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60만 건 공언하더니... 사업은 폐지

최기원 2024. 10. 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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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의 세금이야기 - 이 예산으로 탄소중립 가능한가②] 목표와 예산의 괴리

다른 시각에서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최기원 기자]

 2023년 9월 20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탄소 중립 등 기후 위기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연합뉴스
1편에서는 자신들이 세운 목표대로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 현 정부 기후재정의 문제를 살펴봤다. 90조 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워 놓고 실상 70조 원만 투입하게 된다면 그 계획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연평균 20조 원에 달하는 감세와 상시화된 세수 부족, 정부의 기후문제 외면은 탄소중립의 길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적은 예산이라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집행하고 있다면 모를까, 세부사업을 뜯어보면 난맥상은 오히려 더 두드러진다. 2편에서는 분야별 사례를 다룬다.

2030년까지 그린리모델링 160만 건?

대표 사례로 정부의 그린리모델링 계획을 살펴보자. 그린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의 단열을 강화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사업이다.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에 따르면 건물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171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32.8%)해야 한다. 이 건물부문 감축은 그린리모델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수단은 신규건축물의 규제 또는 기존 건축물에 대한 효율 강화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고, 매년 착공 건물은 전체 건축물의 1.3% 수준인데 기존 건물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면 감축수단으로써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건물에 대한 대규모 그린리모델링 계획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도 국가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그린리모델링 160만 건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이것이 만만한 숫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160만 건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전체 건축물 740만 동의 21.6%에 달하는 수준이며, 연평균 20만 건, 대한민국 전체 건축물의 2.7%를 매년 리모델링해야 한다. 지난 10년 간(2014~2023) 국토부의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지원사업 실적 건수가 총 8만 건에 못 미친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임은 명약관화다.
 제1차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 중 그린리모델링 목표치
ⓒ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한국건설산업연구원(2023)은 공공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 평균사업비 57만 원/㎡ 가정을 바탕으로 건물 한 건당 그린리모델링 비용을 2억 9000만 원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정부 계획인 연간 20만 건 적용 시 연간 58조 원의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사업의 규모와 지원이 극히 제한적인 기존 국토부 사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건당 1200만 원, 최소 연평균 2조 4000억 원 이상은 필요하다. 이 비용은 정부 재정과 민간투자(개인), 금융이 분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기본계획상 유일한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지원사업인 '그린리모델링 민간이자지원사업'을 2024년 폐지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지원사업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사업 예산도 계획 수립 이후 매년 크게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2023년 1910억 원, 2024년 1275억 원, 2025년 편성 1145억 원).

160만 건이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대안도 없이 유일한 기존 사업을 폐지하고 공공리모델링 예산을 반토막 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표현조차도 부족하지 않은가.

노후보일러 교체로 리모델링 실적 채우나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지자체들이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하면 되지 않나? 감축수단 활용 권한 제한이 있는 지방정부는 건물부문과 수송부문 감축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므로 그린리모델링 지원 사업이 강조될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 사업을 포함시켜도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울시의 경우를 보자. 서울시 탄소중립기본계획상 그린리모델링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물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사업은 민간건물 제로에너지건축물(ZEB)사업, 안심 집수리 사업, 새빛주택 등이 있는데 연 3000~4000건 수준이다. 2030년까지 계획이 이행된다 해도 서울시 전체 건축물의 3.5~5%만 리모델링할 수 있다. 국가기본계획상 목표인 21.6%에 턱없이 못 미친다.

만약 노후보일러 교체를 그린리모델링으로 볼 수 있으면 형식적으로 목표 달성은 가능하다. 2030년까지 168만 건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온전한 그린리모델링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처럼 히트펌프로 바꾸는 것도 아닌 더 나은 효율의 가스보일러로 바꾸는 사업이고 따라서 새 보일러 수명(10년) 만큼 추후 온실가스 배출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계획을 담대하게 세웠으면 예산도 담대하게 편성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20년 '유럽 리노베이션 계획(Renovation Wave for Europe)'을 통해 3500만 채 그린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연간 570억 유로(84조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처럼 보일러나 LED 등, 창호를 지원해 주는 부분적 지원사업이 아니라 건물 자체에 등급을 매기고 건물 등급에 따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포괄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탄소감축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에너지빈곤 해결과 건설산업의 일자리 확대와 재교육이라는 산업전환의 차원에서 재정을 투입한다.

