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용지 없어 투표 못하는 나라…서울 한밤 분노 터졌다

박태인, 양수민, 오삼권, 김창용 2026. 6. 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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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빚어져 밤 10시까지 연장해서 투표가 진행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본투표 당일인 3일 서울 지역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22년 대선 사전투표 당시 ‘소쿠리 투표’에 이어 또다시 전국 단위 선거에서 부실 관리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야당은 서울 지역의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오후 송파·강남·광진구 해당 투표소 14곳에선 투표를 하러 온 유권자가 오랜 시간 대기하거나 발길을 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송파구 가락2동 제3투표소에서 만난 50대 여성 김모씨는 “오후 5시쯤 도착해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도 대기 줄이 줄지 않더라”며 “아무 설명 없이 그냥 기다리라고만 했고, 30분 뒤쯤 선관위 직원이 투표용지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 유권자는 ‘47’이라고 적힌 순번 대기표를 보여주며 “한참 기다리다가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가 다가와서야 이걸 받았다”고 했다.

선관위는 투표소에 입장한 유권자에 한해 투표 시간을 연장하고 추가 투표용지를 공수했지만, 오락가락 대응으로 불신을 키웠다.

서울 송파구 잠실4동 제7투표소를 찾은 서경희(42)씨는 “4시30분에 왔는데, 투표용지가 9장 남았다며 9명만 가능하다고 안내받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직전 투표소에 입장해 기다렸다는 최모(23·남)씨는 “추가 투표용지가 지급되는 걸 봤는데, 흰색 쇼핑백에 넣어서 가져오더라. 보안이 상당히 취약해 보였다”고 했다. 일부 투표소에선 선관위가 지퍼백에 투표용지를 담아 오면서 ‘지퍼백 사태’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후 10시까지 투표가 진행된 서울 송파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선 투표 중단 사태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선관위와 대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근 주민 박모(60대·남)씨는 “아파트 안내방송에서 처음엔 오후 6시까지 오라고 하더니, 나중엔 6시 이후에 와도 된다고 했다”며 “투표 종료 시각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고 말했고, 이모(60대·남)씨는 “오후 4시부터 투표도 못 하고 기다렸는데, 5시47분쯤 대기표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도 못 받았다”고 했다. 투표권이 침해됐다며 항의하는 주민들에 보수 유튜버까지 가세해 “투표함 막아라” “개표 중지” 등을 외쳤고, 이들은 투표가 끝난 뒤 선관위의 투표함 회수를 한참 동안 막아섰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선관위는 “지방선거 투표율이 지난 선거보다 높아서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사전투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유권자의 50% 분량의 투표용지를 인쇄했는데, 이를 각 투표소의 수요에 맞춰 제때 배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태가 커지자,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9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큰 혼란과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3일 밤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노태악 위원장과 면담한 뒤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 사태”라며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9시30분 기자회견을 열고 “유권자의 투표권·참정권이 심각하게 침해된 선거다. 서울시 선거는 오염된 선거”라며 “즉시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 진상 파악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는 다시 실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해 독일 베를린 지선에서 독일 헌법재판소가 선거 당국의 총체적 부실 운영이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고 선거 결과를 왜곡했다는 사유로 선거 전면 무효를 선언하고 재투표를 명령한 사례가 있었다”며 재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개표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장 대표는 이날 밤 과천 중앙선관위로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장 대표는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개표 중단을 요구했는데, 노 위원장은 ‘중앙선관위 권한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야당의 개표 중단 요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선관위의 사과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그 문제와 관계없이 많은 서울 시민이 투표를 진행했고, 투표가 마감되고 절차를 거쳐 개표소로 이송됐고 현재도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중단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중앙선거관위는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 기관으로서 일부 지역 주민들의 투표권 행사와 개표 관리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바란다”며 “청와대는 일련의 상황을 엄정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개표 중단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선관위가 대응해야 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박태인·양수민·오삼권·김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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