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0만원에 관리비 41만원, 서울 화곡동의 한 황당한 원룸 계약
전월세 신고제 꼼수 차단
빌라 전세 사기 등 부동산 문제 이면엔 열악한 주거 현실이 있다. 특히 청년 주거 환경이 심각하다. 그 실태를 알아봤다.
◇관리비가 월세보다 높은 매물 쏟아져
최근 서울 화곡동에선 월세 32만원 관리비 8만원짜리 원룸이 월세 28만원 관리비 16만원의 원룸으로 돌변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방에선 대구 남구 대명동 전용면적 26㎡짜리 빌라가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월세가 주변 시세의 절반. 그런데 알고 보니 매달 내는 관리비가 41만원이었다. 웬만한 40평대 아파트 수준이다.
또 충남 아산시 온천동의 신축 빌라(전용 59㎡)는 방과 화장실이 각각 2개씩 있는데도 월세가 27만원에 불과해 알아보니 관리비가 월 28만원에 이르렀다. 한 달 월세가 사실상 55만원 꼴이다.
◇전월세 신고제 때문
이런 기묘한 관리비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전월세신고제 때문이다.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전·월세 신고제에 따라 월세 30만원 또는 보증금 6000만원이 넘는 전·월세 거래는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거래를 투명하게 해 세입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세금 부담 등 문제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그러자 나온 꼼수가 월세를 30만원 밑으로 낮춰 신고는 피하되 관리비를 크게 올려 수익을 보전하는 것이다. 실제 최근 월세가 싼 대신관리비가 비정상적으로 비싼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꼼수는 소형 빌라나 원룸, 오피스텔 등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는 관리사무소 차원에서 내역이 투명하게 나오지만, 원룸이나 소규모 빌라는 이런 의무가 없어 집주인이 마음대로 관리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은 집을 옮길 여건이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집주인의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월세를 그대로 또는 올려 받으면서, 계약서는 실제 가격보다 낮게 쓰는 ‘다운 계약’도 벌어지고 있다. ‘월세를 원래 50만원 받아야 하는데 45만원만 받겠다. 대신 계약서는 이보다도 낮은 40만원으로 하자’ 식이다. 모두 월세 수입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꼼수다. 서울 동대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새로 세금을 내야 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 이상으로 실질 월세를 올리면서 신고액은 줄이는 방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정부, 내역 공개 의무화
부동산 업계에선 관련 통계를 확보한 후 감시 규정을 만들어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관리비로 분쟁이 생길 경우 국토교통부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결국 정부가 꼼수 차단에 나섰다. 오는 9월부터 원룸이나 소규모 오피스텔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월 10만원 넘는 관리비를 부과하려면 세부 내역을 계약 전부터 공개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규모 주택 관리비 투명화 방안’을 마련해 6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50가구 미만 공동주택이나 원룸, 오피스텔은 관리비 공개 규정이 없어 ‘깜깜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5월부터는 온라인 부동산 중개 사이트의 관리비 입력 항목을 전기료, 수도료, 난방비, 인터넷 사용료 등으로 세분화하도록 했다. 이용자들이 세부 항목 별로 관리비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월 10만원 이상 관리비가 부과되는 매물에 대해서는 9월 중 세분화 표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공인중개사의 의무도 강화된다.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오는 12월부터 임대차 계약 전에 임차인에게 관리비 세부 정보 안내를 의무화하고 위반하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협회와 협의해 임대차 표준계약서에도 관리비 세부 내역을 표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