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유로화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의 물류 차질까지 겹치면서 4월부터 국내 수입차 가격이 인상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의 수입차 관세 인상까지 더해져 수입차 가격 상승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3월 31일 마감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2.9원으로,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 마감 환율인 1483.5원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같은 날 마감 기준 원·유로 환율은 1594.43원으로, 2010년 2월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유럽과 미국에서 생산된 수입차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부분의 수입차 업체들은 본사에 달러나 유로로 대금을 지불하고 차량을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직접적인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달부터 주요 차종에 대한 가격을 2~3%대 조정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주력 모델인 E클래스는 1.7%, S클래스는 2% 안팎으로 오를 예정이다. BMW도 이미 3월부터 일부 차종을 대상으로 가격을 올렸으며, 인상 폭은 SUV 제품군을 중심으로 차종별 최대 300만원 수준이다. 또 다른 차종에 대한 인상 여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보와 폭스바겐 등 유럽 브랜드들도 4월 중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볼보는 전 모델 가격을 1.5~2.5% 인상할 계획이며, 폭스바겐은 주력 모델인 티구안과 골프의 가격을 각각 150만원, 100만원가량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브랜드인 토요타와 렉서스도 4월 중 가격 인상을 단행할 예정이다. 토요타의 인기 모델인 프리우스 하이브리드는 약 180만원, 렉서스 ES는 약 250만원 가격이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 상승과 함께 글로벌 물류 대란도 수입차 가격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동 지역 분쟁으로 인한 수에즈 운하 통행량 감소는 유럽에서 생산된 차량의 물류비를 크게 증가시켰다. 수에즈 운하 당국에 따르면 현재 하루 평균 32척의 선박만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이는 분쟁 이전 75척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수치다. 이로 인해 많은 선사들이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는 운송 시간과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상하이발 운임지수(SCFI)는 전년 대비 148%, 중국발 운임지수(CCFI)는 64%나 상승했다. 선사들은 현재의 높은 운임을 최대한 오래 확보하기 위해 용선 계약 기간을 연초 8개월에서 현재 24개월로 크게 늘렸고, 용선료 역시 전년 대비 52% 상승했다. 올해 수에즈 운하 물류 차질은 점차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분간 유럽 브랜드 수입차의 물류비 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파나마 운하도 비슷한 상황이다. 발틱국제해사협의회(BIMCO)에 따르면 2024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선박 용량은 2019~2022년 평균보다 10% 감소했다. 이는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의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물류비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당장은 가격에 반영하지 않겠지만,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가격 조정도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높은 유로화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국내외 물류비 인상 등 복합적 요인으로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환율이 1% 오르면 수입차 가격은 평균 0.7~0.8% 상승하는 효과가 있는데 최근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수입차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정책도 수입차 가격 상승의 또 다른 요인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 관세는 2025년 4월 2일부터 시행되며, 수입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2025년 5월 3일까지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인상으로 인해 자동차 한 대당 적게는 1000달러(약 147만원)에서 최대 6000달러(약 882만원)까지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입차 가격 상승은 시장 축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2월 수입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한 4만2156대를 기록했다. 업계는 환율 상승과 물류비 증가로 인한 가격 인상이 수입차 판매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은 올해 국내 수입차 시장이 전년 대비 1.2% 가량 축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들은 4월부터 본격화될 수입차 가격 인상에 대비해 구매 시기를 앞당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입차 딜러 관계자는 "3월 말 상담 문의가 평소보다 30% 이상 증가했다"며 "4월 가격 인상 전에 계약을 서두르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