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한 '밥하는 아줌마' 폄하... 불평등 배우는 아이들

박내현 2022. 11. 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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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의 유령, 학교 비정규직 여성 이야기 ③] 작가 박내현?

[박내현 기자]

교육 현장에 유령 노동자가 있다. 90%가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교직원의 40%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돼 온 돌봄노동이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 그대로 옮겨왔고 임금노동으로 '공식화'됐다.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학교의 많은 직군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적은 인력으로 힘든 일을 시키며 저임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 예산이 넘쳐나도, 국가는 비정규직 노동권 향상을 위해서 예산을 배분하지 않는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공공 교육·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들, '학교 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급식조리사, 특수교육지도사(특수교육실무사), 청소실무사, (초교병설)유치원 방과후전담사, 돌봄전담사의 이야기를 6회의 연재를 통해 전한다. - 기자 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급식실 조합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관 계단에서 학교급식실 폐암 산재 대책 마련과 노동환경 개선 예산 편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 하고 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것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돼야 하는 거냐?"

2017년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을 앞두고 나온 한 국회의원의 말이다. 당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엔 '이 사람은 100인분 이상의 밥을 해봤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동네 아줌마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그의 말에는 급식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무지, '밥하는 노동'에 대한 비하, 동네 아줌마에 대한 '폄하'가 골고루 담겨 있었다.

급식, 돌봄, 청소 모두 우리가 살아가면서 티 나지 않게 끊임없이 해야 하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이다. 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 말끔하게 치워진 집, 깨끗하게 세탁한 옷, 제시간에 먹을 수 있게 준비된 식사는 모두 누구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럼에도 그럴싸하게 '재생산 노동'이라고 부르는 이 노동들은 여전히 '그림자 노동'으로 존재한다.

위의 국회의원이 한 말로 돌아가 보자. 별 게 아니라고 한 학교 급식 조리사의 평균 식수 인원은 1인당 130명에서 170명으로 공공기관 평균인 65.9명의 2배를 넘는다.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만들면서 230℃가 넘는 고온에서 기름을 가열하며 발생하는 '조리흄'으로 인해 암 유발물질에 노출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려져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했다. 
    
'여성'이라서 단시간 노동을 원한다?
 
▲ 11.25 총파업 노동자라면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리사만이 아니다. 맞벌이 가정 등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학교의 초등돌봄전담사 역시 '애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소리를 번번이 듣는다. 집에 있는 자녀 한 명을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고 돌아서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게다가 자녀를 맡기는 양육자들은 돌봄교실이 돌봄만이 아니라 '교육'도 해주길 바라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생활을 지원하는 특수교육지도사는 종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때로는 지원하는 학생의 무의미한 폭언이나 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 휠체어에 깔리거나 여기저기 몸을 부딪쳐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녹초가 된다.

청소실무사 역시 처지는 다르지 않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시간에 출근해서 학교 구석구석을 깨끗이 정돈한다. 사람들이 들이닥치면 금세 다시 더러워질 공간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다. 반질반질하고 매끈한 복도와 말갛게 바깥 풍경을 비춰주는 유리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18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개최한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집담회 '우리는 여성, 학교에서 일하는 필수노동자입니다'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노동이 얼마나 축소돼 있는지, 저평가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학교 내 비정규직은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최대 300개에 달한다. 어떤 직종이 몇 시간을 일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노동자들은 8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하루에 적게는 3시간에서 6시간 정도 일한다. 집안일 때문에 혹은 자녀 양육 때문에 여성들이 오히려 시간제 노동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한다는 핑계를 대며 대량의 단시간 일자리가 계속 양산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이 일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가 없기 때문에 다들 끝나면 다시 알바를 해요. 그러니까 늘 피곤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이 안 좋죠."

10년 넘게 학교에서 일해 온 청소실무사의 말이다. 실제 코로나 시기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돌봄'을 강요받으며 일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닐 것이란 시선도 여성들이 자신의 일터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치원방과후전담사 이상혜 씨는 "반찬값 정도 벌면 되지 않냐"는 말을 회식 자리에서 듣기도 했다. 남성 생계부양자로 이뤄진 가족 형태가 줄어들고 이미 1인 가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현실을 이 사회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폄하로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반찬값 정도 벌면 되는 일'로 여겨짐으로 인해 전일제가 아닌 시간제 일자리로 설계되고 그나마도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뿐만이 아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학생들의 급식을 준비하는 조리사에게 학교 기념 행사의 음식을 맡기거나 꼭 필요한 위생교육마저 불필요한 일이라며 듣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다. 특수교육지도사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돌보다가 부상을 입어도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랑 지내다 보면 그 정도는 다칠 수도 있지'라며 산재 처리를 거부당하기도 한다. 학생이 청소해야 하는 구역의 청소를 거절하면 그 이후로는 복도에서 청소실무사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교사도 있다. 주어진 업무 이외의 일을 당연하게 요구하면서도 초과근무 수당은 '당연히' 없다.

"힘든 노동 속에서도 아이들의 인정으로 기쁨과 보람 느껴"
 
▲ 11.25 총파업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자.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그럼에도 분명 이 일에도 기쁨과 보람이 있다. 사탕을 가져다주며 깨끗하게 청소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거나 조용히 다가와 돌봄전담사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학생도 있고, 매일 밥 잘 먹는지 챙겨줬다고 졸업 후에도 급식 조리사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졸업생도 있다. 방과후만 전담하면 되는 방과후전담사지만 오전에도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언제든 필요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 이유는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빛나는 '아이들' 때문이다.

학교를 국·영·수같은 교과목의 지식만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때에도 수업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관계'만큼은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실제 코로나 이후 학교는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과의 관계 맺기에 애를 먹고 있다. 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면서 가장 먼저 접하는 작은 사회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학이나 영어만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길 바란다. 서로를 존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권리를 배우고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은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 노동 인권교육을 하는 외부강사이기도 하다. 청소년과 노동인권을 얘기할 때마다 되도록 학교 안의 노동을 다루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질문 역시 '청소 노동자가 없다면 여러분의 교실은 어떻게 될까요?' '급식 노동자가 없다면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에 머물렀다. 노동인권을 이야기한다면서도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청소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그들이 학생들과 함께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이 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교 안에서 청소년을 마주하는 사람은 '정교사'만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급식실에서 조리사를, 복도에서 청소실무사를, 돌봄교실에서는 돌봄전담사를 만난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은 특수교사만이 아니라 하루종일 자신의 뒤를 지키는 특수교육지도사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다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오늘도 함께 현재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학교와 국가가 학교 비정규직을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남겨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정규와 비정규로 나누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불평등'을 습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여성의 얼굴을 시간제, 보조, 저임금으로 기억하지 않도록, '밥하는 아줌마'로 생각하지 않도록 학교 전체가 이제 평등의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 11.25 총파업 비정규직이라서 차별 받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안전하고 일할 권리를 주장하며 11월 25일 여의대로에 뭉쳤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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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 연재는 지난 18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주최한 '우리는 여성, 학교에서 일하는 필수노동자입니다' 집담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내현 작가가 쓴 글입니다. 박내현 작가는 노동과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공동 저서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숨을 참다> <이번 생은 망원시장> <오늘은 맑음> 등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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