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힌 초선 이해찬, 부서진 목사의 집 [정진동 평전]

박만순 2024. 10. 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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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 평전] 88 청주 택시 파업과 그 후

정진동을 아십니까. 농촌선교(1958~1971)에서 도시산업선교(1971~2004) 활동까지, 정진동은 충북 지역 민주화운동의 어른이었습니다. 정진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꿈꿨던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민중해방의 사상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의원님 오셨습니까?"
"네. 수고가 많습니다"

청주시장의 깍듯한 인사에 평화민주당(아래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덕담을 건넸다. 시장실은 북적거렸다. 청주시내 법인 택시 17개 회사 대표단과 청주경찰서장, 충북지방노동사무소장, 충북지방노동위원장, 청주산선 정진동 목사 등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청주시장의 일방적 임금협상 파기와 농성 중이던 택시노동자 부인들의 강제진압 사건 이틀 뒤인 1988년 7월 10일 정진동은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찾아가 "총재님. 조사단을 꾸려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멱살 잡힌 국회의원
▲ 이해찬 이해찬 국회의원이 청주시청에서 택시회사 사장들에게 멱살 잡히고 굴욕을 당한 상황을 택시노동자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의 설명을 들은 김대중 총재는 즉석에서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평민당 내에 '청주택시 파업과 강제진압 공동조사단'이 꾸려졌다.

단장은 박영록 부총재가 맡았다. 단원에는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제1야당 신민당 이철승 대표가 발탁해 서울 성북에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된 조세형이 포함됐다. 조세형은 1988년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당선됐다. 또한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이해찬 국회의원은 당시 초선의원으로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처음 도입된 '5공 비리 조사와 광주청문회'의 스타 국회의원이었다.

청주시 관내 기관장들은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내려온 김에 88 청주택시 파업의 물꼬를 틀기 위해 총출동했다.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눌 때까지만 하더라도 박영록 부총재와 조세형, 이해찬 의원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첫 여소야대 국면에서 선명야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석자 중 대다수의 얼굴이 기대와 흥분이 어우러진 밝은 모습이었다면, 소파의 한쪽 편에 나란히 앉아 있던 몇 명의 얼굴은 흑빛이었다. 택시 사장들이었다.

"지금부터 청주 택시 파업과 이의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사회과장의 경과보고가 있겠습니다." 청주시장의 인사말에 이어 청주시청 사회과장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였다.

"네 X이 뭔데 까불어!" 한 택시 사장이 고함을 치며 이해찬 의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2~3명의 택시 사장들이 몰려들어 이해찬을 둘러싸고 욕설과 삿대질을 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이해찬의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 고함을 친 이가 "국회의원도 까불면 가만 안 둬"라며 이해찬의 멱살을 잡았다.

그 순간 시장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택시회사 사장, 관리자, 폭력배 20여 명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 개XX들 다 때려죽인다." 험악해진 상황에 청주시장이 제동을 걸었다. "뭣하는 짓이오"라고는 하지만 말리는 시누이는 이해찬이 멱살 잡힐 때까지 수수방관하는 모양새였다. 현직 국회의원이 택시회사 사장에게 멱살을 잡히는 굴욕을 당한 날은 1988년 7월 13일이었다.

구사대
▲ 구사대 택시회사 사장들이 청주산선 정진동 목사를 면담하는 동안 구사대(택시회사 관리자)들이 밖에서 대기하는 모습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1973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아래 청주산선)가 만들어진 이래 가장 많은 양복쟁이들이 청주산선 문을 두드렸다. 7월 14일 오전 11시 청주산선 2층 응접실에서 법인 택시 17개 회사 사장들과 정진동이 마주 앉았다.

불과 하루 전에 청주시청에서 국회의원들에게 '깽판'을 친 사장들이 개과천선(?)한 것인지 협상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한 택시 사장 첫마디가 가관이었다. "목사님 당장 기사들 돌려보내세요,"

정진동은 기가 막혔다. 문화택시 한봉룡이 각목에 머리를 맞고, 택시 기사 부인들이 강제진압을 당해, 임신한 여성이 태아를 유산한 것이 불과 엿새 전이었다. 더군다나 이해찬 의원이 멱살을 잡힌 것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진동은 택시 사장들이 와서 먼저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정중한 사과부터 할 것으로 기대했다.

