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조에 끝내 양금덕 할머니 무릎 꺾였다“
[김형호 기자]
▲ 2010년 3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속에서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입장 내놓은 시민모임 "판결금 수령, 치매 투병 할머니 뜻인가"
시민모임은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난 23일 치매 진단을 받고 1년 가까이 병원에서 투병 중인 양금덕 할머니를 대신해 자녀 협의를 거쳐 판결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이날 입장문을 발표했다.
시민모임은 입장문에서 "할머니는 2023년 5월부터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그 사이 치매 판정을 받았다. 2023년 11월부터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심규선 이사장이 광주를 방문해 할머니 가족과 접촉, 제 3자 변제에 합의한 사실을 (판결금 입금 전) 알게 됐으나 가족의 뜻을 돌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 제3자 변제 방침 발표 10일 뒤 한일 정상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윤석열 정부는 이보다 10일 앞선 3월 6일 강제동원 관련 소위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2023. 3. 16 |
ⓒ EPA=연합뉴스 |
또한 "경위를 모두 알 수 없지만, 일본의 사죄와 미쓰비시의 배상을 위해 앞장서 온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역사정의를 세우기 위한 발걸음이 여기서 멈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양금덕 할머니 측의 좌절은 윤석열 정권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며 "일본이 하나를 요구하면 두 가지를 스스로 내 준 윤석열 정권의 친일 퍼주기 외교, 헌법 취지를 위반해 대법원 배상 판결의 역사적 성취마저 뒤엎은 윤석열 정권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6세(호적은 93세) 양금덕 할머니 측의 선택지는 갈수록 협소해 졌다"며 "'사죄'가 우선이라던 96세 양금덕 할머니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압살해 온 '한일 공조'에 의해 무릎이 꺾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금덕 할머니의 역사 투쟁은 여기서 멈췄지만, 윤석열에 맞선 역사 정의 투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입장문 전문.
'사죄'가 우선이라던 96세 양금덕 할머니,
피해자 압살해 온 한일 공조에 무릎 꺾였다.
▲ 광주전남지역에서 동원된 근로정신대 소대장들이 일본 사감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나주에서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1944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
ⓒ 나고야소송지원회 |
양금덕 할머니의 32년 투쟁
▲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나고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는 심경을 밝히고 있다. 이동련 할머니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카메라를 피하고 있고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은 양금덕 할머니. 1999년 3월 1일. |
ⓒ 나고야소송지원회 |
▲ 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환호하는 이금주 광주유족회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 모습. |
ⓒ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
▲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일본이 무역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의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
ⓒ 이희훈 |
▲ 일본 규탄 구호 외치는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2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규탄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남소연 |
▲ 대법원 대법원 |
ⓒ 이정민 |
대 중국봉쇄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일 간 역사문제는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은 기존 틀을 재편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윤석열 정권의 출범(2022.5.10.)을 반겼다.
윤석열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조성된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문재인 정권에 돌리며, 기존 대일 외교정책 방향을 전면 수정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복원한데 이어,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한미일 동아시아 신냉전(인도·태평양) 체제의 제물로 삼는 노골적인 대일 저자세 행보를 본격화했다.
특히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및 특허권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이 2022년 4월과 5월 잇따라 대법원에 계류되면서 일본 기업 자산매각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은 해법을 한국이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적반하장 태도를 취했다.
이에 윤석열 정권은 조속한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한국이 선제적으로 해법을 찾겠다며 공언하고 나섰다. 그 일환으로 '민관협의회'를 가동(2022.7.5.)한데 이어, 외교부가 미쓰비시 자산 강제매각 사건을 맡고 있는 대법원에 판결을 보류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2022.7.26.)함으로써 사실상 판결에 개입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3년 3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를 마치고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정부는 2023년 1월 12일 요식적인 강제징용 국회 토론회를 거친 뒤,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3월 6일 강제동원 해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국내 기업들의 출연금을 재원으로 하여,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책임을 한국이 대신하는 소위 '제3자 변제' 방식이었다.
