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절반이 울분 상태, 왜냐면
[김명근 기자]
기자말 |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기자 한 명당 하루 평균 13건 이상의 기사를 작성한다. 5천 개가 넘는 신문사 수를 고려한다면 하루에 최소 65,000개의 기사가 인터넷을 떠도는 셈이다. 이러한 정보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글을 읽기만 할 뿐, 정작 깊이 생각할 여유를 잃기 쉽다. '톺아보다'란 "샅샅이 살피다"는 뜻이다. 한 가지 사회 현안을 면밀히 들춰볼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을 나눠보려 한다. 당신과 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톺아보자. |
▲ 국민의 절반가량이 장기 울분 상태에 있다. 이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자료다. |
ⓒ 국민총행복전환포럼 |
전체적인 보고서의 내용은 다소 암울하지만, 이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유 교수가 정의한 '울분'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울분을 "부당함과 모욕 등 스트레스 경험에 대해 분노뿐만 아니라 깊은 좌절과 무력감이 동반되는 감정적 반응"이라 규정했는데, 이 정의는 울분과 억울, 우울의 감정을 따로 구분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사람이 울분을 느끼는 과정을 자세히 톺아보다 보면, 그 속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울분은 억울함이 누적된 결과
억울하다는 말은 결국 '공정하지 못하다,'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는 객관적 상황과 이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유영근, <우리는 왜 억울한가>
울분은 '억울함'에서 비롯된다. 이 억울함을 제때 풀었다면 '울분 사회'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원통하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감정이 생기기 전에 대체로 기존 지식과 동기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모와 학교로부터 "모든 사람이 소중하고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동기가 형성된다.
▲ 인구 사회적 변수에 따른 울분 점수 차이를 분석한 결과, 연령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2.5점 이상의 심각한 울분을 겪는 비율은 만 60세 이상(3.1%)에서 가장 낮았으며, 30대에서 13.9%로 가장 높았다. |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 |
직접 겪지 않은 사회 정치 사안에도 높은 울분(4점 중 3.53점)을 느꼈다.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 비리나 잘못 은폐, 언론의 침묵·왜곡·편파 보도, 안전 관리 부실로 초래된 참사, 납세 의무 위반이 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20대, 30대에서 가장 낮았으며, 심각한 울분을 느끼는 비율도 30대(13.9%)가 가장 두드러졌다.
억울은 층층이 쌓이고, 압축되다가 한순간에 폭발하는 법이다. 울분이 '터뜨리다', '토하다'와 같은 표현과 함께 사용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울분을 겪는 이들에겐 앞선 사회적 동기가 사라지고, 모욕감과 수치심 등 부정적 감정만이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열심히 해봤자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새로운 지식을 확립하게 된다.
그렇다고 부정적 감정이 반드시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불공정함을 바로잡고자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행동을 시도하게 된다. 그중에서 '정치 참여'가 대표적이다. 보통 울분을 느낀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분노를 표출하거나, 언론 제보 및 국민 청원 등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때로는 국가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겪을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2019년 9월 1일 홍콩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5대 민주화 요구안 수용을 위해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현장. |
ⓒ 이희훈 |
▲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감소했던 '음주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위 차트는 시군구 중앙값을 기준으로 통계했다. 월간 음주율 비중이 절반 이상이고, 고위험 음주율도 높은 편이라 관리가 필요하다. |
ⓒ 질병관리청 |
즉, 억울함이 쌓여 울분을 터뜨려 봐도 이를 수용할 공간의 부재로 우울감에 잠기게 되는 것. 우리는 현재 울분 사회를 넘어 '우울 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
'하나의 공동체'가 필요한 때
그렇다면 울분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장기적으론 억울함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겠지만, 당장에는 우울 사회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동체의 울분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 공간에서 현대사회에 맞는 '공정'의 개념을 합의하고, 사회적 동기와 지식을 재확인하며 '긍정적 감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국민청원제도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대책을 세우더라도, 그것이 개개인의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하나의 공동체는 때로는 서로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때로는 포식자의 위협에 맞서 뭉치는 정어리 떼처럼 연대감을 유지하며 집단 치유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곧 건강한 사회에서 울분은 정치 참여와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가 되며, 집단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확립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희망을 제공한다. 공동체의 힘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다.
좋은 삶을 위한 무대는 민주 정치 공동체이다. 시민은 정치 공동체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구성원이다. 잘 산다는 것은 이러한 시민과 함께 일하고 집단으로 공동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 마이클 왈저, <정치 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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