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때 홀로 달리던 자율주행 버스 ‘그 회사’ [내일은 천억클럽]
지난 1월 중순 서울 시내버스 노조의 총파업으로 천만 시민의 발이 묶였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출근길 시민들은 대체 교통수단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굴렀고 텅 빈 도로 위 정류장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하지만 그 시각 서대문구의 풍경은 달랐다. 파업의 여파가 무색하게 승객을 태우고 정해진 노선을 묵묵히 달리는 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석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핸들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복잡한 도심 도로를 미끄러지듯 주행하며 불법 주정차 차량을 능숙하게 피해 가는 이 버스는 바로 라이드플럭스가 운영하는 서대문 자율주행 버스다. 노동력 공급 이슈로 도시 기능이 마비될 뻔한 위기의 순간, 자율주행 기술이 시민의 이동권을 지켜낼 대안임을 증명해보인 셈이다.
글로벌 자율주행 전쟁터에서 한국형 자율주행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있는 기업 라이드플럭스(RideFlux)를 집중 조명했다.

MIT 출신 공학도의 승부수
라이드플럭스를 이끄는 박중희 대표는 자율주행 분야의 정통 엘리트다. 서울대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율주행 연구가 논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도로 위에서 산업적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미 자율주행 스타트업 누토노미(nuTonomy) 등에서 쌓은 현장 경험은 그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박 대표는 “한국에도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많다”며 “이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문화만 갖춰진다면 국내 기술로도 충분히 세계적인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2018년 설립된 라이드플럭스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AI 드라이버 개발에 집중했다. 사람 운전자(Human Driver)를 대체하는 AI Driver as a Service(AI DaaS)를 통해 이동 수단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일관된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회사 미션이다.

하이브리드 AI 기술 차별화
라이드플럭스가 자랑하는 핵심 기술은 이른바 하이브리드 AI다. 업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규칙 기반(Rule-based)과 E2E(End-to-End) AI라는 용어를 쉬운 비유로 풀어보자.
운전을 막 배운 신입 모범생 운전자와 운전 경력 30년의 베테랑 택시 기사가 있다. 먼저 규칙 기반은 신입 모범생과 같다. ‘빨간 불엔 멈춘다, 중앙선은 넘지 않는다’처럼 교과서에 적힌 규칙을 칼같이 지킨다. 아주 안전하고 예측이 가능하지만 교과서에 안 나오는 돌발 상황, 예를 들어 도로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황해서 멈춰버릴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E2E AI는 베테랑 기사다. 이 모델은 하나하나 규칙을 따지기보다 수만 번 운전해본 직감과 경험(데이터)으로 운전한다. 복잡한 골목길이나 엉망인 도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빠져나가지만 왜 그렇게 핸들을 꺾었는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고 가끔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라이드플럭스는 이 둘을 합쳤다. 일명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평소에는 베테랑의 유연함으로 부드럽게 주행하다가 안전이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순간에는 모범생처럼 철저하게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복잡한 도로에서도 유연하게 달리면서도 돌발 행동을 막고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모범생의 안전함과 베테랑의 센스를 모두 갖춘 AI 기사를 만들어낸 셈이다.
웨이모, 죽스 게 섰거라
자본 효율성이 무기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은 ‘쩐의 전쟁’이다. 구글의 웨이모(Waymo), 아마존의 죽스(Zoox) 같은 선두 주자들은 수조원 단위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라이드플럭스의 누적 투자금은 약 752억원으로 경쟁사 대비 20분의 1에서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술 성과는 놀랍다. 박 대표는 “적은 투자금으로도 국내에서 무인화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서울 상암에서 국내 유일의 무인 허가를 받아 안전요원 없는 실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최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적은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한 것과 비견된다.
이런 효율성의 비결은 데이터 전략에 있다. 라이드플럭스는 단순히 주행 거리를 늘리는 보여주기식 운행을 지양한다. 대신 제주도를 초기 테스트베드로 삼아 도심, 고속화도로, 산간도로, 해안도로 등 다양한 도로 환경과 변화무쌍한 날씨 데이터를 단시간에 확보했다. 전체 순수 자율주행 시간 중 75%가 차량 5대 이상이 얽힌 혼잡 구간 데이터일 정도로 양질의 데이터 축적에 집중해왔다.
라이드플럭스는 여객 운송을 넘어 물류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주목하는 곳은 물류 거점 간 이동을 담당하는 미들마일(Middle-mile) 화물 운송 시장이다. 국내 택시 시장이 약 9조원인 데 비해 미들마일 시장은 약 30조원 규모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화물 운송은 자율주행 상용화의 최적지로 꼽힌다. 고속도로 위주의 정해진 구간을 반복 운행하기 때문에 도심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낮고 심야 운행 기피나 졸음운전 사고 등 인간 운전자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어 수요가 폭발적일 수 있다. 이미 제주 삼다수 등과 협력해 화물 운송 실증을 진행하며 트럭 시장에서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글로벌 격차·수익성 확보 숙제
라이드플럭스가 넘어야 할 파고도 높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를 좁혀야 한다. 박 대표는 미국 웨이모나 중국 포니AI 등 이미 무인 상용화를 이룬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99.9%의 신뢰도를 확보했지만 완전 무인화를 위한 나머지 0.1%의 안전성을 입증해 100%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수익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2028년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로보택시와 트럭의 대규모 상용화가 계획대로 진행돼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기술 완성도와 별개로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용화는 요원하기에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 개선과 지원도 절실하다.
라이드플럭스는 급한 대로 최근 200억원 규모의 프리 기업공개(IPO)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 누적 투자금 752억원을 달성했다. 이르면 하반기 코스닥 상장도 추진, 든든한 실탄을 확보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세계적 수준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부, 기업과 협력해 한국형 자율주행을 성공시켜 곧 토종 AI 드라이버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6호 (2026.02.04~0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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