 야당을 향해 "운동권 특권" "종북세력" 운운하면서 기존의 이미지마저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윤 대통령이나 기존 보수 정치인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을 향해 제대로 들이받지도 못합니다. 한 대표는 마음먹으면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건 당 대표가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패'입니다. 하지만 감히 쓸 생각을 못합니다. 논란이 된 김문수, 이진숙, 뉴라이트 인사 임명 등에도 침묵하면서 한 방은커녕 '잽'조차 못 날립니다. 한 대표는 '의정갈등' 국면이 정국 주도권을 자신 쪽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꿈쩍도 안 하는 눈치입니다.
진짜 문제는 여태껏 그의 무능이 개인적 '실패'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대표가 의료대란, 무분별한 거부권 남용, 부자감세 등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대해 지금껏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당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동조해 왔기에 지금 국민들의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한겨레>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는 역대 현직 대통령과 여당 차기 대선주자의 대결을 보여주면서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 죽이면 공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에 맞서지 못한다면, 한 대표의 정치 인생도 끝이 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첫 곡으로 소개한 톰 웨이츠의 <웨이 다운 더 홀>의 가사가 현 상황과 맞아떨어집니다.
"정원을 걸을 때는 등 뒤를 조심해야 해. 실례지만, 바른길을 걸어야 해."
"너는 악마를 마음 깊은 곳에 가둬야 해."
"유혹에 신경 쓰지 마. 그의 손은 너무 차가우니까. 나를 도와 악마를 마음 깊은 곳에 가둬야 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한 도전을 빗대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싸우는 이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한 대표가 존 레넌처럼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땐,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난 정말 인간도 아니었구나' 하지 않게, 동두천 성병관리소 남겨주세요"
-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 꼬여버린 명품백 사건... 당신이 검찰총장이라면?
- 대통령 관저 불법 증축 없었다? 정점식이 꺼낸 '수상한' 공문
- 음악 크게 틀어달라더니 누워서 딥키스... 모멸감이 들었다
- 미 대선판 달군 전문가의 분석 '해리스의 골든크로스'
- "혁신파크 부지를 헐값에? 오세훈식 기업프렌들리!"
- 제주형 '차 없는 거리' 행사 참여 공무원에 1만원 지급? 타당성 논란
- "윤-한 이럴 거면 왜 만났나, 국민만 불행"... 보수의 한숨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김건희-> 명태균 "오빠한테 전화 왔죠? 잘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