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안고 사는’ 소청과 전공의…“가족 만들지 말아야” 슬픈 비명

채혜선 2026. 8. 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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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소아 중환자실의 모습. 사진 '다음 세대 소청과 모임(Nextgen Pediatrics·NGP)'

“어릴 때 천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숨쉬기조차 괴로웠는데 의사 선생님이 처치해주면 거짓말처럼 숨이 트였어요. 나도 저런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3년 차 전공의 A씨가 이 전공을 택한 이유다. 그는 어린이 환자들이 자신의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면 여전히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한다. A씨는 “진료 특성상 의료소송 위험과 보호자 민원이 끊이지 않아 늘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이달이면 소청과 전공의 70명뿐…전공의 4인 인터뷰


지난달 말 전국 소청과 전공의들이 꾸린 ‘다음 세대 소청과 모임(NGP)’ 소속 전공의 4명을 인터뷰했다. 필수의료인 소청과의 붕괴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이다. 이들에게 소청과를 선택한 이유와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 후배들이 이 길을 택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물었다. 답변에는 전공에 대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교차했다.

4년 차 전공의 B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사법 리스크다. 그는 교수들이 의료 소송으로 오랜 시간 마음고생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백신 예방접종 후 팔이 부어오른 아동의 보호자로부터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항의를 직접 들은 경험도 있다.

B씨는 “소청과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선배들이 ‘늘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일 것’이라며 말렸다. 그런데도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었다면 과연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한다면 ‘차라리 가족을 만들지 말아야 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 한 어린이병원의 모습. 뉴스1

이들이 꼽는 소청과 기피 원인은 의료소송 부담만이 아니다. 소청과를 마친 뒤 소아신경과·소아중환자의학과 등 세부 전공을 선택하고 실력을 쌓아도 전문성을 살려 일할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도 젊은 의사들을 밀어낸다.

4년 차 전공의 C씨는 “소청과는 수가가 낮아 병원 입장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특히 지방 병원은 교수 등 세부 전문의를 채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 세부 전공을 해도 갈 자리가 없는데 힘든 과를 선택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청과 전체의 명맥이 끊길 위기인데, 그 안에서도 소아신장·소아중환자의학·소아혈액종양 같은 세부 분과는 인력 단절이 더욱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김영옥 기자

세부 진료 분야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2021~2025년 배출된 소아혈액종양과 소아신장 전문의는 각각 13명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에서 소아외과를 전공하는 전임의도 단 3명뿐이다.

지역에서는 이미 진료과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북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는 조만간 문을 닫게 된다. 뇌전증 등 소아 신경질환을 담당해온 유일한 교수가 이달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어서다. 병원은 “후임자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이 지역 부모들은 “전북의 소아 의료가 초토화됐다”며 진료 공백을 걱정한다.

미래의 소아 의료를 책임질 인력 공급도 끊기고 있다. 이달 말 상급 연차 50여명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수련병원을 떠나면 전국에 남는 소청과 전공의는 70여명에 불과하다. 올해 상반기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은 20.6%로 전체 진료과 가운데 가장 낮았다. 정부가 지역·필수·공공의료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대로라면 서울 대형병원조차 정상적인 소아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예방접종 맞는 아이. 연합뉴스

전공의들은 사법 부담을 낮추는 제도와 낮은 수가 개선, 세부 전문의가 일할 자리 마련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서연 NGP 대표는 “소청과 전공의가 100명도 남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의사들은 있다”며 “사법 리스크를 비롯해 의사에게 집중된 부담과 책임을 덜어줄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더 늦으면 소청과 의사가 정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살리고 싶어 소청과를 택한 이들의 마지막 당부도 결국 소아·청소년으로 향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소아과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소청과 의사들은 아이들이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치료받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 💡"소아 의료를 살리려면…" 현장의 네 가지 제언

2023년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A 전공의: 수련 중인 대학병원에서도 365일 병원을 지키는 교수님들이 적지 않다. 이런 분들이 병가를 쓰거나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병원 시스템이 마비될 뻔한 상황을 여러 번 봤다. 지금의 소청과는 사실상 한 사람의 헌신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의사 2~3명이 함께 시스템을 유지하고, 누군가 자리를 비워도 운영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B 전공의: 소청과는 다른 과보다 금전적 보상이 적고 노동 강도는 높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수십억 원대 배상 판결이나 과거 이대목동병원 사건 같은 사례는 그런 사람들조차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국가가 먼저 의사들을 보호해주고, ‘이런 일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야 한다.

C 전공의: 지방 병원은 모든 소아 세부 진료과를 갖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아 인구가 적어 세부 전문의를 채용할 자리 자체가 많지 않다. 세부 전공을 해도 일할 곳이 없으니 굳이 힘든 과를 선택할 이유도 사라진다. 정작 가장 위기인 세부 분과는 하루하루 당직을 버티느라 목소리를 낼 사람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국가가 세부 전문의를 채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하고, 지역 간 이송체계도 손볼 필요가 있다.

김서연 전공의: 소아 의료는 사회 안전망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나 소청과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소아 환자 수가 적은 현실을 고려해 수가 체계 전반을 손질하고, 저출산 대책과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소아 진료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소청과와 연관된 의사·간호사 등 각 직역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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