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OG_START::https://m.dcinside.com/board/singlebungle1472/1752782^#^끔찍끔찍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벌인 최악의 민간인 학살사건 - 싱글벙글 지구촌 마이너 갤러리^#^ - dc official App^#^https://dcimg2.dcinside.co.kr/viewimage.php?id=3eb4de21e9d73ab360b8dab04785736f&no=24b0d769e1d32ca73de885fa11d02831640a502277a2524bd91d28be791308300cb44dde996ade7c78d9d82481bb4bbaef2b6741522cca862fe927faa3943460f527729fbd926c776f53b061687b76d4c145124f146c8b5ca5bc5c2da0bb46f8d2315a9500::OG_END_}}
이거 보고 짤막하게 써봄
다음 내용은 한국군과 별개로 작전 수행 중이던 미 해병대 분견대 소속 병사의 증언임
군번 2302735, 미군 해병 연합작전소대 Delta-2 소속 본(J. Vaughn) 상병의 증언
2월 12일 월요일 13시 30분경 CAP D-2 해병대와 Sylvia 대위 그리고 Seacrest 하사관은 CAP D-2 서쪽의 제1루트를 통해 Phong Nhi 마을에서 작전 수행하고 있는 한국 해병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한국군은 마을에 포격을 가한 다음 자동화기로 습격을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집이 불타고 마을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민병대원 하나가 부상한 소년과 여자를 소대로 데리고 왔을 때 비로소 나는 한국군이 마을의 민간인에게도 총을 겨누고 있고 따라서 더 많은 부상자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5시경 우리는 Phong Nhi와 Phong Nhut으로 들어가 도와주라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의 경비대는 미 해군 5명과 민병대 26명 그리고 S-3로 구성되었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진 연구를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
우리는 동쪽 경로의 잠복을 고려해 Phong Nhi 근처의 넓은 루트를 선택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진에 기록되어 있다.
사진 A: 처음으로 간 집
사진 B & C: 타버린 집들
사진 D: 잿더미에 묻힌 채 죽어있는 마을 주민
사진 E: 마을 주민 두 사람이 이 불에 타 숨진 채 이 집에서 발견되었다
사진 F & G: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있는 여자
사진 H: 가장 큰 여자들과 아이들의 집단. 거의 모두 죽었음. 오른쪽 위의 여자와 아이들은 아직 살아있음. 사진 F & G에 있는 여자도 이 집단에서 찾았음
사진 I & J: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은 여자와 아이. 아이의 머리에 난 총상이 증거
사진 J1 & J2: 사진 I & J에 있는 여자와 아이가 발견된 집단
사진 K & G: 볏짚에 가려진 채 도랑에서 발견된 여자와 아이들의 시체
사진 M: 이 아이는 몸 어느 곳에도 상처가 없다. 근처 연못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임
사진 N: 총에 맞은 채 연못에서 발견됨. 사진 가운데 임신한 여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음. 머리 앞이 날아감. 왼쪽 위의 아이는 사진 M과 동일 인물
사진 O & P: 20대 초반 여자 두 손 모두 손가락이 찢어지고 왼쪽 팔에 부상함. 미군 병사가 치료하고 있음
마을을 돌며 사진을 찍을 때 발견한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시체 더미 주위에서 총알 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마을 주민 모두가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았거나 총검에 찔렸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진술서는 1968년 2월 17일에 미군 해병 J. Vaughn 상등병에 의해 작성되었다.
J. M. Campanelli, 미군 해병 소령
해당 내용의 보충 자료는 다음과 같음
그 유명한 채명신 장군이 보낸 문서
결론 : 퐁니마을을 지나서 퐁넛마을까지 직진신속하는게 원래의 계획.
퐁넛부근에서 1중대가 소총사격을 받자 이때부터 이성이 끊어져서 필요 이상의 잔혹성을 지닌 민간인 사살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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