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대신 ‘생활’을 팝니다…DMO가 바꾸는 로컬의 공식 [비크닉]
지난 3일 전북 김제시민문화체육공원에서 열린 꽃빛드리축제 현장은 봄꽃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겉으로 보면 여느 지역 축제와 다르지 않지만, 이곳에는 ‘없는 것’이 있다. 지역 축제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음식 바가지요금, 진 빠지는 주차난, 비슷비슷한 초대 가수다. 대신 김제 지역 농가와 로컬 브랜드가 부스에서 손님을 맞았다. 몇 해 전 귀촌해 송이버섯을 키우는 부부, 요리 유학 후 로컬푸드 식당을 준비하는 청년, 현지 특산물인 쌀 맥주를 건넨 가게 주인 등 즐길거리 아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한철 관광이 아닌 생활이 들어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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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역 축제는 다 비슷할까…. 문제는 ‘누가’에 있었다
김제가 붕어빵처럼 획일화된 지역 축제를 벗어난 비결은 외부 용역에 의존하는 대신 지역민이 나선 덕이다. 김제 지역 농가와 로컬 브랜드를 연결하는 역할은 김제 DMO(Destination Management Organization·지역 관광 추진 조직)에서 담당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DMO는 민간 관광 업체와 협력해 지역 고유의 관광 콘텐트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탑-다운’ 정책이 아닌 주민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단기적인 성과도 내야 하고 행정 편의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유사한 축제가 많아지고 민간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라며 기존 관광 정책의 한계를 짚었다. 축제를 운영한 최재문 김제 DMO 단장은 “지역에 인재가 없으면, 지방 상생을 위해 내려온 예산이 서울이나 큰 도시 등 외부로 나간다”며 “이 금액이 지역에서 온전히 세 바퀴 순환하면 그 효과는 210%가 된다”면서 지역민이 보조가 아닌 일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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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야밖에 없던 김제에 ‘지평선 투어’ 만든 DMO
DMO 도입 이후 지역 관광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마을회관으로 쓰이던 한옥을 찾았다. 지금은 ‘모두의 성산’이라는 이름 아래 마을 축제 공간이자 김제 관광 안내소로 기능하는 곳이다. 관광 지도는 물론, 주민들이 기증한 농기구와 공예품 등 생활 유물이 전시돼 있어 지역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곳은 ‘김제 지평선 자전거 투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메타세쿼이아 길과 벽골제를 잇는 둑길을 따라 주요 거점을 이동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밖에도 농가 민박 체험이나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인 ‘K 로컬살기’ ‘인사이트 트립’ 등 체류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의 시각으로 김제의 너른 평야를 경험하게 하려는 시도다.
이런 변화는 경험이나 체험에 가치를 두는 요즘 관광 흐름과도 닿아 있다. 지역에 머물며 주민이 낚시한 직접 잡은 제철 해산물을 맛보는 식도락 체험이나 지역 전문가와 함께 다원을 둘러보며 차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처럼 도시에서 접하기 어려운 경험을 새롭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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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로컬이 지역 소멸 피한다
DMO 개념은 아직 낯설다. 최초 시작은 1980년대 미국이지만 꽃을 피운 건 일본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도쿄로 인구가 집중되고 지방소멸 위기가 심화하던 일본 정부는 2015년 이 정책을 도입했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구마모토 현의 미나미오구니마치는 인구 4000명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DMO 도입 후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 일본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거듭났다.
지역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민이 직접 특산품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관광을 경영하기 시작한 것이 주효했다. 기존 온천 관광의 짧은 체류 시간을 지역 체험 관광으로 확장한 결과,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마을은 매년 약 120억원 규모의 고향사랑기부금을 유치하는 ‘돈 버는 마을’이 됐다. 결국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지역이 되려면 무엇보다 마을이 스스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시사점을 남겼다.

이를 벤치마킹해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DMO를 발굴하고 단계별로 지원하고 있다. 선정되면 연간 1억원, 사업 평가를 통해 우수사례에 들면 지원을 연장해 최대 5년간 5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17곳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발굴한 DMO는 전국 49곳이다. 올해부터는 여러 지자체가 연계하는 ‘권역형 DMO’도 도입됐다. 평창·횡성·강릉·동해가 KTX를 따라 관광 협력모델을 추진하고 옥천·보은·영동이 웰니스 테마로 연계하는 식이다.
매력적인 ‘로컬’ 만드는 청년들의 연결점
DMO의 목적은 지역 관광 활성화에만 있지 않다. 보다 궁극적으론 로컬의 자생력을 키워 지역 인구소멸을 막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선 지방소멸대응 정책에 따라 ▶지역을 탐색하고 단기 체류하는 생활인구 ▶정기적으로 지역과 교류하는 체류 인구 ▶장기 거주하거나 지역에 정착하는 정주 인구로 지역 유입 인구를 분류한다. 정주 인구가 늘려면 먼저 생활인구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귀촌·귀농 인구가 아니라 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이 우선 많아야 한다는 얘기다.

인구 8만명 규모의 소도시인 김제는 2020년대까지 매년 1500명씩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다가 지난해부터는 다시 반등하고 있다. 이 흐름을 이끄는 건 청년들이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DMO가 하고 있다. 대표적 프로그램이 바로 ‘쨈매’ 프로젝트다. ‘쨈매’는 전라도 방언으로 ‘서로를 단단히 묶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농가와 기획자가 만나 가루 쌀을 기획한다면 제분 업체와 제조 생산 과정을 만들고, 지역 베이커리가 김제 특산 빵을 출시하는 식이다. 진행될수록 여러 조직이 촘촘히 엮인다. 이 프로젝트로 2019년 이후 김제시에 46명이 전입했고 사회적 경제조직 9곳, 청년 창업 14곳이 결성됐다.

김제시 신풍동에서 복합문화공간인 ‘더 쌀랩곳간’을 운영하는 나진아 대표는 “쨈매 프로젝트에 참여해 농장이나 지역 도예가를 만나 제품을 개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제품이나 행사 기획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며 협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5년 전 귀향한 나 대표는 지역 특산물인 쌀과 곡물을 활용한 제품을 기획하는 공간을 열었다. 운영 3년 차에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쨈매 프로젝트 등 지역 사업에 참여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현재는 5명의 청년과 함께 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지역에서 청년도 ‘꿈’ 꿀 수 있다

김제에서 태어났다는 최재문 DMO 단장은 “열 살 때 공부하러 근처 큰 도시인 전주로 나갔고, 스무 살 무렵부터는 서울에서 살았다”며 “왜 우리는 큰 도시에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지역에서 쳥년은 꿈을 꾸면 안 됐는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로컬이 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그러면서 “지역에 살고 싶은 이들이 아무 연고 없이 정착하더라도 ‘비빌 언덕’을 DMO가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 전문가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인구수 유입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DMO를 통해 풀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이 잠시 머무는 관광지가 아닌 생활의 터전이 될 때 개인의 삶 역시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 b. 로컬
「 로컬은 지역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이 로컬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만납니다. 정부·지자체·기업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을 담아냅니다.
」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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