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말금 "가짜 장례식 연 딸, 어떤 맘으로 연기했냐면요..."

송연정 2025. 12. 9. 11: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영화 <고당도> 강말금 배우

[송연정 기자]

강말금은 연극 무대를 넘어 스크린으로, 그리고 안방극장으로 영역을 넓혀온 배우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올해만 〈로비〉, 〈폭싹 속았수다〉, 〈경도를 기다리며〉 등 쉴 새 없이 얼굴을 비췄다. 오는 10일 영화 〈고당도〉의 개봉을 앞둔 그와 지난 7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버지가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는데 부고 문자가 보내졌다. 영화 〈고당도〉 이렇게 시작한다. 가족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던 와중에 일회의 아내 '효연'이 연습 삼아 작성해 둔 부고 문자가 발송된다. 가족들은 문자를 정정하는 대신 가짜 장례식을 열어 조의금으로 등록금을 충당하기로 한다. 영화는 약 24시간 동안의 병원과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펼쳐낸다.
 강말금 배우
ⓒ (주)트리플픽처스
영화에서 강말금이 연기한 선영은 오랜 시간 병든 아버지를 간호해 온 간호사다. 강말금에게 이 영화는 권용재 감독과 단편 〈조의〉에서 시작된 인연이 장편으로 이어진 결과다.

"〈조의〉와 〈고당도〉의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5년 전 작품은 좀 더 차갑고 냉소적인 젊은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던 것 같아요. 〈고당도〉는 같은 소재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느껴져요. 코믹한 부분도 있고, 감독님이 저에게 주신 디렉션도 '선영이가 애잔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선영은 아버지의 연명 의료 거부 동의서에 서명했으면서도, 수년째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이어왔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 '이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돈 문제로 속을 썩이는 동생 일회에게는 냉정하게 선을 긋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먼저 나선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다시 마주 서는 사람. 강말금은 선영을 통해 그 질긴 관계의 고통과 책임, 그 과정에서 새어 나오는 애잔함을 그려냈다.

"선영의 MBTI를 굳이 따지자면 ISTJ일 것 같아요. 병원 간호사로 오래 일하며 숱한 죽음을 목격했을 테고, 의사의 사망 선고 과정이나 유가족의 반응도 익숙했겠죠. 그러다 보니 자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마냥 감정적일 수만은 없는, 다소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고당도> 스틸컷
ⓒ (주)트리플픽처스
강말금의 선영

강말금은 선영과 자신이 처한 환경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배우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누군가의 '선영' 같은 희생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서른 살이 되어 늦깎이로라도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언니가 제 몫의 '선영' 역할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며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어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죠."

둘째로 태어나 상대적으로 부양의 의무에서 자유로웠던 강말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녔다. 3년만 일하면 돈이 모여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 됐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서른이 되었다.

"서른은 결혼도 하고 유학도 가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나이였거든요. 저도 뭐든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 언니랑 둘이 앉아서 '네가 그만둘래, 내가 그만둘까'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결국 제가 먼저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죠. 그러니까 언니는 일을 그만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 뒤로 언니는 10년을 더 일했어요. 언니가 정말 그만둘 수 있는 때가 됐을 때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졌고, 그런 식으로 언니의 무언가를 놓치게 됐죠. 저 때문에."

여전히 언니를 떠올리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는 그였다. 곁에서 지켜본 언니의 삶이 있었기에, 강말금은 가족의 책임을 짊어진 선영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 진심이 닿아서일까. 개봉 전 만난 관객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한번은 따님과 함께 오신 70대 아버님을 만났어요. 그분은 누워 있는 아버지 배역에 이입해서 영화를 보셨더라고요. 저는 제가 맡은 선영이나 동호 세대의 입장만 생각했지, 그 윗세대의 시선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또 어떤 50대 관객분은 '연명 치료 중단 동의서'에 절대 사인하면 안 된다며 심각하게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장례식장 부조금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가족사를 꺼내놓는 분도 계셨어요. 그러니까 관객분들이 각자가 겪은 경험에 따라서 다른 장면과 기억을 가져가시는 거죠.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만날 다양한 세대의 관객분들도 〈고당도〉를 통해 저마다의 느낌을 얻어가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떫은 감을 먹어봐야 단맛을 안다

영화 제목인 '고당도'처럼, 강말금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최근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홋카이도 여행을 꼽았다.

"거기서 먹었던 우유랑 요거트랑 사과 바나나 옥수수 이런 게 너무 맛있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식당을 안 가고 그 제철 음식을 사서 아침에 먹었어요. 그 순간이 떠올라요. 그리고 이제 겨울이 됐잖아요. 양배추 쪄 먹으면 그게 그렇게 달수가 없어요. 그럼 저는 약간 감동받거든요. 그리고 그걸 가족하고 나눌 때 고당도 같다고 생각해요."

