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 인구절벽 생존법]② 케어푸드 '개척자' 현대그린푸드, 이유 있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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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구 붕괴와 초고령화 사회가 유통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유통회사의 생존 전략을 살펴봅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인 현대그린푸드가 지난 2016년 '케어푸드'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케어푸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케어푸드로 식사하는 모습. /사진 제공=현대백화점그룹

오는 2025년 한국이 초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하게 되면서 고령친화식품이 새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케어푸드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2016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인 현대그린푸드는 노인 건강을 위한 식품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이듬해 국내 최초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연화식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니어 산업 팽창에 맞춰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사업을 기반으로 구축한 유통망과 사업 노하우를 활용해 케어푸드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방침이다.

9일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고령친화식품 시장은 지난 2012년 2조6700억원에서 2020년 4조4400억원 규모로 커졌고, 2030년에는 5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베이비부머 세대인 50~60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케어푸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21년 고령친화제품에 '식품'을 추가하고 '고령친화우수식품지정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현대그린푸드는 이 같은 사회적 흐름을 예측하고 케어푸드 시장에 뛰어든 선두주자다. 국내에 연화식 분류기준이 없었던 2016년, 현대그린푸드는 케어푸드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2017년 국내 최초의 B2C 연화식 브랜드 ‘그리팅소프트’를 론칭하고, 이듬해 859억원을 투자해 케어푸드 전문 연구제조시설인 ‘스마트푸드센터’를 설립했다.  2020년부터는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그리팅’을 운영하며, 당분과 염분을 조절한 맞춤형 건강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고령층 삶의 질 고려한 케어푸드

현대그린푸드가 지난 2020년 론칭한 케어푸드 브랜드 '그리팅' 제품 이미지 /사진 제공=현대백화점그룹

케어푸드는 씹기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음식을 부드럽게 만든 연화식(軟化食), 삼킴 장애가 있는 고령자를 위해 음료나 죽 등의 점도를 조절한 연하식(嚥下食)으로 나뉜다. 두 식품 모두 식품의 물성을 조절해 치아가 약해도 섭취할 수 있으며, 필요한 영양성분을 충분히 담는 형태로 제조·가공된 것이 특징이다.

이 중 현대그린푸드는 연화식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히 영양보충을 위해 삼키는 데 중점을 둔 연하식보다 일반요리와 비슷한 맛과 형태를 유지한 연화식이 고령층의 삶의 만족도를 높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린푸드 측은 "저작능력이 떨어진 고령층이 유동식 위주로 식사하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워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며 "우리 회사는 사업 초기부터 고령층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식단을 개발하려 했기 때문에 연화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령층 사이에서도 연화식 수요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화식은 부드러운 정도에 따라 3단계(치아섭취→잇몸섭취→혀로섭취)로 구분돼 각자의 치아상태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고령자뿐 아니라 환자식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이현순 식품진흥원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장은 "연하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80세 이상 고령자라 수요층이 좁은 편"이라며 "연화식은 70세 이상 되면 저작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교적 수요가 높고, 물성과 점도에 따라 단계별로 구분돼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케어푸드 시장은 장기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만큼 현대그린푸드의 성공적인 신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그리팅 사업이 포함된 현대그린푸드의 기타사업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박정숙 백석문화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액티브 시니어가 증가하면서 구매력이 높아졌고, 식품기업이 다양한 케어푸드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시니어층 중심의 가정배달식이나 혼자서 보충해 먹을 수 있는 식품 시장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통기업들도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CJ제일제당의 ‘헬씨누리’, 신세계푸드의 ‘이지밸런스’, 풀무원푸드머스의 ‘소프트메이드’ 등이 있다.

전방위적 협력 관계 구축

케어푸드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전문성 제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 교수는 "노년층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케어푸드에 골고루 포함돼 병원에서도 케어 식품을 섭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유동식과 달리 케어푸드는 건강보조가 아닌 식사 대용이기 때문에 양질의 단백질과 영양소가 충분히 들어간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대그린푸드는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연세대 치과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연화식 단계를 세분화하고 시니어 특화 케어푸드를 개발하기로 했다. 또 케어푸드연구소 ‘그리팅랩’에 지난해 28억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6억원을 추가 투자하며 그리팅 및 연화식 신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케어푸드 사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금융, 의료, 정보기술(IT) 등 이종산업과의 접점도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해 금융사,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노인의료복지시설, 의료기관 등 28개 기업과 제휴했다. 단순 케어푸드 제조·판매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케어푸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현재 회사는 KB라이프생명의 시니어 요양 서비스 시설에 케어푸드 및 고령친화형 식단을 공급하며 케어푸드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그룹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며 케어푸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종합 헬스케어기업인 현대바이오랜드는 지난해 8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네슬레헬스사이언스와 MOU를 체결했다. 여기에는 '케어푸드·메디컬푸드 공동개발 및 생산'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올 3월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유통업을 사업 목적으로 추가한 바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재 네슬레헬스사이언스와의 사업 협력을 바탕으로 종합 헬스케어 플랫폼 오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 중이며, 현대그린푸드의 케어푸드를 함께 제안하는 토털 헬스케어 전문 매장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헬스케어 시장에서 식이조절이 중요해진 만큼 그룹의 맞춤형 케어푸드 솔루션 제공 역량을 활용해 이종산업과의 제휴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린푸드 현대백화점 판교점 그리팅스토어 전경. 그리팅스토어는 건강식단, 건강반찬 등 그리팅몰에서 판매하는 케어푸드 제품과 비건·비타민 등을 살 수 있는 헬스케어푸드 특화 편집매장이다. /사진 제공=현대백화점그룹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