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을 되찾는 소송, 11쌍의 부부를 응원하며

오승재 2024. 10. 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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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혼인평등의 문 열도록...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집단 소송을 지지한다

[오승재 기자]

 동성 배우자로서 피부양자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 mawales on Unsplash
동성(同性) 배우자로서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된 지도 엿새 남짓 지났다. 실명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밝힌 이름 석 자가 담긴 기사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반갑지 않은 일상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기도 했다. 평소 별나고 유난스러운 삶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사는 편에 가까웠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 염려는 기우에 가까웠다. 결론적으로 반갑지 않은 일상의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일상의 변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우연히 생일에 맞추어 나온 피부양자 신고 수리 소식을 본 가족, 친구, 지인이 선물이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고등학교 동창부터 선배, 과거에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 겨우 안면을 튼 정도의 먼 지인까지 '오승재' 이름 석 자를 보고 일부러 내 연락처를 찾아 "축하해!", "너무 잘됐다!", "결혼 축하해!"와 같은 응원과 축하를 보내준 것이었다.

물론 응원과 축하를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내 이름 석 자와 동성 배우자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신고 수리 소식이 담긴 기사를 보고 우려와 비판을 쏟아낸 사람도 있었다. 다만 나에 대한 조롱이나 비난은 거의 없었다. 그들끼리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한마음 한 뜻으로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동성 부부가 아니라 동성 파트너, 커플이니 수정하라!"고 외칠 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의 일상이 아니라 저들의 일상에 반갑지 않은 변화가 생긴 모양이라고.

드라마는 없었다, 권리를 되찾았을 뿐

동성 배우자로서 피부양자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기분 좋은 연락을 몇 통 받았을 뿐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갔다. 이사를 온 지역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보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다. 장을 보러가서는 오르기만 하고 내릴 기미는 안 보이는 물가 앞에서 크게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남편과의 일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이 밥을 해 먹었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한글날 휴일에는 침대와 소파에 누워 배달시킨 음식을 기다리며 넷플릭스를 봤다.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정색했다. 드라마틱한 변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일상 그 자체가 아닌가.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다. 나와 남편, 그리고 동성 부부 몇 쌍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은 이후 여러분의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는가. 십중팔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일상은 여러분의 일상대로, 나와 남편의 일상은 그 일상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동안 부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던 권리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간 것뿐이니 말이다.

오히려 일상의 변화가 생긴 쪽은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이 반갑지 않은 일상의 변화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동성 부부인 나와 남편이 아니라 말이다. 그들은 동성 부부의 권리 보장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단체로 나타나 댓글을 게시하느라 분주하다. 심지어 10월 27일에는 서울 도심 일대에서 동성 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연합예배 및 기도회를 열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동성 부부의 제도적 결합과 권리 보장을 막기 위해서 일요일 교회를 비우고 거리와 광장에 모이겠다는 일성이 여러모로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이미 해냈다, 그리고
 11쌍의 동성 부부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차별을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 maicopereira on Unsplash
대한민국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예배와 기도회는 권리와 자유의 영역에 속한 행사일 테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동성 부부의 평등권과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 예배와 기도회 자체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100만이 모이든, 200만이 모이든 동성 부부의 권리 보장은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권리는 기도나 예배가 아닌 헌법과 법률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기본이 아닌가. 더군다나 기도와 예배를 통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겠다는 발상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오늘(10일) 혼인평등소송에 나서겠다며 앞장선 11쌍의 동성 부부를 축복하고 싶다. 11쌍의 동성 부부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차별을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소성욱, 김용민 부부가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쟁취한 것처럼 11쌍의 동성 부부가 마침내 혼인평등의 문을 열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당연한 일상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해냈고 앞으로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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