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한 정당이 70년 집권한 日 민주주의 심각”

강창욱 2024. 10.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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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진단… 자민당, 69년 중 65년 집권
“한 정당 장기집권, 취약한 야당은 심각한 결함”
자민당 의회, 대표성 의문… 유권자는 변화 갈구
일본 도쿄 자민당 당사 밖에 역대 당 총재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걸린 모습. AP뉴시스


한 정당이 지난 69년 중 65년을 집권한 일본 의회가 과연 대표성을 갖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자민당은 지난 69년 동안 단 4년을 제외하고 일본을 통치해왔다”며 “다른 의회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권력 유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고 전했다.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는 총선인 중의원 선거를 원래 임기보다 1년 앞당겨 오는 27일 실시하기로 했다. 자신이 이끄는 자민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정권 유지용 포석으로 해석된다.

한 정당의 장기 집권과 야당의 약세는 일본 민주주의가 건강한지, 유권자는 정치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심각한 결함’으로 거론된다고 WP는 설명했다.

총리 바뀌었지만 ‘자민당 정권’ 그대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규칙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고 정치 권리와 시민 자유가 대체로 잘 존중된다는 점에서 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된다. 문제는 내용이다.

하버드대 미·일관계연구소 나카노 코이치 연구원은 “서양인들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일본을 간과한다”며 “하지만 일본 역시 이제는 실질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심각한 사례”라고 WP에 말했다. 나카노 연구원은 오랫동안 자민당을 비판해온 정치학자다.

자민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친 기시다 후미오 전임 총리가 물러나고 당내 ‘미스터 쓴소리’라고 할 수 있는 이시바가 총재 당선으로 총리직을 물려받는 리더십 교체 과정을 거쳤다.

이시바는 정치 입문 후 28년 동안 자민당 내에서 원로 정치인과 특정 당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9명 중 “내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기에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는 후보로 평가됐다.

이시바 시게루(오른쪽) 신임 일본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전임 총리. 지난달 27일 일본 자민당 본부에서 이시바 당 총재 당선자 앞으로 기시다 당시 총리가 지나가는 모습. AP연합뉴스


총재로 선출된 그는 첫 소감 발표에서 “자민당이 규칙을 따르는 당, 일본을 지키는 당, 국민을 지키는 당이 되길 원한다”며 유권자 신뢰 회복에 가장 먼저 방점을 찍었다.

WP는 “하지만 이는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시다와 마찬가지로 이시바도 2세 자민당 정치인이고 자민당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기시다와 이시바의 바통터치도 결국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계속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다.

나카노 연구원은 “이시바의 승리가 70년 가까이 한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는 사실과 1억2500만 일본 국민의 지도자가 그 정당 당원들, 즉 인구의 극히 일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분열하지 않는 자민당, 야당에 ‘넘사벽’
자민당은 보수·진보 대립이 한창이던 1955년 양대 보수 정당이던 자유당과 민주당이 ‘공산주의 견제’라는 목표 아래 통합한 정당이다. 이들이 그해 총선에서 처음 집권하는 데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50~60년대 자민당과 그 구성원들에게 비밀리에 자금을 제공했다고 WP는 설명했다. 보수 연합 정당인 자민당은 공산주의에 동조적이었던 일본 사회당의 부상을 저지했다. 미국은 일본 사회당이 러시아와 연계돼 있다고 봤다.

이후 자민당은 강한 국방과 사회적 보수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느슨하게 묶인 ‘빅 텐트’ 정당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안보 매파’와 우익 민족주의자부터 온건 보수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다.

WP는 “한 전직 자민당 총리는 권력을 가진 여성을 ‘성가시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고, 이시바의 지도부 경쟁자 중 한 명은 육아휴직을 쓴 최초의 내각 장관이었다”며 자민당의 넓은 스펙트럼을 단적으로 부연했다.

도쿄대 예술·과학대학원 우치야마 유 교수(정치학)는 “이렇게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는 능력은 당이 분열하는 대신 당내에서 의견을 표출할 공간을 줬다”며 “이는 자민당의 강점”이라고 WP에 말했다. 자민당이 분열하지 않는 것은 유연성 덕분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2018년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한 뒤 당원들과 만세를 외치는 모습. AP뉴시스


도쿄대 법·정치대학원 사카이야 시로 교수는 “자민당의 권력 장악이 너무 강력해 야당을 약하고 분열된 상태로 유지하면서 사실상 넘을 수 없는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자민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민당이 집권하지 못한 시기는 93~94년과 2009~2012년뿐이다. 처음으로 정권을 잃은 93년에는 일본신당 등 여러 야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내부 분열로 9개월 만에 무너지는 바람에 자민당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2009년 총선에서는 38% 득표에 그치며 민주당(현재 입헌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

민주당 정부는 경제 문제와 2011년 후쿠시마 지진 및 쓰나미로 인한 원전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3년 집권은 야당이 자민당만큼 통치 역량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우치야마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 집권이) 혼란 속에 끝난 뒤로 그들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있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자민당에 대한 불신이 야당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세습 정치인, 불평등 문제 이해 못 해”
일본인들도 리더십 교체를 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WP는 올여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시마루 신지 후보가 3선에 도전하는 현직 고이케 유리코에 맞서 예상외로 선전한 사례를 들었다. 고이케가 이겼지만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 이시마루가 거둔 성과는 대중이 신선한 인물에게 관심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청년 참여를 독려하는 NGO ‘피프티스 프로젝트’의 노조 모모코 활동가는 “자민당 일당 지배는 유권자 무관심, 특히 자신의 목소리나 투표가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젊은 시민 사이에서 무관심을 유발했다”고 WP에 말했다. 이 단체는 국회와 지방 정부 구성원 대다수가 50세 이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 의원이 10% 미만이라는 점 등 자민당의 다양성 부족도 유권자 무관심에 기여한다고 노조 활동가는 평가했다. 연령이나 성별이 편중된 인적 구성 탓에 젊은 유권자의 관심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는 “20대 청년 중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기성세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부상했던 고이즈미 신지로(오른쪽) 중의원과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함께 찍은 사진. 고이즈미 신지로 인스타그램


유권자들은 일본에서 흔한 세습 정치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시바와 기시다를 비롯해 지난 30년간 총리의 절반 이상이 아버지로부터 의원직을 물려받았다.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전직 총리의 아들이자 자민당 4세 의원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유력 후보로 꼽힌 동시에 일본 내 만연한 세습 정치 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는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전체 득표수가 3위에 그쳤지만 동료 의원들로부터는 가장 많은 75표를 얻었다.

교토 도시샤대학 오카노 야요 교수는 “특권층 정치 가문 출신의 많은 지도자가 일본 사회에서 커지는 불평등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이 때문에 유권자가 지도자들이 자신의 일상적 고민을 이해한다고 느끼기 어렵다”고 WP에 지적했다.

그는 “세습 정치인이 너무 많은 이유는 그들이 당선되기 너무 쉽기 때문”이라며 “처음 출마하는 후보도 당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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