거기에 대뜸 '택시 노동자들을 자기 회사에 돌려보내라'니, 적반하장격이었다. 총파업의 원인이 됐던 완전월급제 폐기나 수당 문제는 일절 언급조차 없었다. 구체적인 협상안이 전무한 것이다.
▲ 시내 진출 파업중인 택시노동자들이 청주시내에 진출해 시위하는 모습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 전투경찰 진압작전중인 전투경찰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이보시오. 내가 노동자들을 억류한 것도 아닌데, 돌려보내고 자시고 할 게 무에 있소?"
"이 양반이 장난하나!"

정진동의 차분한 대꾸에 반말지거리가 되돌아왔다. "당신들 협상하러 왔으면 예의를 갖추시오" 정진동의 호통에 17명의 사장들은 씩씩거리기만 했다.

잠시 후 아무개 사장이 입을 열었다. "무조건 돌려보내세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회사 안에서 해결할 테니까" "그러니까 당신들 안(案)이 무엇이요?" "시끄러워. 더이상 얘기할 것 없어!" 고함을 친 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동시에 양복쟁이들이 일어났다.

1층 마당과 수돗가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던 노동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양복쟁이들의 성난 얼굴을 보고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직감했다. 이내 200여 명의 택시 노동자들의 얼굴이 흑빛이 됐다.

"임금협상 다시 하라!"는 선창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노동자들이 "다시 하라! 다시 하라! 다시 하라!"고 외쳤다. 사장들은 눈만 부릅뜬 채 교회 철문을 나섰다. 교회 밖 중앙여고 담벼락에는 와이셔츠와 티셔츠를 입은 50여 명의 장정들이 사장들에게 "고생하셨다"며 인사를 건넸다.

50여 명의 장정들은 다름 아닌 법인 택시 관리자들이었다. 일명 '구사대(求社隊)'로 유사시에 청주산선을 습격해 노동자들을 테러하기 위해 준비된 이들이었다. 즉 택시 사장들은 택시 파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주산선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백기 투항을 강요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구사대를 동원한 것이 그 실질적 증거이다.

썩은 생선
 구사대가 파손한 정진동 자택.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자신들이 영원한 '갑'이라고 생각했던 택시회사 사장들은 '을'의 반란(총파업)에 당황했다. 특히나 택시 기사 대부분이 운행을 멈추고, 청주산선에서 장기농성하며 날이면 날마다 데모질을 해대니 말이다.

살면서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한 이들이었기에 국회의원 앞에서도 큰소리를 쳤고, 적지(敵地)인 청주산선에서도 정진동과 노동자들에게 백기(白旗) 투항을 요구했던 것이다.

한편 사장들은 청주산선 정진동 목사와 조순형 전도사(1949년생)를 '제3자 개입금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제3자 개입금지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공론화됐으며, 이후 헌법소원까지 가게 됐다.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을'들의 희망이자 트러블 메이커인 정진동을 혼쭐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30여 명의 불청객들이 봉고차에서 내려 까치발을 하고 움직였다. 큰길에서 골목길로 접어든 이들은 목표물인 기와집으로 이동했다. 인솔자의 "저 집이여"라는 목소리에 불청객들은 각자 소지한 비닐봉지를 점검했다.

이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목표물인 청주시 사직동 360-8번지 기와집에 비닐봉지의 내용물을 꺼내 지붕에 던지기도 하고 벽에 바르기도 했다. 악취가 진동했다. 비닐 안의 내용물은 다름 아닌 썩은 생선내장과 계란, 새우젓이었다.

당시 집에서 혼자 있다가 봉변을 당한 이는 정진동의 배우자 조정숙(1935년생)이었다. 비명을 질렀지만 폭력배로 보이는 이들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 이웃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정진동의 집에 얼씬하지 못했다.

