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땅, 백인 침공

피주영 2026. 3. 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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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댈러스 플래그(가운데)는 데뷔 시즌 경기당 평균 20.2점·6.6리바운드·4.5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AP=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백인 신인 포워드 쿠퍼 플래그(19·미국·2m6㎝)는 국내 팬 사이에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으로 불린다. 큰 키에 훈훈한 외모, 여기에 아직 1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실력까지 겸비한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플래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댈러스 유니폼을 입었다. 미국 출신 백인 선수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건 1977년 켄트 벤슨 이후 48년 만이다.

플래그는 데뷔 시즌부터 기대에 부응했다. NBA 홈페이지는 18일(한국시간) “부상병동 매버릭스의 핵심은 큰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신인”이라며 플래그의 경기력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전날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 2025~26시즌 정규리그 경기에서 21점 7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댈러스의 공·수를 이끌며 ‘괴물 신인’의 면모를 뽐냈다. 더 놀라운 건 시즌 기록이다. 플래그는 경기당 평균 20.2점 6.6리바운드 4.5어시스트(57경기)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필드골 성공률은 47.1%다. 이는 NBA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수퍼스타인 르브론 제임스(42·LA레이커스)의 데뷔 시즌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2003~04시즌 19세로 데뷔한 제임스는 20.9점 5.5리바운드 5.9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1.9%(79경기)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데뷔 연도는 22년이나 차이 나지만, 기록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남다른 투지도 돋보인다. 발목 부상으로 8경기를 결장한 플래그는 복귀전이었던 지난 6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전에서 18점을 터뜨렸다. 이날 만 19세 74일이었던 그는 통산 1000점(50경기)을 돌파했다. 제임스(만 19세 41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어린 나이에 세운 기록이었다.

플래그는 벌써 최초의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유타 재즈전에서 42점을 몰아치며 18세 선수로는 최초로 한 경기 40점대 득점을 작성했다. 제이슨 키드 댈러스 감독은 “플래그는 제임스와 닮은 구석이 무척 많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잠재력은 무한하다. 제임스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칭찬했다. 플래그는 듀크대 동료였던 콘 크니플(20·샬럿 호니츠)과 신인왕을 다투고 있다. 미국 팬들은 자국 출신 백인 스타 탄생에 환호하고 있다. 미국 백인 농구 스타는 1990년대 존 스탁턴 이후로 계보가 끊겼다.

플래그가 처음부터 펄펄 날아다닌 건 아니다. 시즌 초반 그는 피지컬 괴물들이 득실대는 NBA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괴력의 센터와 포워드에 밀려 고전하자 미국 국가대표 포인트가드 출신 키드 감독은 플래그에게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기며 적응을 도왔다. 팀 동료이자 베테랑 가드인 카이리 어빙(34)은 “부담을 덜어내라”고 조언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어빙도 전체 1순위 지명(2012년)을 받았다. 플래그의 마음을 가장 잘 안다”고 했다. 플래그는 “농구 인생에서 가장 흔들릴 때 어빙이 ‘잘하고 있다’며 격려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피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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