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이 추석 연휴에 끼어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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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괜찮아, 싶을 때쯤 삶은 또 힘들어지곤 합니다. 그게 삶이니까요. 소중한 존재들과의 이별,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 잘 나아지지 않는 반려병 등. 어려움과 동행하면서 매번 다시 일어서는 마음에 대해 씁니다. <기자말>
[김나라 기자]
무더위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이번 여름 어느 날, 평소 잘 들어가지 않는 작은방에 들어갔다가 헉, 하고 놀랐다. 스킨답서스 화분 이파리들이 축축 늘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최소 2주는 지난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며 허둥지둥 물을 들이부었다. 다행히도 하루가 지나니 줄기와 이파리는 다시 꼿꼿해졌다. 내가 언제 시든 적이 있었냐는 듯. 고마운 마음에 이파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엄마와 돌봄
이 스킨답서스는 엄마가 보내준 것이다. 내가 식물 죽이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건 엄마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크는 걸 보내주셨는데, 그렇다 쳐도 이 녀석은 꽤나 강했다.
▲ 이별 후 엄마가 보내준 스킨답서스 지금은 보기 무서울 정도로 자라났다. 엄마의 생존력을 닮은 식물. |
ⓒ 김나라 |
화분을 가꾸는 일은 엄마의 가장 오래되고 꾸준한 취미인데, 그렇게 정성 들인 결과물을 보여줄 사람이 대체로 나뿐이니 얼마나 보여주고 싶을까. 리액션에 인색한 나는 평소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아, 그렇네", "진짜 잘 키웠네", "이쁘네" 같은 말을 최대치의 공감이랍시고 하는데, 이번에 본가에 가면 돌고래 소리 정도는 질러드려야겠다.
엄마의 돌봄은 숨 쉬듯 자연스러워 보인다. 엄마는 돌봄 일을 직업으로 하는데, 3개 가구 가구원들의 집안 살림과 거동 등을 보조한다. 엄마의 성격상 누가 시키지 않는 일들도 찾아서 해주고 무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그 정도면 진이 빠져 집안일은 대충 할 법도 한데 본가는 단 한 번도 어질러져 있는 적이 없다.
화분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구피를 키우는 어항의 물을 갈고, 더울 때는 얼음을 하나씩 넣어주고, 내가 본가에 갈 때마다 반찬에 신경을 쓴다. 올해만 해도 내가 안 먹을 찬거리까지 잔뜩 포장해서 소포로 부친 게 몇 번이다. 오빠 걱정도 쉴새가 없다. 엄마는 도대체 몇 집을, 몇 명을 돌보고 있는 것일까.
▲ ▲ 명절에 묻혀 흐지부지 사라지기 일쑤였던 엄마의 생일. |
ⓒ situp_steve on Unsplash |
가끔 내가 생일 케이크를 사서 초에 불을 켜지만, 그것도 손주들의 촛불 끄기 놀이가 되어 그날의 주인공을 알 수 없게 되곤 한다. 지난해 생일도 그랬다. 나는 조카들이랑 놀아준다고 상차림을 돕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상을 차려준 사람이자 그날의 주인공인 엄마가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뜨는 게 식사의 시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어서 앉아서 같이 먹자는 내 말에도 엄마는 여전히 주방을 오가며 "나 신경 쓰지 말고 느이들 먼저 먹어"를 반복했다. 그리고 오빠와 두 조카, 내가 한 번에 앉자 의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엄마는 "나는 서서 먹어도 돼" 하면서 정말로 서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데다 그 옆에 별 생각도 없이 앉아 있는 오빠를 본 나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지 못해 오빠에게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와 이혼한 후 거의 혼자 생계를 책임지면서 말 그대로 돌봄밖에 모르고 산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을 포함해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식구들에게 화가 났다. 엄마는 "엄마 괜찮으니까 울지 말어. 엄마 앞에서 싸우지 말어" 하면서도 화장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엄마에게 여러 번 말했다. "엄마, 엄마가 자꾸 괜찮다고만 하니까 식구들도 엄마 안 챙기고 당연하게 넘어가잖아. 엄마 스스로를 소중히 대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장 엄마를 돌봐야 했던 건 식구들이었다는 걸. 엄마는 과중한 '엄마 역할'에 대해 가부장 문화가 주는 압박에 충실해 왔을 뿐이라는 걸.
"꽃 보러 오라"는 이웃
올초 엄마는 몇 년 만에 내 자취방에 왔다. 본가에서 4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다. 그때 나는 이별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한두 시간에 한 번은 엉엉 울어야 그나마 살아지던 때였다는 변명을 붙여보지만, 말하기 부끄러운 일들뿐이다.
나는 엄마를 대접하기는커녕 아침에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에게 나 지금 울어야 하니 나가 달라고 말했고, 말 한 마디에 예민해져 잔뜩 짜증을 냈다. 엄마는 우리집에 와서도 밥을 해주고, 장을 봐 와서 반찬을 몇 개나 만들어놓고 갔다.
같이 바다에 갔을 때 바다를 보며 소리 지르자고 말해 주었고, 수평선을 보면서 몰래 우는 내게 다가와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간 뒤 다시 울었다. 이별 때문이 아니라 엄마에게 한 번 웃어주지도 못한 나와, 여기까지 찾아와 작은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엄마가 생각나 울었다.
▲ 엄마가 보내준 꽃기린 사진 키우는 화분에서 꽃이 피면 엄마는 사진을 보내준다. 꽃이 예뻐서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
ⓒ 김나라 |
저번에는 엄마와 같이 있을 때 아래층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꽃 사진을 보낸 것을 봤다. '해가 지면 꽃이 져요. 꽃 지기 전에 보러 오시든가요. ^^' 엄마는 저녁을 먹다 말고 꽃을 보러 다녀왔다. 아래층 아주머니의 꽃도, 엄마의 꽃도 예쁘지만, 내게는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에서 '꽃을 보러 오라'는 말이, 그리고 밥을 먹다가도 꽃을 보러 다녀오는 엄마가 더 생기 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돌봄이란 내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 좀 보라는 말에 다가가서 들여다봐 주는 일. 그 사람이 아프고 기쁘게 키워낸 무언가가 얼마나 귀한지 알아주는 일. 그런 게 돌보는 마음인지도, 그러니 나도 조금씩은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작은방에서 스킨답서스를 살피며 내 상태를 짐작해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물을 준 지 오래됐다면, 내 끼니 역시 골고루 안 챙겨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냉장고에 붙여 놓은 엄마의 메모를 한 번 더 본다. '울딸, 갈 때 냉장고 반찬 잊지 말고 가져가렴', '냉장고에 있는 반찬 더 꺼내 먹으렴'. 나부터 잘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엄마가 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를 줄일 수 있게.
어제는 당근마켓 나눔으로 큰 화분을 하나 받아 왔다. 흙도 한 봉지 샀다. 본가에 가기 전에, 비좁은 화분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킨답서스에게 분갈이를 해 줄 생각이다. 본가에 가면 엄마가 키워낸 화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봐야겠다. 그동안 나의 스킨답서스는 넓어진 화분 안에서 마음껏 자라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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