이어 4월부터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대법원에서 승소한 15명(피해자 기준)을 대상으로 소위 '판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존자 2명(이춘식, 양금덕)과 고인이 되신 피해자 2명의 유가족 등 4명은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반대해 끝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양금덕 할머니는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더러운 돈은 받을 생각은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 옷 벗고 내려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조직적 탄압
▲ 지난 24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위원회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 기사 |
ⓒ 조선일보 |
▲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 회원이 11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열린 '금요행동'에 참여해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다. 2024. 10. 11 |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급기야 <국민의힘>이 가짜 시민단체를 뿌리뽑겠다며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대일 굴욕외교에 대한 싸늘한 민심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시민단체에 대한 도덕적 공격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공격은 시민단체를 고립시키는 한편, 이런 틈을 타 제3자 변제에 반대하고 있는 피해자를 시민단체와 분리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
"피해자의 고통 함께 나누자" 역사정의시민모금 운동
"육당 최남선과 이광수도 일제 36년을 못 견디고 다 변절했는데, 그들에 비하면 70년 넘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야 말로 대한민국의 넋을 지닌 자랑스러운 어른들이다. 굶어 죽어도 일본의 사죄 없이는 윤석열 정부가 주는 그런 돈 안 받겠다고 하는 양금덕 어머니의 의지를 우리 국민들이 지켜줘야 하지 않겠느냐" (안성례 초대 오월어머니집 관장)
▲ 광복절을 하루 앞 둔 14일 광주광역시 금남로 전일빌딩 245에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 시민단체가 마련한 '역사정의 시민모금 전달식 및 응원의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건강 상의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한 피해자 이춘식 어르신 영상을 보고 있다. |
ⓒ 김형호 |
정부, 법원 기습 '공탁' ...제3자 변제 사실상 '파산'
모금운동 시작과 함께 정부는 2023년 7월 3일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습적인 법원 공탁절차에 나섰다. 외교부가 브리핑에서 밝혔듯이 정부의 기습공탁 시도는 모금운동이 시민사회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자 초기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정부의 계획은 크게 빗나갔다. 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알려지면서 오히려 모금운동이 더 크게 확산되는 자극제가 된 것. 모금운동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한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 소장은 300명의 지인을 만나 모금 참여를 권유했다. 광주 지역사회가 특정 사안의 모금운동을 위해 너나 없이 팔을 걷어부치는 사례는 근래 없는 일이었다.
모금운동은 전국에서 십시일반 힘을 보탠 시민들의 힘이 컸다. 인천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60대 여성이 자필 편지와 함께 오만 원짜리 지폐 2장(10만원)을 봉투에 담아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이 시민은 "방송에서 양금덕 할머니가 그런 추잡한 돈은 굶어죽어도 안 받을랍니다고 했던 말씀에 너무 감동했다"며 "할머니의 말씀이 국민들 자존감을 지켜주었다"고 말했다.
▲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을 상대로 공탁 절차를 개시한 가운데, 4일 오후 외교부앞에서 ‘대일굴욕외교, 역사정의-피해자 인권 짓밟은 윤석열 정부 규탄 - 공탁 철회 긴급기자회견’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
ⓒ 권우성 |
몸져 누운 거리의 투사 양금덕 할머니
"돈 때문이라면 진작 포기했지요. 나는 일본에서 사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습니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째입니까? 우리 정부 무슨 말 한마디 못하고 있지요. 왜, 무엇이 무서워서 말 한 자리 못합니까?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돈도 내놓으세요. 다른 사람이 대신 주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일본에서는 양금덕을 얼마나 무시할까요?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준다면 절대로 받지 못하겠습니다."
(-2022.9. 양금덕 할머니가 광주를 방문한 박진 외교부장관한테 건넨 편지 중)
2023년 5월부터 병색이 짙어진 양금덕 할머니는 몇 차례 투병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 사이 치매 판정을 받은 양금덕 할머니는 더 이상 집에 생활하기 어려워 2023년 11월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그때부터 12개월째 투병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 온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2022년 9월 1일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나는 일본에서 사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습니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째입니까? 우리 정부 무슨 말 한마디 못하고 있지요. 왜, 무엇이 무서워서 말 한 자리 못합니까?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돈도 내놓으세요. 다른 사람이 대신 주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일본에서는 양금덕을 얼마나 무시할까요?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준다면 절대로 받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양금덕 말을 꼭 부탁, 부탁한다고 부탁합니다"라고 썼다. |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최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심규선 이사장이 광주를 방문해 가족측과 접촉을 갖고, 제3자 변제에 합의키로 한 사실을 인지하고, 가족 측에 "할머니의 지금까지 유지해 오신 명예와 존엄이 지켜질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거듭 부탁드렸지만, 결국 무위에 그쳤다.
할머니는 치매로 인지능력이 박약한 상태며, 의사결정이나 표현도 매우 어려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판결금 수령이 온전히 할머니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다.
입장
경위를 모두 알수 없지만, 일본의 사죄와 미쓰비시의 배상을 위해 앞장 서 온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역사정의를 세우기 위한 발걸음이 여기서 멈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상기할 것은, 양금덕 할머니 측의 좌절은 윤석열 정권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일본이 하나를 요구하면 두 가지를 스스로 내 준 윤석열 정권의 친일 퍼주기 외교, 피해자의 목소리를 압살하기 위해 헌법 취지를 위반해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 성취마저 뒤엎은 윤석열 정권에 그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윤석열 정권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 매각 사건에 대한 판결을 가로막고,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는 것까지 방해에 나섰다.
일본과 공조해 국가가 자국민의 목소리를 이중, 삼중으로 협공 압살하는 상황에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6세 양금덕 할머니 측의 선택지는 갈수록 협소했다. '사죄'가 우선이라던 96세 양금덕 할머니는 결과적으로 피해자 압살해 온 한일 공조에 의해 무릎이 꺾였다.
양금덕 할머니의 역사 투쟁은 여기서 멈췄지만, 윤석열에 맞선 역사 정의 투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2024년 10월 24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3자변제 기관 "양금덕 할머니 자녀와 협의... 오늘 입금" https://omn.kr/2ao8d
▲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와 변호사들과 함께 나고야지방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1999년 3월 1일. |
ⓒ 나고야소송지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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