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시선 사이에서 배우라는 이름을 지키려 했던 날들
2004년, 영화 '늑대의 유혹'이 개봉했다.비 오는 거리에서 강동원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은 그해 청춘의 얼굴이 됐다.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서 있던 교복 입은 소녀, 스크린 속 ‘정한경’이었고, 현실의 신인 배우 이청아였다.
처음 영화로 데뷔했는데, 쏟아진 반응은 응원보다 시선이었다.
“왜 하필 쟤야?”강동원을 좋아하던 여중생, 여고생 팬들 사이에서 조롱 섞인 말들이 돌기 시작했고악의 없는 질투는 댓글이 되고, 눈빛이 됐다.
이청아는 훗날 방송에서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그땐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었죠.”
영화가 잘될수록 혼자만의 감정은 더 조용하게 부풀어올랐다.첫사랑의 얼굴이 된 대신, 스물도 안 된 마음은 매일 상처받고 있었다.
스크린 속 기억은 남고, 사람은 버텼다
그래도 연기를 놓지 않았다. 이겨냈다. 누군가는 캐릭터로 기억했지만, 이청아는 배우로 살아가야 했다.
작품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이름은 익숙해졌고, 감정은 단단해졌다.
《꽃미남 라면가게》, 《VIP》, 《미씽》을 지나며질투의 대상이 아닌, ‘연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얼굴이었던 배우가, 시간이 지나 ‘첫사랑 이후에도 남는 얼굴’이 된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만큼 사람들이 봐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달라졌다. 한 장면이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는 있지만,한 사람의 인생은 그 장면을 지나 더 멀리 가야 하니까.
이청아는 한 장면에 머물지 않았고, 끝내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참 멋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