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수직하강하는 '쌀값'..식품업계, '쌀가공식품'으로 위기 정면돌파
기업들, 쌀로 만든 상품 개발로 소비 창출
가공식품 수출로 선회..대외 악재에도 인기
밥상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유독 국내 쌀 가격만 수직하강 하고 있다. 쌀 생산량이 늘어난데다 소비가 가파르게 감소한 여파다. 정부와 식품·외식업체들은 쌀 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쌀가공식품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56.9㎏로 1990년도 소비량인 119.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비품목 다양화와 서구화된 식습관, 1인 가구 증가, 간편식 선호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고위당정협의회 관련 국회 브리핑에서 쌀값 안정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45만t의 쌀을 시장 격리 조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쌀 시장 격리는 남아도는 쌀을 농협이 사들인 뒤 이를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는 쌀 의무 매입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곡창고, 건조장 심지어 냉장창고에까지 쌀을 욱여넣고 있는 데다, 공장 창고까지 빌리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산지 곳곳마다 쌀을 쌓아놓다 보니 ‘나락산성’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나왔다.
쌓아둘 곳도 없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올 들어 이미 작년 생산 물량을 사는데 7900억 원을 썼고 2년 보관에 8470억 원 가량 들였다. 여기다 최근 밝힌 45만t을 사는데에도 1조 원 가까이, 보관에도 1조 넘게 들어간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 식품업계, 국산 쌀 소비에 팔 걷어…“한류열풍 겨냥 수출까지”
국내 식품 기업들은 국산 쌀을 사들여 다양한 식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쓰고 있다. 국민들의 식습관이 변화함에 따라 단순히 밥을 먹어서 쌀 소비를 늘리자는 구호는 ‘현실성 없는’ 대안이 되면서 자구책 마련에 동참하고 있다.
밀가루를 대신해 국산 쌀을 넣어 제품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100% 국산 쌀을 활용해 술을 만들거나, 음료를 개발하는 등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추가 쌀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리온의 경우 국내산 쌀로 만든 과자들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산 쌀가루 원료를 사용한 ‘태양의 맛 썬’과 ‘치킨팝’은 8월 기준 합산 매출이 40억원이다. 오리온은 향후 마켓오 네이처 오!그래놀라 등 국산쌀을 활용한 신제품을 지속 출시해 나갈 예정이다.
이밖에 계약재배를 통한 농가 상생 역시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기업들은 농가와 연간 쌀 사용량 및 수매 단가를 함께 설정해, 연중 쌀값이 떨어지더라도 당초 함께 설정한 적정 공급가를 기준 삼아 ‘농가 수익 보전’에 기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출용 가공식품을 만들어 재미를 보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 등 여러 대외 악재로 수출 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농식품만은 예외다. ‘K-푸드’의 약진은 거침이 없다. 쌀가공식품 역시 고른 상승세를 보이며 농수산식품 수출 확대를 이끌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농수산식품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쌀 가공식품은 전년 동분기 대비 13.3% 상승한 9040만달러를 달성했다. 가정간편식에 대한 수요, 한국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즉석밥, 떡볶이, 막걸리 등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즉석밥·막걸리·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은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상반기에만 9000만 달러어치 쌀 가공식품이 수출됐다”며 “이는 전년 대비 13.3% 증가한 액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류 콘텐트의 영향력이 커지고, ‘한국 식품=건강’ 이미지가 확산하면서 농식품 수출은 활황을 이어가고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물류난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전 세계 수출 경기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한국산 농식품 인기만은 여전하다”고 자부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수입 밀가루 가격이 치솟자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쌀가루 ‘분질미(쌀가루)’ 연구에도 소매를 걷었다. 국내 쌀 소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글루텐 프리(gluten-free)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서 글루텐프리식품은 다이어트, 건강식으로 인식되면서 소비가 확산되는 추세다. 빵을 비롯한 시리얼, 스낵, 면류, 간편식품, 영유아식품 등으로 품목이 확대되고 있다.
다만, 식품업계 전반적으로 갈수록 제품 개발에 대한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고민거리고 통한다. 최근 과자 뿐 아니라 즉석밥 등 다양한 제품 개발에 있어서 외국산쌀 사용이 늘고 있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미를 꼭 사용해야 할 의무나 강제성이 없기도 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 제품의 특성이나 가격 등에 맞춰서 외국쌀 등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사들이는 정부미 양은 해마다 늘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식습관이 변했기 때문에 기업차원의 노력과 함께 정부차원의 근본책이 나와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