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서류 아닌 사람... 마늘 까고 큐빅 붙이며 아이들 지켰죠"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그 긴 시간 동안 은평구 신사동 한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의 '엄빠(엄마·아빠)'이자 마을의 '해결사'로 살아온 이가 있다. 중고 1톤 트럭을 직접 몰고 비포장 산동네를 누비던 20대 청년은 어느덧 지천명을 내다보는 나이가 되었다.
단순한 지역아동센터를 넘어, 집수리와 무료 급식으로 마을 전체를 돌보는 '누리사랑복지센터' 이재현 센터장을 만났다. 그가 온몸으로 기록한 20년은 은평구 복지의 역사이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숙제이기도 했다.
이재현 센터장이 신사동과 인연을 맺은 건 2005년. 당시 그는 대형 복지단체의 최연소 팀장이었지만, 행정가의 길 대신 현장에서 이웃과 함께 호흡하는 삶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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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사랑복지센터' 이재현 센터장 (사진 : 정민구 기자) |
| ⓒ 은평시민신문 |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사로 취업해 승진도 빠르고 인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저는 사람 냄새 맡으며 아이들과 부대끼고 싶은데, 정작 제가 하는 일은 온종일 서류를 돌보는 '행정'이었습니다.
'나는 기관을 위한 직원보다는, 대상자를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갈증이 너무 컸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웃음). 제가 가진 사회복지사의 소신으로 직접 소통하고 고민하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지를 하고 싶어 누리사랑을 설립했습니다. 물론 기꺼이 제 뜻을 존중하며 함께해 주신 부모님도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 그렇게 만난 20년 전 은평구 신사동,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그때는 신사동 산새마을 번지수가 다 '237번지'로 통했어요. 지금처럼 번듯한 아스팔트 도로도 없고 마을버스도 안 다니던 시절이었죠. 가파른 비탈길에 빽빽이 들어선 집들이 있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생소하면서도 정겨운 동네였습니다. 무작정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오르내리며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누리사랑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안정적으로 10년이 훌쩍 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지난 20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의 공간은 신사동 안에서만 세 번째 옮긴 곳이다.
- 오랜 시간 같은 지역에 머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 237번지 근처 상가에서 시작해 무봉리 순대국집 앞 건물을 거쳐 이곳에 오기까지 세 번을 옮겼습니다. 초창기엔 '월세살이'의 설움이 컸죠. 건물주가 나가라면 나가야 했고, 월세를 올려 달라면 올려줘야 했으니까요.
이전 건물은 외형이 너무 낡아 사춘기 아이들이 들어오기를 창피해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의 그런 마음이 제게 전달될 때면 참 속상했습니다. 다행히 지금 있는 곳으로 온 지는 벌써 15년 정도 됐습니다. 여기 와서는 다행히 월세 걱정 없이, 아이들도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 돼 정말 다행이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새벽 4시까지 부업하며 지켜내고 싶었던 것
'누리사랑'은 초창기 정부 지원이 전혀 없었다. 월세부터 운영비까지 모든 것을 센터장이 해결해야 했다. 이 센터장은 그 시절을 "몸으로 때운 세월"이라고 회상했다.
- 사재를 털어 운영하며 겪은 어려움도 많았겠습니다.
"초반 몇 년은 보조금 없이 오롯이 자력으로 운영했습니다. 정식 인가만 받은 시설이었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아동센터는 설립 비용과 24개월간의 운영비를 설립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헌신으로 시작은 했지만, 매달 월세와 아이들 밥값을 감당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정기적인 직장을 다닐 수 없으니,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만 할 수 있는 부업을 전전했습니다.
액세서리에 큐빅 붙이기부터 바느질, 마늘 까기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밤에는 시장통 호프집에서 새벽 4시까지 서빙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년을 지내니 매일 코피가 터지더라고요. 그래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젊었고, 제 아이들이 너무 소중해 꼭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그 과정을 이겨낼 힘을 길러주고 싶었죠. 가난이나 슬픔의 대물림 없이 본인의 삶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길 바랐습니다. 어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 20년 역사 중 코로나19 시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을 텐데요.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도 저희는 '긴급 돌봄' 때문에 쉴 수가 없었어요. 모두가 멈췄을 때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 끼니를 챙기고, 방역하며 센터를 지켜야 했죠.
사실 더 큰 문제는 그 후유증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비대면으로 지내다 보니, 발달이 느리거나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사회성과 이해력이 부족한 '느린 아이들'을 위한 세밀한 교육이 필요한데, 현재의 인력과 시스템으로는 이 아이들을 오롯이 품기가 버거운 게 현실이라 안타깝습니다."
누리사랑은 단순한 아동 시설이 아니다. '누리사랑복지센터'라는 이름 아래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무료 집수리부터 이사 지원, 도시락 배달까지 마을 복지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 활동 분야가 굉장히 방대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회복지사로서 저는 처음부터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대상을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리사랑'이라는 이름처럼 온 세상의 이웃을 돕고 싶었으니까요. 트럭 몰고 동네를 다니다 보면 다 보입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이 힘들어하면 뒤에서 밀어드려야 하고, 수도가 터진 집이 있으면 고쳐드려야죠.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고 제가 도울 수 있다면, 그건 사회복지사인 제가 당연히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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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광천 산책에 나선 누리사랑지역아동센터 아이들 |
| ⓒ 누리사랑복지센터 |
- 처우 개선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오셨습니다.
"사실 당장 눈앞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 끼니 해결이 급급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죠.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우리조차 길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잘못된 점을 알리고 변화를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게 선임 기관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저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후배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었죠. 앞장선다는 건 오해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고, 아이들과 함께할 에너지가 소진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덕분에 서울시 호봉제 도입의 초석을 세웠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웃음)."
- 여전히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인력 구조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에게도 법이 정하는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정당한 기준을 준수해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력 배치 기준의 현실화입니다. 현재는 아이 49명에 교사 3명이 배정됩니다. 24명당 교사는 단 1명뿐이죠. 직원이 아픈 날엔 시설장이 20명 가까운 아이들을 돌보며 식사 준비와 방대한 행정 서류를 동시에 해결해야 합니다. 교사 1명당 이용 아동 수를 7.5명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센터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20년 전 인력 기준을 그대로 두는 건 아이들을 방치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 은평구 복지 지형에서 가장 아쉬운 지역은 어디일까요?
"흔히 진관동(은평뉴타운)은 잘 사는 동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복지 인프라는 가장 취약합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개인이 시설을 설립하기 어려운 구조거든요. 다자녀 가구와 영구임대단지 등 아동복지시설이 꼭 필요한 지역임에도 정작 아이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학교 사회복지사가 배치될 정도로 위기 아동이 많지만, 인프라가 부족해 연신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화려한 아파트 숲 뒤에 가려진 진짜 사각지대죠."
- 20년을 버틴 힘,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후배들에겐 늘 '가늘고 길게 가자'고 합니다. 너무 뜨거운 열정은 금방 타버리거든요. 사회복지사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수나 판단 착오가 누군가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신중해야 하고, 오래 곁을 지켜주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함께 응원하며 지켜볼 때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로망이 하나 있습니다. 평화공원 같은 야외에서 메뉴는 딱 하나, 따뜻한 잔치국수로 무료 급식을 하는 겁니다. 한 달에 두 번이라도 누구나 와서 부담 없이 한 그릇 먹고 가는 풍경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누리사랑'이 없어도 되는 건강한 동네가 돼 훌훌 떠나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20년을 그래왔듯,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 이재현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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