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구조적 성장’에 베팅, ‘삼전닉스 쏠림’ 경고음도 커져

박유미 2026. 5. 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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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종가 기준 8000포인트를 넘긴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관계자들이 코스피 8000 돌파를 축하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코스피가 처음으로 8100선을 뚫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전에 밟아보지 못한 ‘30만 전자’, ‘200만 닉스’ 고지에 나란히 올랐다. 한국 증시의 반도체 쏠림에 대한 경고음도 함께 커졌다.

2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99.80포인트(2.55%) 오른 8047.51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첫 8000선 시대를 열었다. 장중에는 8131.15까지 치솟았다. 6거래일 만에 새 기록을 썼다. 이날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6581조원으로 세계 7위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올해 누적 상승률만 91%에 달한다. 주요 20개국(G20) 중 압도적인 1위다.

문제는 가파른 상승 폭만큼 비대해진 반도체 쏠림이다. 두 반도체 공룡으로 자금이 빨려 들어가면서 코스피는 사실상 단일 업종의 향방에 명운이 걸린 구조가 됐다. 이날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는 2.22% 오른 29만9000원, SK하이닉스는 5.72% 급등한 205만2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날 기준 49%에 달한다. 1년 전(21.77%)의 두 배를 웃돌고, 올 초(35.22%)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13%포인트 이상 불어났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번 랠리는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촉발한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감이 이끌었다. 시장에서는 AI가 메모리 업계의 고질적인 ‘호황 뒤 불황’ 사이클을 끊어냈다는 구조적 낙관론이 번지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132.7%, 203.1% 치솟았다. 미국 마이크론(138.1%)과 샌디스크(437.2%)까지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체가 광풍에 올라탔다.

그러나 투자업계에선 과도한 낙관론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25일(현지시간) “이례적인 메모리 주도 장세 속에서 반도체 산업 특유의 강한 경기 순환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AI 메모리의 독점적 지위를 흔들 기술적 변수도 부상했다. 구글이 지난 3월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배까지 줄일 수 있는 압축 기술 ‘터보퀀트’를 공개하면서다. 이에 대해 도이체방크는 “AI발 패러다임 변화에 지속 대비해야 한다”면서도 “실제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둔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해외 자산운용사들의 경고는 훨씬 직설적이다. 영국계 블루박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윌리엄 드 게일은 CNBC에 “메모리는 본질적으로 극심한 등락을 반복하는 끔찍한 산업”이라며 “‘이제 메모리 사이클은 사라졌고, 장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됐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업황이 급격히 꺾이곤 했다”고 짚었다. 영국계 JM핀의 존 컨리프 투자부문장 역시 “현재 주가는 공급 통제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과도한 낙관을 기반으로 한다”며 “쏠림이 심해진 만큼 시장은 급격한 조정에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올해 가장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인 한국 증시에 대해 차익 실현 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13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스탠다드차타드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 스티브 브라이스는 “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론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며 “투자자들은 일부 차익을 실현하고 글로벌 자산으로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쏠림에 기름을 부을 단기 변수도 대기 중이다. 오는 27일 국내 증시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의 2배 성과를 추종하는 레버리지·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이 상장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들 상품에 최대 5조3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상장 후 5거래일 안에 초기 유입 자금의 80%가 집중되는 만큼 단기 변동성 급증에 유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시장 지표들은 이미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의미하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22일 기준 36조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 묶인 빚만 처음으로 7조원을 돌파했다. 실제로 코스피가 8000선 이후 숨을 고른 지난 18~20일 사흘간 개인 투자자의 초단기 미수 거래에 따른 반대매매 물량만 3000억원 이상 쏟아지며 하락 압력을 키웠다.

‘한국판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26일 기준 68.09로, 이달 내내 위험 수위인 70선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통상 50을 넘으면 극단적 공포 구간으로 분류된다. 정현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와 변동성 지수의 이례적 동반 상승은 하락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나만 상승장에서 소외될 수 없다는 이른바 ‘포모’(FOMO) 심리가 결합된 현상”이라며 “이 같은 고변동성 환경은 증시가 언제든 극단적 충격 위험(테일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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