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현수막 손본다면서…국회 벽 채운 "재명의 늪""굴욕 외교'
“법치 부정, 범죄 옹호. 이재명과 비겁한 138표.”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 규탄한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2층 복도엔 이 같은 문구의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본회의장이 있는 로텐더홀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자리잡은 국민의힘 대표실 복도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범죄자 취급하는 포스터가, 민주당 대표실이 있는 왼쪽 복도엔 윤석열 대통령을 독재자로 표현한 포스터가 걸려 있는 식이다. 과거에도 상대 진영을 규탄하는 포스터가 붙긴 했지만 이렇게 국회 2층 복도를 꽉 채울 정도는 아니었다.
전체 포스터 중 비난 포스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압도적이다. 이날 국민의힘 게시판에 걸린 12개의 포스터 중 11개가 이 대표와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재명의 늪에 빠지다”, “단군 이래 최대 범죄 비호 세력 준동”과 같은 내용이다. 민주당 쪽도 총 13개의 포스터 중 11개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비방하는 내용이다. “윤석열 굴욕외교 OUT!”, “윤석열 정권 민주 말살 중단하라!” 등이다. 당의 정책과 행사 등을 알리는 홍보용 게시판이지만 사실상 상대 당에 대한 비난 게시판으로 변질된 셈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 여야가 거리에 붙이는 상호 비방 현수막을 자제하기로 공언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12월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 없이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이후 전국 각지의 교통 요지에 인신공격성 포스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여야는 앞다퉈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무차별 비방으로 가득 찬 현수막 때문에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며 “우선 각 당이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법을 재검토해 비방 현수막이 남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성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주호영 원내대표 발언에 공감하고 법 개정 검토 의사가 있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오가는 국회 복도에선 비난의 끈을 놓지 않은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명색이 민의의 전당인데 뭐 하는 건가 싶다”고 혀를 찼다.
여야는 상대 당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우리가 붙인 포스터는 민주당이 공격한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며 “민주당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부정적 이슈를 하도 많이 만들어 우리가 야당으로서 견제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부정적 이슈를 만든 쪽이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만 양측 모두 “어쨌든 비방 현수막이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엔 동의하는 만큼 국회 내 포스터도 수위 조절이 필요하긴 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새로 취임한 김기현 대표가 민생에 방점을 찍은 만큼 민생 행보나 정책 성과 쪽을 홍보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여야 간 네거티브 선전이 건전한 방식은 아니므로 자정 작용이 필요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6일 오후 여권을 향한 비방 포스터 11개를 뗐다. 대신 태극기 아래에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는 없습니다”라고 적은 포스터를 게시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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