1시간여 동안 행패를 부린 이들이 물러가서야 이웃들이 코를 쥐고 한둘 나타났다. 훗날 불청객들을 실어나른 봉고차가 Y 택시회사 관리자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기에 불청객의 정체는 택시회사 관리자와 그들이 고용한 폭력배였다. 이날의 행동대장 Y 택시회사 관리자는 교도소 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음날인 1988년 7월 23일 사건은 재연됐다. 청주산선 교인이자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이기도 한 이영자가 "사모님이 걱정된다"며 외손주를 데리고 와 있을 때였다.

전날과 비슷한 시각 또 한 번의 난동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쇠파이프로 유리창이 파손되고 거실문을 통해 깨진 보도블록과 돌맹이가 날아들었다. 조정숙과 이영자가 비명을 지르며 돌맹이를 피하며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전쟁 아닌 전쟁은 멈췄다.

그런데 잠시 후 이영자가 '악'하며 기겁을 했다. 자신의 외손녀 윤도화(당시 4세) 머리 근처에 어른 주먹만한 돌맹이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였다.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불씨
▲ 평민당사 농성 파업상황이 진척되지 않아 택시노동자 부인들이 평민당 중앙당사를 점거농성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코를 만지면 뭐라구요?"
"태업요. 하하하."

방용석이 묻고 택시 노동자들이 답했다. 강사 방용석이 원풍모방 파업 당시 현장을 다니면서 자신이 코를 만지면 조합원들이 태업을 했다는 말이다.

전 원풍모방 노동조합 위원장 방용석은 강의를 듣는 노동자들의 배꼽을 빠지게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정서에 맞는 강의를 한 것이다. "단결만이 살길입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친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파업은 정치학교의 공간이라고 했던가? 후일 노동부장관을 하게 되는 방용석의 강연 전후로 백기완, 문익환, 송영길, 김낙중 등의 특강이 이어졌다. 택시 노동자들로써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이어지는 선전전, 집회, 농성에도 불구하고 택시 파업의 근원적 문제인 임단협 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이런 꽉 막힌 상황에 물꼬를 트기 위해 여성들이 나섰다. 택시 노동자 부인 25명이 8월 2일 평민당 중앙당사 농성에 들어갔다.
▲ 항의시위 정진동 목사 자택을 파괴한 택시사장 등을 구속하라는 항의시위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 법원 국정감사 청주지방법원 국정감사에 초미의 관심을 보인 택시노동자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일주일간의 농성이 별 소득이 없자, 청주산선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 100여 명이 8월 23일 상경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청주 택시 파업 문제를 전면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15일 만에 농성을 풀고 청주로 내려왔다.

10월에 청주지방법원, 노동부 충북지방사무소,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택시 파업과 정진동 집 파손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렇게 투쟁은 국회에서, 청주산선에서, 거리에서 그해 12월까지 이어졌다. 힘겨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없이 '88 청주택시 파업'은 약 150명의 해고자와 10명의 구속자를 남기고 종료됐다.

택시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씨가 간직됐다. 민주노조와 사회 민주화라는 염원이었다. 총파업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이후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하는 이들도 생기고, 정진동으로부터 감동을 받은 이는 평생 '정진동 따라 살기'를 자신의 신조로 삼기도 했다.

88 택시 파업을 계기로 민주 택시 노동조합을 염원하는 소모임 '청주지역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택시조합'(약칭 '청민노')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 노동운동의 무풍지대인 청주에서 민주노조운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990년도에는 '청주지역 노동자 총단결로 노동자의 날 쟁취하자'라는 제안서를 지역 민주단체에 제안했다. 당시 우암국민학교 앞에 있던 전교조 충북지부 사무실에서 노동절 준비모임을 한 것은 1990년 4월 12일이었다.
▲ 가두시위 구속된 운수노동자를 즉각 석방하라는 팻말을 들고 가두시위에 참석한 운수노동자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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