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가 삼성생명 자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묵은 '삼성생명법'이 재부상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 법이 개정될 경우 삼성전자 지분 8.45%를 가진 삼성생명은 5.5%(약 20조원) 가까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를 외국에 넘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기업의 생존과 방어에 유리한 것이 좋은 지배구조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지적이다.
18일 정치권과 보험 업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7일 삼성생명법을 발의했다. 다른 금융사와 달리 삼성생명만 유일하게 주식과 채권을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자회사 발행 주식과 채권이 총자산의 3%가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에서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개정안은 보유지분 가치평가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안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법 재발의 등 금산분리 이슈를 고려하면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이 될 것"이라며 "2014년 이후 삼성의 현행 지배구조를 개편하라는 압박이 이어지고 있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의 지분가치가 재부각될 것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차 의원 측은 이번 법안 개정 배경에 대해 "자산운용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필요한 총자산, 자기자본, 채권 또는 주식 소유의 합계액을 회계처리 기준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가액을 기준으로 하도록 정해 보험사 자산운용의 실질적인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산운용 비율을 초과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해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다른 회사를 지배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단순히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강제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그룹은 전자, 중공업, 물산, 바이오 등 상호 시너지를 내는 글로벌 기업의 대표 사례"라며 "삼성생명법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삼성 지배구조의 연결고리를 끊는 행위"라며 "삼성을 주인 없는 기업으로 만들어 결국 외국으로 던져버리는 꼴"이라고 부연했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법의 취지와 시행 이유에 대해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특정 기업에 너무 눈에 보이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데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면 삼성생명은 양도차익에 최대 5조원의 법인세까지 부담해야 하고, 그동안 안정적으로 받아온 삼성전자의 배당수익도 없어진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자산운용 전략을 완전히 수정해야 한다.
다만 삼성전자 주가에는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법안이 즉시 시행되지 않는 데다 이행되더라도 일정 기간 유예를 두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쪽 업권에서 경쟁력 때문에 주가가 하락했을 뿐 지배구조 이슈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조금 더 작은 규모의 기업이면 경영권 분쟁 소지가 발생할 수 있어 여기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삼성전자 정도의 규모를 갖춘 회사에는 크게 파급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삼성생명의 신지급여력제도(K-ICS) 비율 하락이 삼성전자 주가와 연관이 깊다는 차 의원의 주장에도 업계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삼성생명도 직전 실적발표회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K-ICS비율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선을 그었다.
보험권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K-ICS비율이 크게 하락한 데는 다른 보험사와 마찬가지로 무·저해지보험의 해지율 가정 변경, 부채할인율 현실화 등 금융당국의 정책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며 "이미 실적을 발표한 지주사 계열 보험사의 경우처럼 우수한 실적임에도 K-ICS비율이 하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