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에 숨결을 불어넣다, 레고 테크닉 창작자 신권수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12년 차 레고 창작자인 신권수 씨의 다락방에는 100만 개의 레고 블록이 있다. 이 작은 블록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당장 건설 현장에 투입해도 손색없는 중장비 건설기계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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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수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다락방이 온통 레고 천지다. ‘레고 덕후’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들 방인데, 레고를 시작하면서 내가 쓰고 있다. 아마 여기에 있는 레고 블록만 100만 개는 되지 않을까. 많아 보이지만 나는 다른 창작자들에 비해 블록이 별로 없는 편이다. 이렇게 모았는데도 조립할 때 보면 꼭 부족해서 새로 사야 하는 것이 생긴다.

레고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2년 전쯤 큰딸이 어릴 때 콩순이 집을 만드는 레고 블록을 사 준 적이 있다. 당시 아이가 설명서대로 만들지 않고 창작해서 집을 만들었는데, 내가 사준 세트에 들어 있는 블록들이 종류나 개수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더 예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세트를 찾아 제품을 둘러봤다. 블록이나 완성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해 ‘내가 알던 레고가 맞나’ 싶더라. 그러다 레고 테크닉* 분야를 발견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딸 선물 사다 오히려 내가 빠져버린 거다.
* 레고 테크닉: 블록 조립에 동력 장치를 더해 움직이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레고의 한 분야

10년 전만 해도 ‘레고는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레고가 저렴하지 않다 보니 아내의 눈초리가 조금 따갑긴 했다. ‘다 큰 어른이 레고를 하느냐’는 시선이 있었지만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여기저기 전시도 하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다 보니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

레고 테크닉의 매력은 무엇인가?
머릿속에 그리던 것을 현실 세계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 다른 레고 시리즈와 달리 구동이 가능하며, 어떠한 제약 없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툴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또 특유의 ‘손맛’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테크닉은 ‘핀’이라는 작은 부품을 구멍에 끼워야 하는데, 그걸 반복하다 보면 손끝이 좀 아리다. 이게 바로 테크닉의 손맛이다.

가장 처음 만든 테크닉 작품이 궁금하다
제품 번호도 기억난다. 2005년에 출시됐던 레고 테크닉 8421이다. 모바일 크레인인데, 웅장한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다. 단종된 제품이라 중고 사이트에서 한참 기다린 뒤에야 겨우 구입해 조립할 수 있었다. 레고 블록으로 실제에 가까운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테크닉 분야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이제까지 20여 개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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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창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입문하고 1년간 자잘한 작품을 정말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단시간에 많은 걸 조립하다 보니 오히려 빨리 싫증이 나 매뉴얼에 없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인도에 3개월간 출장을 갈 일이 생겼는데, 일과를 마치면 골프 외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 작품 창작하기에 딱 맞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미리 커다란 크레인 설계도를 구하고, 대형 리빙 박스 4개에 블록을 담아 출국했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매일 조금씩 조립했다. 3개월 투자해 만든 그 크레인이 내 첫 창작 작품이다.

작품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 건축하듯 설계도부터 그리는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손이 가는 대로 만드는 거다. 만들고 부수길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 형태가 조금씩 정해진다. 두 번째는 주제와 제작 기간을 명확히 설정한 후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방식이다. 제품을 설계할 때는 가상 블록으로 원하는 형태의 모양을 조립해 볼 수 있는 3D 프로그램 스‘ 튜디오(stud.io)’를 이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부품과 색깔별로 모아 보기를 지원해 부품 리스트를 추릴 수 있고, 대략적인 작품 크기와 부품 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조립에 들어간다.

움직임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작품 조립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샘플을 만들어 보는데, 블록이 서로 간섭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개가 겹치다 보니 무거워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질 때도 있다. 내가 원하는 움직임이 매끄럽게 나올 때까지 작품을 해체했다 조립하기를 반복하며 보완한다. 이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처음에는 나도 많이 헤맸는데, 지금은 사이즈나 움직임을 토대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능숙하게 판단하는 편이다.

