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거대한 실수… 흔들리는 미국의 패권

100일을 넘긴 이란 전쟁이 1장 반 분량의 종전 양해각서(MOU)로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이 시작한 이란 전쟁은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외교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100일을 넘긴 이번 전쟁의 결과물은 트럼프 자신과 일부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은 이란 전쟁이 촉발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고유가 고통과 안보 부담을 강요받았다. 중동 친미 국가들의 안보는 전쟁 전에 비해 더 불안해졌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틈새를 노리고 있다.
대니얼 바이먼 조지타운대 월시 외교대학 교수는 지난 16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전 세계의 미국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자신들이 (이란 전쟁의) 사전 협의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느끼고 있고 대부분은 이번 전쟁이 ‘실수’였다고 믿고 있다”며 “이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안보를 지원하는 일에서 한눈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SK·코리아재단 석좌도 “미국의 공격은 광범위한 경제적 여파나 미국의 동맹·파트너국들이 입을 타격에 대해 별다른 고려 없이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란 공습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이후에야 동맹에 전쟁 참여를 압박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을 향한 전쟁 지원 압박은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유럽은 전쟁 지원을 거부했고, 트럼프는 보복에 나섰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란 전쟁으로 미국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미 국방부는 지난달 1일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을 발표했다. 트럼프의 즉흥적인 미군 배치가 유럽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러시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도 트럼프의 일방적인 청구서에 내내 시달렸다. 트럼프는 지난 3월 14일 한국 등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파견하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후 한국 HMM 나무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당하자 다시 해협 탈출 지원이 목적인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에 합류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고심하는 사이 트럼프는 해당 작전을 단 이틀 만에 취소했다. 트럼프 행정부조차 며칠 지속하지 못한 군사작전에 동맹국의 등을 떠민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종전 합의가 동맹 회복의 전환점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국민일보에 “동맹국들은 대체로 미국의 이란 군사행동에 반대했기 때문에 현재의 분쟁이 종식 국면에 접어들고 대통령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 안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합의는 미국이 ‘평화적 해결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수용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군사행동을 넘어 장기적 외교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동맹국들의 대미 협력을 촉진할 것이란 기대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 후 중동 친미 국가들은 이란의 보복 공격에 시달렸다. 이란은 미국의 공습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에 있는 에너지 인프라와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중동 친미 국가들을 ‘인질’로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전에 없던 모습이다. 그럼에도 걸프 국가들은 중재 협상에 나서기 전까지 별다른 발언권이 없었다. 대니얼 바이먼 조지타운대 월시 외교대학 교수는 “미국이 중동 지역 파트너들과 사전 협의 없이 이란 전쟁을 시작한 데다 이들을 부분적으로밖에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동 파트너들은 불만을 품고 있다”고 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최근 보고서에서 “걸프 국가들은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조차 없는 (미국의) 억제력을 수용한 대가로 보복을 감내해 왔다”며 “한쪽은 위험을 부담하고 다른 쪽은 공을 독차지하는 이런 구조는 ‘비대칭적 의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사일러 고문은 “이번 합의는 이란과의 협정을 통해 중동의 긴장을 실제로 얼마나 완화할지 탐색해 보는 일종의 ‘시험 기간’을 제공할 것”이라며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의견 차이, 교착 상태, 위협 상황 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이번 전쟁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낳은 에너지 위기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경제 숨통도 틔웠다. 여 석좌는 “중국은 자신들을 더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글로벌 패권국으로 묘사하는 반면 미국은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세력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했다. 바이먼 교수도 “중국은 경제력을 활용해 자신을 안정과 이성의 세력으로 묘사하려고 노력 중이다. 러시아는 이미 유가·가스 가격 급등과 제재 완화로 이득을 봤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16일 “이란 전쟁이 세계 경제를 영구적으로 바꿨다”며 재생 에너지 강국인 중국과 산유국 러시아가 이득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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