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밥상에 용산의 '반국가세력' 말을 올려 볼까
[황광우 작가]
긴 더위가 가는가 싶더니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느덧 추석은 성큼 발아래까지 다가왔다. 흩어졌던 형제들이 모이는 이 즐거운 명절, 만나면 정치 이야기가 추석 밥상에 오를 것이다.
오는 추석날 차려질 정치 밥상에 무슨 '먹을 말'이 있을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친 이는 김영삼이었다. 씹을 맛이 나는 말이었다. '박정희씨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총통제를 도입하여 장기집권체제에 돌입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이는 김대중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는 말이었다.
▲ 1971년 7대 대선에서 연설 중인 김대중 대통령(당시 신민당 후보). |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제공 |
보자. 1971년 대통령 선거는 시작부터 잘못이었다. 헌법에 규정된 중임 조항을 뜯어 고치고 실시한 선거였으니 그 선거는 애시당초 헌법을 유린한 일종의 쿠데타였다. 다시는 '한 번만 뽑아주십쇼' 구걸하지 않겠다고 박정희는 말했다. 박정희의 말에 사실적 근거가 있었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실현되었다. 이후 박정희는 아예 선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당선되면 장기집권을 획책할 것이라고 김대중은 예언했다. "박정희씨가 승리하면, 영구집권의 총통제를 한다는 데 대한 확고한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김대중은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유세 했는데, 당시 김대중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증거가 있었던가? 역시 없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예언대로 진행되었다.
지금도 '반국가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니
근거 없는 발언을 먼저 한 것은 용산이다. 어쩌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는데 연합뉴스TV에서 용산의 발언을 중계하는 것이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말하는 분이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었다. 확신에 찬 그의 모습이 나에겐 왠지 섬뜩했다.
'아니, 요즘에도 반국가세력이 있나?'
나는 젊은 시절 체제전복을 추구했다. 1980년 5월 이래, 군부독재집단을 몰아내는 길은 혁명적 전복 이외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행동을 했다. 1991년 어느 날, 우리는 기존의 '혁명 전략'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그리고 합법적인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에 매진했다. 진보정당을 건설하여 집권하는 길은 혁명의 길보다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50년 동안 쓴 불판을 갈아달라'고 호소한 노회찬 전 의원도 이 길을 걸었다.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암약하는 개인은 있어도 세력은 없다.
용산의 입에서 터져 나온 '반국가세력 암약' 운운하는 발언을 들을 때, 먼저 박정희와 전두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전직 쿠데타 수괴는 걸핏하면 '반국가세력'을 운위하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는데, 결국 자신이 반국가세력의 장본인이었음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사망 직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서울 도심을 점령한 탱크와 군인들의 모습. |
ⓒ AP/연합뉴스 |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법보다 가까운 것은 총이다.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중에 군인들의 총에 맞서 항거할 의원은 결코 재적의원의 과반수를 넘지 않을 것이라 본다. 현 국회의원들에게 '개인의 명리와 나라의 대의 앞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물으면 모두들 나라를 위해 대의를 선택하겠노라고 장담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보안대 지하실에 끌려가 총구 앞에 서서 나라의 대의를 수호하는 의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61년 5월 16일, 국무총리 장면은 도망갔다. 주한미국대사관을 거쳐, 안국동 미국대사관 숙소를 거쳐, 혜화동 가르멜 봉쇄수녀원으로 피신하였다.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였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를 선포하면서 박정희는 또 계엄령을 발동하였다. 국회의원들의 뱃지를 폐지 줍듯 수거하였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의 쿠데타를 고발한 의원은 없었다. 1980년 5월 17일엔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요구할 의원들을 모두 사전에 예비검속하였다.
이것이 계엄령이다. 계엄령은 엄밀히 말하자면 법령이 아니다. 그것은 벌거벗은 폭력이다. 식칼을 들고 설치는 깡패들의 폭력과는 종류가 다른 폭력이라는 말이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헬리콥터와 기관단총으로 시민들에게 총질을 하는 것이 계엄령이다. 아직까지 국회의원들이 이런 국가폭력에 맞서 계엄령을 해제한 사례는 없다.
희한한 일도 있었다. 1979년 12월 12일, 국방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세상에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계엄을 전복한 '역 계엄(Couter martial law)'이라는 유사 이래 찾아볼 수 없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1980년 5월, 국민들은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였다. 국회는 5월 20일 계엄을 해제할 것을 결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은 '확대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이른바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5월 17일 12시에 말이다.
계엄은 벌거벗은 국가폭력이고, 헌정을 짓밟는 쿠데타다. 쿠데타 앞에 법적 절차는 무의미하다.
요즘 군인들은 다르다
어쩌다 <강적들>의 토론을 보았다. 이준석 의원의 발언이 흥미로웠다. '병사들마다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장병이 지휘관의 명령대로 국민을 상대로 발포하겠는가?' 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 같다. 계엄령 이야기는 60대 노인들의 이야기이지, 20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의 병사는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병사일 것으로 믿는다.
이재명의 계엄령 발언으로 군인들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한다. 모 소령은 군인을 핫바지로 봐도 유분수라고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바람직한 군인의 모습이다. 모 대령은 이렇게 소회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군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정권 비호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격이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논란을 야기하는 것 자체가 군인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군인 정신이다. 이래서 '역사는 진보한다(History as a progress)'라고 말하는 것일 게다.
▲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한 12.12 주역들 모습 |
ⓒ 연합뉴스DB |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황광우씨는 작가로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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