주로 중장비 건설기계를 만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압도적인 사이즈, 실제 장비와 거의 유사한 움직임, 정교한 부품과 짜임새까지 테크닉이라는 분야의 매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시를 할 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정말 좋다. 레고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중장비가 움직이기까지 하니 반응이 뜨겁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초대형 굴삭기 ‘배거 288’을 레고로 제작했다. ©신권수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초대형 굴삭기 ‘배거 288’이다. 굴삭기 버킷이 여러 개 붙어 있어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생겼다. 2016년 초에 시작해 그해 9월에 완성했는데, 블록만 2만~3만 개 사용했다. 시간도 많이 투자했고. 힘들게 완성해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자동차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데 레고 취미가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이다 보니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막힐 때도 많다. 그럴 때 블록으로 회사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본다.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이 잘 구현되는지 샘플로 만들어보고, 다음 날 출근해 실제로 다시 디자인을 해본다. 이렇게 해서 업무 성과를 올린 적도 있다.

창작의 끝은 넓은 공간이라고 하던데, 완성작은 어떻게 보관하나?
아직 창고나 작업장이 따로 없어 현재는 제주와 부산에 있는 브릭 아트 상설 전시관인 브릭 캠퍼스와 전국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2~3개월 전시한 뒤 다른 전시관으로 옮기는 식이다. 2014년부터 10년간 레고 창작 전시회인 ‘브릭코리아컨벤션’에 참석했고, 매년 코리아 브릭 파티에도 참석하고 있는데, 앞으로 국내 전시는 물론 일본, 싱가포르, 호주 및 북미 지역 등 해외 전시에도 작품을 출품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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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테크닉 창작자 모임 ‘다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입문할 때만 해도 레고 테크닉은 마이너 분야였다. 브릭코리아컨벤션 네트워크 시간에 우연히 레고 테크닉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창작자 여섯 분을 만나,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호를 따 ‘다산’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브릭코리아컨벤션 전시와 연계해 작품 활동을 하거나 외부 협업 활동을 하고 있다.

팀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각자 작품을 만들거나 주제를 나눠 디오라마 형식으로 조립하기도 한다. 각자 중장비를 만들어 큰 공사 현장을 만드는 식이다. F1 시리즈나 오프로드 트럭 등도 제작했다.

작품 제작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레고 테크닉은 실수하거나 설계가 틀리면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접근해 틀린 부분을 찾고 바로잡는 편이지만 그래도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리프레시 차원에서 다른 걸 만든다. 다른 것을 만들다 보면 의외로 그쪽에서 영감이 떠오를 때도 있다. 거기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용해 진도를 빠르게 나간 적도 많다.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레고 테크닉이 자동차를 표현하기 좋은 분야이기도 하고, 내가 현재 자동차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보니 레고사와 협업해 새로 나올 자동차 콘셉트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1:1 비율이면 좋겠지만, 공간이 여의치 않으면 축소판 형태도 괜찮다.

레고, 이렇게 시작하자

● 첫 레고, 무엇을 사야 할까?

시스템, 테크닉 등 분야와 관계없이 여러 장르를 조립해 보자. 그러다 보면 건물, 히어로, 어드벤처 등 내게 맞는 장르를 찾을 수 있다. 다만 조립하다 보면 자연스레 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지기 때문에 작은 제품보다는 큰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고 테크닉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매해 출시되는 플래그십 모델을 구입할 것. 플래그십 모델은 기본적인 테크닉 블록이 거의 다 들어 있는 ‘종합 선물 세트’다.

● 레고 창작 잘하는 법
만들고자 하는 모델을 정했으면 그와 관련한 영상이나 사진 등 레퍼런스를 최대한 많이 찾아봐야 한다. 실제 영상을 통해 움직임과 구동 방식을 상세하게 체크하고 설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 레고 부품 정리 방법
부품을 쌓거나 조립해 보관하면 공간 대비 많은 부품을 보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1, 1×12 블록이 있다면 그것들을 형태별로 나눠 쌓아 보관하자. 이렇게 정리한 부품을 종류별로 캐비닛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 효율적으로 찾아 쓸 수 있다.

● 부품 구입 방법
부품을 대량으로 살 때는 해외 온라인 부품 거래 사이트인 ‘브릭링크’를 이용하거나 레고랜드에 있는 ‘빅샵’에 방문해 볼 것. 특정 부품만 구입하고 싶다면 온라인 숍인 ‘브릭투게더’나 레고 스토어에서 운영하는 ‘픽어 브릭’을 추천한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5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사진 김동오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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