그에게도 인생의 '떫은 감' 같았던 순간은 있었다. 연기를 하며 처음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았을 때였다.

"지금 제가 봐도 정말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데도 연기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그날은 앓아 누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사실 영화를 볼 때 비판은 많이 하잖아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글로 쓸 자유도 있죠. 근데 막상 그 입장이 되니까 참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 눈으로 다시 확인했어요. 불편하게 만들었던 부분들이 뭐였는지. 정말 기술적으로 대사가 좋지 않았어요. 저는 연극을 주로 했었거든요. 연극 특성상 모니터가 어렵고, 극초반에 단점이 좀 드러나더라도 2시간 후에 감동을 주면 '우리는 잘 만났다가 헤어집니다'라는 게 가능했다면 영화는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는 주저앉는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고, 음성 학자를 찾아가 자신의 말투를 분석했다. 경상도 출신인 그에게 서울말의 미묘한 억양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녹음 파일을 보내드리면 '이런 부분이 보통의 서울 사람과 다르군요.'하면서 하나하나 짚어주셨어요. 어디를 가도 듣기 어려운 말이었죠. 그때부터 3년 동안 하루 30분씩, 0.5초 늦게 말 따라 하기 훈련을 했어요.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이 준 상처가 저에겐 떫은 감 같았어요. 그렇지만 그걸 먹어야 떫은 걸 먹어야 뭐가 단 건지, 또 어떻게 하면 달아지는지 알 수 있잖아요. 꼭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배우 강말금

강말금은 오랜만에 영화제 GV(관객과의 대화)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마주했다.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하다 보면 문득 찾아오는 고립감, 그 틈을 메워준 건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작품 속에서 매번 다른 얼굴로 변신하는 그에게, 그 수많은 캐릭터를 이질감 없이 소화해 내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문해력'이라는 의외의 답을 전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거 딱 하나가 뭐냐고 묻는다면, 문해력인 것 같아요. 드라마 〈신성한 이혼〉 때 붕어빵을 먹는 장면이 있었어요. 사실 그 신의 내용은 남자친구가 맛있다고 권한 붕어빵을 먹으면서 내가 '한 달 동안 유럽 여행 갈 건데 같이 갈래?'라고 물어봤는데, 남자친구가 '한 달..? 아니야, 괜찮아.'하는 짧은 신이었어요. 근데 그걸 붕어빵 신이라고 부르면서 헤매기 시작한 거죠. 그건 붕어빵 신이 아니잖아요. 단편적으로 붕어빵을 가지고 사람들한테 유머를 주겠다고만 생각하면서 목적을 잃어버린 거죠. 한 3일 내내 고민하다가 결국 깨달았어요. 제가 그 신을 붕어빵신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헤맸다는걸요. 그런 것들을 찾는 거, 그게 문해력인 것 같아요."

그는 이 능력이 연극을 하던 시절, 특출나게 잘난 게 없어 대본을 껴안고 몇 번이고 텍스트를 분석하다 보니 키워진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잘 모르는 저의 모습에서 나오는 걸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연극 생활을 할 때 '못하니까 배우 하지 마'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자격지심에 시달린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정말 연기를 잘하고 고민이 많은 후배한테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던 한 선배를 만났어요. 그분이 어느 날 같이 연기하다가 '너는 얼굴이 참 많다. 나는 나를 믿어'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어'라고 판단한 본인의 말이 맞다는 거죠. 그 말이 정말 빛 같았어요. 아직도 그대로 기억날 정도로요. 그런 부분들이 다양한 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 앞으로 어떤 배우로 관객을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세상에 줄 메시지가 있는 이야기의 전달자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머리맡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게 배우라고 생각해요. 〈조의〉도 그렇죠. 2018년 어느 날 감독님이 누워서 이렇게 자고 일어나 가지고 문득 한 줄 쓰지 않았을까, 그게 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가 출연한 작품들도 다 그렇고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머리맡 꿈인 거죠. 그 꿈이 현실화될 때 가장 적합한 얼굴이 되어주는 것. 그리고 촬영장으로 향할 때 '연기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러 간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렇게 적극적인 메신저이자 배우로서 관객들과 오래 만나고 싶습니다."

강말금·봉태규·장리우·정순범·오운백 주연의 영화 〈고당도〉는 12월 10일 개봉 예정이다.
 영화 <고당도> 포스터
ⓒ (주)트리플픽처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soooooong)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