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여성 옆엔 항상 '불륜남편'…그 드라마에 숨은 판타지
‘굿파트너’ ’화인가’ 등 여주인공 옆엔 불륜남편
“자극적인 설정 말고 공감가는 서사가 중요해”
불륜은 안방극장의 단골 소재다. MBC ‘인어 아가씨’(2002), KBS2 ‘장밋빛 인생’(2005), SBS ‘내 남자의 여자’(2007) 등 오래 전에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막장’이라 불리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시청률 17%를 넘긴 SBS 주말극 ‘굿파트너’엔 바람난 남편을 둔 이혼 전문 스타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이 나온다. 동네 병원 페이닥터로 근무하는 남편 김지상(지승현)은 은경의 법률사무소 의학 자문을 봐주다가, 은경의 비서 최사라(한재이)와 눈이 맞아 이중 살림을 차렸다.
지난달 9.5%로 종영한 tvN ‘감사합니다’에도 불륜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대외적으로 신망 높은 유미경(홍수현) 부장은 자신과 위장 이혼하고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복수하기 위해 34억원을 횡령하려다 감사팀장 신차일(신하균)에 붙잡힌다.
이외에도 10년 전으로 회귀한 주인공이 불륜을 벌인 남편과 절친에 복수하는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 남편의 불륜 등으로 흔들리는 여성 지휘자의 삶을 담은 tvN ‘마에스트라’, 아들을 잃은 심리학자가 남편의 불륜녀 추적에 나선 MBC ‘원더풀 월드’, 유명 심리상담가의 가정에 닥친 위협을 블랙 코미디로 그린 MBC ‘우리, 집’ 등 올해 드라마의 키워드는 불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륜 안에 판타지 담아”
같은 불륜을 다룬다고 해도 설정은 과거와 달라졌다. 20년 전 드라마가 남편의 바람으로 상처를 받는 가정주부 이야기를 다뤘다면, 요즘 드라마는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런 여성 옆엔 사회적 지위 등에서 조금 밀리는 남편이 있고, 이 남편들은 아내의 주변 인물들과 불륜 행각을 벌인다. 결말에서 대부분의 남편들은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제작사 SLL의 김진주 PD는 “드라마 주인공은 동경의 대상이 돼야 한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주 타겟 시청층인 4050 여성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여성 캐릭터의 지위를 높게 설정하는 편이다. 또 복수의 과정이 조금 수월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못난 남편 캐릭터가 전개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과거엔 ‘남편이 사회생활하다보면 바람 필 수도 있지’라고 했다면, 요즘은 ‘여자가 일하면서 가정에 소홀하니 그렇지’라며 남편의 바람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부연했다.
여자 주인공 옆엔 못난 남편도 있지만, 직장에서 잘나가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왕자님 캐릭터도 존재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선 능력과 성격을 갖춘 재벌 2세가 나왔고, ‘굿파트너’에서는 동료 변호사 정우진(김준한)이 앞으로의 전개에서 차은경의 우산 역할을 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 중심으로 서사가 바뀌면서 불륜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 주인공이 가정에선 삐걱대지만 결국은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일과 사랑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여성들의 판타지를 녹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사에 따라 불륜 드라마도 흥망 갈려
비슷한 플롯으로 성공을 거둔 해외 작품도 있다. 앤 해서웨이가 젊은 사업가로 나온 영화 ‘인턴’,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흑인 여성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에도 불륜 남편이 등장한다. 시즌4 제작 중인 애플티비 시리즈 ‘더 모닝쇼’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유능한 앵커 알렉스(제니퍼 애니스톤)가 15년 동안 호흡을 맞춘 동료 앵커 미치(스티브 카렐)의 불륜으로 함께 위기에 빠지는 모습으로 이야기 물꼬를 텄다.
민용준 대중문화평론가는 "불륜 장면이 나와도 어떤 드라마는 불륜으로만 기억되고, 어떤 드라마는 성공한 여성 스토리로 남는다"면서 "결국 주인공 서사에 불륜이란 위기가 어떻게 잘 녹아들었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달 10부작 전편 공개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능력있는 여성의 재벌가 입성이라는 흥행 소재를 다뤘지만, ‘OTT 막장극’, ‘디즈니판 아침드라마’란 혹평을 받았다. 재벌가의 불륜이란 식상한 스토리를 그대로 차용했고, 유명 골프선수 출신의 자선 재단 이사장 오완수(김하늘)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알 수 없는 분노만 가득한 전개는 고리타분했다. 거짓과 모략, 불륜 등의 자극 만을 앞세웠던 SBS ‘7인의 부활’도 저조한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막을 내렸다.
정덕현 평론가는 “불륜을 다루는 방식이 자극에만 머무는 상투적인 방식일 때 ‘막장’이란 비난을 받는다.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자극을 위한 것인지, 진실된 관계를 위해 불륜이란 소재를 가져온 것인지 바로 구분한다”고 말했다.
또 ‘굿파트너’의 흥행을 예로 들며, “변호사가 집필한 드라마라 이혼 에피소드마다 현실감이 묻어난다. 남의 이혼을 숱하게 접한 변호사에게도 본인이 겪은 사랑의 배신은 큰 상처임을 보여주는 장치로 불륜 소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매번 나오는 불륜에 지겹다는 반응도
한편, ‘성공한 여성들의 걸림돌이 불륜 남편 밖에 없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하늘은 ‘화인가 스캔들’에 앞서 KBS2 ‘멱살 한번 잡힙시다’로 올해에만 두 번이나 불륜 남편을 뒀다. 장나라 또한 지난 1월 종영한 TV조선 ‘나의 해피엔드’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괴로워하는 사업가를 연기했다.
이들 작품 대부분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인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설정을 갖고 있다. 여성들의 직업은 매번 바뀌지만 불륜 남편으로 여성의 위기를 드러내는 방식은 같다. 김하늘은 ‘화인가 스캔들’ 종영 인터뷰에서 “요즘 인기 있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은 다 그런(불륜) 소재다. 우리 또래의 가장 자극적인, 흥행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공희정 평론가는 “예전부터 불륜 소재가 있었음에도, 최근 들어 유독 기시감이 드는 것은 불륜을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재미있는 설정 정도로만 그려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륜 설정이 필요함을 드러내는 대사, 전개 상에서 불륜이 주는 메시지 등이 있다면 시청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데, 대부분 자극적인 설정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민용준 평론가는 “불륜 자체로는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라면서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표면적으로만 표현하지 않도록 제작자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PD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이 불합리하고 불행한 결혼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걸 드라마 속 여러 선택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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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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