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80일간 2만 7363km 유라시아 횡단!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전기차 한 대로 80일간 2만 7363km를 주행하며 유라시아를 횡단한 ‘송송송’ 가족의 여정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장거리 전기차 주행의 현실적 한계와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이어졌지만, 가족은 이 경험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하며 도전의 의미를 남겼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을 확인하세요.

3대가 80일간 2만 7363km 왜 전기차로?
남들 안 하는 도전 해야죠
인터뷰 당일 헝가리에서 막 귀국한 송하진·송진욱·송다니엘 부자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전기차로 지구 반바퀴 '송송송' 가족

'2만 7363km.'
송주동(74)·송진욱(43)·송다니엘(8)·송하진(6), 3대가 전기차 한 대로 이동한 거리입니다. 이른바 ‘송송송’ 가족은 2024년 5월 광주광역시에서 출발해 80일 만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지구 반 바퀴를 전기차 한 대로 달렸습니다. 전기차로 유라시아를 육로 횡단한 국내 첫 사례입니다.

해외 취업으로 부다페스트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었습니다. 당초 계획한 거리는 1만 7198㎞였지만 여정 중 수시로 닥친 변수 탓에 실제 이동 거리가 1만㎞ 이상 늘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란 등 일부 국가에서 국경을 코앞에 두고 입국이 거부돼 경로를 다시 짜야 했고 어떤 날은 전기차 배터리 4%를 남긴 채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충전기 단자 규격이 달라 충전소를 찾아 헤맨 적도 많았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충전하다 식당 전체가 정전되는 해프닝도 겪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열과 근육통에 시달렸고 아이들은 긴 주행에 지쳐 투정을 부렸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간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히려 이번 도전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전기차 충전소에서 만난 한 러시아 남성은 한국을 좋아한다며 송 씨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고 차량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에 발 벗고 도왔습니다. 이 대장정은 영화 ‘송송송 가족여행: 전기차 지구횡단’으로 기록됐습니다. 주인공이자 감독인 송진욱 씨는 “기획에서 벗어나는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드론과 액션캠 등 다양한 장비로 촬영한 4K 영상에는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산악을 가로지르는 전기차의 여정이 생생하게 포착됐습니다. 작품은 ‘2025년 바르셀로나 국제 영화제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고 도쿄 국제 시네마 어워드·댈러스 무비페스트·뉴욕 리프트오프 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하진이는 “아빠, 왜 우리는 비행기가 아니고 차를 타야 해?”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을 가지고 송 씨를 만났습니다. 인터뷰 자리에는 두 아이도 함께했습니다. 왜 전기차로 지구를 횡단하기로 마음먹었을까요? 그리고 이 도전이 가족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전기차 횡단 여정 중 할아버지·아버지·손주 3대가 함께 남긴 사진. 사진 어쩌다필름
아빠 곁에서 전기차 충전 과정을 호기심 가득하게 지켜보는 다니엘 군. 사진 어쩌다필름

Q. 하진이가 물은 것처럼 왜 ‘차’였나요? 그것도 전기차를 선택한 이유는요?

남들 다 하는 일은 재미 없잖아요(웃음). 어느 순간부터 여행이 관광 위주로 바뀌면서 모험적인 재미가 사라졌다고 느꼈어요. 일부러 더 힘들게, 남들이 안해본 방식으로 떠나보고 싶었고 그게 전기차였어요. 제가 원래 몰던 차도 전기차였고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택시를 운전하셨는데 전기차가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라며 추천하셨거든요. 매연이 없으니까 정차 중에 목이 훨씬 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여행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랑 여행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있고 아버지가 건강을 더 잃기 전에 함께 긴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어요.

Q. 전기차로 인한 한계가 많았을 텐데요.

한국에서 20만㎞ 정도를 몰아보니까 ‘지구횡단도 가능하겠다’는 감이 생겼어요. 전기차의 한계나 배터리 소모 패턴도 충분히 익힌 상태였고요. 성공할 거라 믿으면서도 실패 가능성은 열어둔 채 준비했습니다. 고령의 아버지와 두 아이가 함께하는 여정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건 안전과 건강이었어요. 그래서 가족이 타는 전기차는 한 대로 하고 스태프 세 명은 가솔린 차량 한 대를 별도로 운행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였죠. 출발 전에 전기차 충전소 위치, 고도 변화에 따른 배터리 소모 속도, 국경 통과 절차 등은 충분히 조사했고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럽 전기차 환경을 봐온 경험도 도움이 됐어요. 그래도 현장에 가보면 예상 밖의 변수가 훨씬 많더라고요.

