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외계인 상상해온 스필버그의 새 SF ‘디스클로저 데이’

이다연 2026. 6. 1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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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방송·문화]
‘외계인 존재 은폐’ 가정에서 출발
비밀조직에 맞서는 폭로자 이야기
에밀리 블런트 연기가 시선 붙잡아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의 장면들. 위쪽부터 핵심 배역을 연기한 에밀리 블런트, 조쉬 오코너, 콜린 퍼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80세의 노장은 평생 외계인을 상상해 왔다. 정확히는 외계인이 상륙한 지구를. ‘미지와의 조우’(1977)에서 그 낯선 지성은 음악을 통해 인간과 교감했고 ‘E.T.’(1982)에서는 한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더니 ‘우주전쟁’(2005)에선 재난과 공포의 얼굴로 지구와 인간을 공격했다.

2026년,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래된 호기심을 다시 한 번 변주한다. 우리가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면? 아니다. “우리가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세상은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10일 개봉한 ‘디스클로저 데이’(아래 포스터)는 미국 정부가 수십년 동안 외계인의 존재를 은폐해 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북한 내 반군의 도발로 제3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근미래의 지구. 정부 비밀 조직 ‘워덱스’의 외계인 학대 기록을 유출한 보안 전문가 다니엘(조쉬 오코너), 붉은 새와 조우한 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게 된 기상 캐스터 마거릿(에밀리 블런트)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두 인물이 비밀을 폭로하려는 축이라면, 워덱스의 수장 노아(콜린 퍼스)는 강력한 억압의 축이다. 이 대립 속에서 ‘로스웰 사건’과 ‘51구역’ 등 오랜 세월 미국 사회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기표들이 영화라는 텍스트 내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1947년 “외계인은 존재한다”던 로스웰의 발표와 번복 이후 반세기 넘게 음모론을 키워온 미국의 역사적 맥락은 진실과 권력, 믿음과 의심 사이의 유구한 긴장을 효과적으로 호출해 낸다.

아쉬움은 영화가 그 논쟁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당장 세계대전이 터져 내일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인간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는 외계인의 존재가 핵전쟁보다 더 어마어마한 정보가 될 수 있을까? 현대인들에게는 사실 ‘몰라도 그만인’ 수준의 헐거운 기밀에 가까울 수 있다.

다소 진부한 설정과 늘어지는 후반부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시선을 붙드는 힘은 에밀리 블런트에게서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통제 불능의 초자연적 변화에 휘말린 마거릿의 혼란을 블런트는 두려움과 웃음, 카타르시스로 종횡무진 확장한다. 마거릿이 지닌 신비로움과 인간적 취약함은 블런트의 연기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현실의 밀도를 얻는다.

안면 인식 기술을 미리 선보였던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가 증명하듯 우수한 SF는 언제나 도래할 미래의 거울이었다. 감독은 “내가 본 모든 SF 영화는 결국 현실이 되는 것들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외계인의 도래를 빌려 쓴 인간에 관한 영화다. 질문의 웅장함에 비해 서사적 해답은 다소 평이하지만, 반세기 동안 “공감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 믿어온 거장의 인간적인 SF는 여전히 반짝거린다. 145분. 12세 관람가.

이다연 기자 id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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