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사투리 연기가 현지인 수준인데 의외로 서울 출신인 배우들

사투리 연기의 정석이라 불린 고(故) 김지영은 팔도 사투리를 군 단위까지 구사하는 ‘팔방미인’ 연기자였다. 놀라운 건 그 출신지가 서울이라는 점. 그를 잇는 배우로 꼽히는 이정은과 성동일 역시 의외로 서울·인천 출신이다. 이 세 배우는 표준어가 몸에 밴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전국 각지의 억양과 어휘를 정확히 재현해내며 관객과 시청자를 감탄시켰다. 현장을 찾아 귀를 열고, 사람을 관찰하며, 억양 속 생활사를 담아내는 이들의 연기는 단순한 ‘사투리 흉내’가 아니라, 지역 문화와 정서를 옮겨놓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작품을 보면 ‘저 사람은 분명 그 동네 출신일 것’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서울·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어떻게 전국구 사투리 장인이 됐는지, 그 비결을 들여다본다.


김지영
팔도 사투리의 원조 달인

<도가니> <고맙다, 아들아>

1938년생 김지영은 초등학교 시절 함경도를 떠나 서울로 이주했지만, 연기 인생의 무기가 된 건 사투리였다. 경상도·전라도는 물론 각 지방 욕설까지 현지인처럼 구사했고, 영호남 억양을 군 단위로 구별해 쓸 만큼 디테일이 남달랐다. 비결은 철저한 현장 학습이었다. 지방 촬영이 잡히면 시장과 논밭을 찾아가 토박이들의 말을 듣고 따라 했으며, 필요하면 개인 교습까지 받았다. 머릿속에 ‘역할별 비디오테이프’를 저장하듯 억양과 호흡을 연구해, 대본을 받으면 맞는 사투리를 꺼내 쓰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관객은 ‘저 할머니 때문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향 말 들었다’는 반가움을 느꼈다. 방송계가 인정한 팔도 사투리의 대가였지만, 서울 토박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모두가 놀랐다. 김지영의 부재 이후, 이만한 사투리 장인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이정은
작품마다 새로 쓰는 사투리 연기

<미스터 션샤인> <우리들의 블루스>

이정은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현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아쉽다”고 말할 만큼 자기 검열이 철저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사투리 연기를 맡으면 곧바로 ‘스승’을 찾는다. 실제로 연극 후배 최민경을 사투리 선생으로 두고, 주기적으로 만나 대본마다 억양을 점검받았다. 작품에 따라 연령·성격·습관을 반영해 억양을 재설계하며, 영화사나 제작진이 제공하는 현지 녹음 자료까지 수집해 연습한다. 최근 개봉한 <좀비딸>에서도 그는 캐릭터의 생활사와 톤을 반영해 현실감 있는 사투리를 구현했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쌓고도 작품마다 새롭게 배우는 이유는 “사투리는 흉내가 아니라 삶”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덕분에 시청자는 매번 ‘배우 이정은의 사투리’가 아니라 ‘그가 연기한 인물의 사투리’를 만나게 된다.

성동일
오일장에서 시작되는 전국구 사투리

<응답하라 1994> <전우치>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과 전남 화순에서 자란 성동일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라도 사투리로 각인됐다. 그러나 그의 사투리 포트폴리오는 전국구다. 드라마 <전우치>에서는 경상도, <아이리스 2>에서는 충청도 억양을 소화했다. 비결은 철저한 관찰이다. 여행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오일장을 찾아 어르신들의 대화를 촬영하고, 이를 집에서 반복 재생하며 익혔다. 연극 시절에는 검열을 피해 마당극 형식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배웠고, 이후 대본도 표준어에서 사투리로 과감히 바꿔 연기해 캐릭터를 살렸다. 그는 “입금만 되면 사투리 전국구로 다 된다. 외국어만 못한다”며 웃지만, 사실은 캐릭터마다 ‘모델’을 정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치밀함이 숨겨져 있다. 표준어권 출신이지만, 전국 어디서나 ‘현지인’처럼 들리는 이유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