독일은 2024년 그린리모델링 예산으로 189억 유로(28조 원)를 배정했는데, 이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2024년 국가기본계획상 전체 기후대응예산 14조 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린리모델링 같은 감축수단이 중요한 이유는 감축효과를 즉각적으로 발휘하면서도 경기축소 방어와 산업전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인데, 정부는 건설에 10년, 송전선에 10년, 방폐장 건설은 가능한지도 의문시되는 원전 건설이나 탄소포집 및 저장(CCUS) 같은 기약 없는 기술에 돈을 퍼부으며 감축 부담을 다음 정부로 떠넘기고 있다.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83%? 소각장 예산만 늘어

그린리모델링 뿐만이 아니다. 목표와 예산의 괴리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2030년 전기차 420만 대, 수소차 30만 대, 갯벌 복원 10k㎡ 같은 목표들은 그 자체로도 만만치 않은 목표지만 계획이나 예산 편성은 그 의지조차 의문을 품게 만든다. 국내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탄소중립 목표에서 더 멀리 물러서는 건 불가피하다.

앞으로 연간 60만 대를 등록시킬 복안은 있기는 한 건가(지난해 전기차 등록 대수는 15만 대였다)? 갯벌을 대규모로 복원하겠다면서도 갯벌을 메워 공항을 만드는 데는 망설임이 없다. 공항이 활성화되면 엄청난 탄소배출은 불가피하고, 망하게 되면 예산낭비와 생태계 파괴의 표본을 또 하나 추가하게 될 것이다.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83% 같은 목표도 그렇다. 2022년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56.8%였다. 이를 83%까지 끌어올리게 되면 현재 매립장을 전부 폐쇄한다 해도 소각장을 추가로 지을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2022년 전체 생활폐기물 1675만 톤 중 211만 톤이 매립되고 494만 톤이 소각되며, 953만 톤이 재활용된다. 재활용률을 83%로 끌어올리면 437만 톤이 추가로 재활용되니, 매립 211만 톤을 전부 재활용으로 돌리고도 기존 소각장까지 일부 폐쇄시킬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1차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 중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목표
ⓒ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그러나 현재 돌아가는 양상은 이 모든 계획이 꿈 같은 것임을 일러 준다. 수도권만 하더라도 매립지 직매립 금지 조치에 맞추어 30여 군데 소각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한다. 이에 따라 2025년 폐기물처리시설 예산은 47% 증액 편성되었다(1600→2351억 원). 반면 재활용 선별장 예산은 21% 감액됐다(397→315억 원).

환경부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사실상 폐기하고 택배 과대포장 규제도 2년 유예했다. 재활용 선별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소각일변도 정책을 고수하면서 재활용 정책들은 도리어 뒤로 후퇴시키고 있다.

그 결과는 특정 지역 쓰레기 떠넘기기와 같은 부정의,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과 지역 갈등, 그리고 국가 탄소중립 목표의 와해다. 2030년 폐기물 분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모든 분야 중 가장 높은 46.8%다. 더 많이 버리고 더 많이 태우는데 어떻게 910만 톤을 줄일 셈인가.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분석한 '기후변화에 대한 10개국 시민 인식 비교' 조사 결과를 보면(총 2만 1862명, 한국인 2004명), 한국인들은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기후변화'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대에서 70% 이상이 걱정한다고 응답했고, 55세 이상은 80%를 넘어섰다. 이 수치는 조사 대상 10개 국(노르웨이, 독일, 덴마크, 미국,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핀란드, 한국) 중에서도 단연 1위다.

시민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에 이 정부는 형편없는 예산 편성으로 응답한다. 그러니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린리모델링 160만 건, 어떻게 할 것인가? 전기차 420만 대, 방안은 있는가? 생활폐기물 재활용률 83%, 허언인가? 예산 없는 대책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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