Q. 당초 계획을 가장 크게 흔든 변수는 무엇이었나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위험을 피해 이동해야 했고 촬영 협조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수는 드론이었습니다. 촬영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였는데 일부 국가는 반입 자체를 불허했거든요. 계획했던 루트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드론 문제로만 국경을 네 번이나 오갔고 몽골에서 러시아로 들어갈 때는 조사까지 받았어요. 그때 휴대폰에 ‘숨겨진 사진’ 기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삭제된 사진, 가려진 항목까지 전부 열어보더라고요. 아이들 휴대폰까지요. 가장 극적인 상황은 에스토니아 국경에서 벌어졌어요. 드론 반출 문제로 전원이 9시간 가까이 붙잡혀 있었어요. 촬영된 영상은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드론 장비는 끝내 반출 불가라 즉시 파손해야 했습니다.

Q. 전기차 배터리는 환경이나 기온 영향도 많이 받지 않나요?

맞아요. 특히 겨울에는 성능이 크게 떨어집니다. 여름에는 완충하면 428~450㎞ 정도 달릴 수 있지만 겨울엔 310㎞ 정도밖에 못 갑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상태로 움직이며 전기를 만드는 구조라 기온이 내려가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현장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극단적인 상황도 겪었습니다. 해발 3000m를 오르는 구간에서는 중력과 기온 때문에 배터리가 눈에 띄게 빨리 닳았어요. 100%에서 출발해 주행 가능 거리가 200㎞로 표시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100㎞로 반 토막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내리막에서는 회생제동(감속 시 모터가 발전기로 작동해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하는 기술) 덕분에 어느 정도 충전됐지만 정말 촘촘하게 계산하며 달려야 했어요.

Q. 또 다른 어려움은요?

배터리 화재 위험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요. 셀 편차가 커져 불안정해지거나 급속 충전 때 과충전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비를 챙겼고 혹시 몰라 방수포도 준비했습니다.

Q. 매일 장거리 이동이 힘들었을 텐데요. 아이들은 어땠나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프랑스 니스까지 하루 만에 달린 적도 있어요. 저녁 6시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도착했으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부산 왕복에 서울~경기 의정부 왕복을 더한 정도 거리죠. 중간중간 쉬면서 별도 보고 잠깐 눈도 붙이고 하니 힘들기보다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저랑 장거리 비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의외로 잘 버텼고요. 어차피 전기차는 네 시간 정도 달리면 충전 때문에 멈춰야 해서 장거리 운전이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습니다.

Q. 혼자 달렸다면 더 수월했을 텐데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아버지 건강을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후회돼요. 출발 직전에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아이들만 데리고 떠나려고 했는데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아버지의 의지가 정말 강했어요. 어머니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그건 제가 말렸어요.

인터뷰는 송주동 씨 없이 진행됐습니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뒤 며칠 만에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여정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암 투병 중이었던 그는 출발을 앞두고 “손자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길이 되지 않을까 해요. 긴 여정인데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걸 보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 좋지 않겠나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송 감독은 영상 편집 과정에서야 아버지의 오랜 진심을 하나씩 마주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랑이 가득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남길 수 있게 됐습니다.

Q. 편집하면서 마음이 힘들었겠습니다.

한동안은 영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둔 덕분에 아버지가 여전히 곁에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젊은 시절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요. 솔직히 예전에는 연세 들면서 갈라진 목소리가 듣기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있는데 편집을 하다 보니 그 목소리가 그렇게 따뜻하게 들려요. 스태프 차량에 타 계실 때 저한테는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들도 발견했고요. 운전하느라 놓쳤던 아버지의 표정과 마음을 그제야 제대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Q. 영화 말미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 보이더군요. 감독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아이들의 변화는 꼭 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보이후드’처럼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해가는 모습이 관객에게 주는 울림이 있잖아요. 저도 여정 한가운데 있었으니 무언가 성장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보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가족 안에서의 변화는 더 그렇습니다. 가장 친절해야 할 대상이 가족인데 정작 그게 가장 어렵거든요.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잘해줘도 잠깐 화내면 그 순간만 기억되듯이 저와 아버지 사이에도 그런 장면들이 남아 있어요. 여행이 끝나고서야 그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Q. ‘송송송 가족여행’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도 될까요?

3편까지 구상하고 있어요. 2편은 이번 여정에서 막혔던 나라들을 다시 들러보는 이야기입니다. 헝가리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이에요. 광주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기도 하고요. 차량을 해외로 반출하면 임시 수출입 규정 때문에 2년 안에는 반드시 국내로 돌아와야 해서 가능한 루트를 고민 중입니다. 3편은 자북극에서 자남극까지 종단하는 여정을 생각하고 있어요.

Q. 전기차로요?

일단은 전기차죠.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무동력 같은 방식도 상상해보고 있어요. 더 힘들수록 재미있잖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