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변천사’로 다시 읽는 100년 미술사 [김지은의 아트 레이더]
지금부터 100여년 전 이동의 엔진이 생물이던 시절,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1894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이대로 가면 50년 안에 런던의 모든 거리가 9피트(약 2.7m) 높이 말똥으로 덮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같은 해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도 “약 10만마리 말이 매일 쏟아내는 1100t의 말똥으로 뉴욕은 거대한 오물창고가 됐다”고 경고했다.
당시 도시 위기는 말의 속도가 아니라 말의 부산물과 운영 비용이 시스템을 마비시키며 발생했다. ‘피크 호스(Peak Horse)’가 가져온 절망적인 풍경에서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포드의 강철 엔진이었다. 1900년 뉴욕의 부활절 퍼레이드에 마차들 사이로 단 한 대의 자동차만 보였는데, 1913년 같은 장소에는 수많은 자동차 사이로 단 한 대의 마차만이 남아 있었다. 도시에서 말발굽 소리가 사라지는 데 1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대미술사에서도 수천 년 예술 전통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파괴적인 도약을 이뤄낸 ‘말의 순간’들이 있다. 그 시작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사진이었다. 1872년 당대 최고의 철도 재벌이자 훗날 스탠퍼드대를 설립한 리랜드 스탠퍼드는 2만5000달러(약 30억원)에 달하는 내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경마광이자 말 사육가이기도 했던 그는 “말이 전속력으로 달릴 때, 말의 네 다리가 동시에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에 걸었다. 반대파는 “말은 항상 최소 다리 하나는 땅에 붙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내기의 결과는 결코 순탄하게 오지 않았다. 1872년 시작된 내기는 기술적 한계와 머이브리지의 비극적 치정 사건이 얽히며 6년이라는 긴 정체기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인고의 시간은 오히려 셔터 스피드를 1000분의 1초까지 끌어올리는 촬영 기술의 혁신을 낳았고, 마침내 1878년 인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실의 1프레임’을 마주하게 됐다.
촬영 기술 혁신이 낳은 ‘진실의 1프레임’
AI가 촉발할 ‘창조적 인간’ 역할 재배치
말의 네 다리는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간 달리는 말을 그릴 때 화가들이 묘사한 네 다리를 앞뒤로 쭉 뻗은 ‘로킹 호스(Rocking Horse)’ 자세가 아니었다. 머이브리지가 세상에 내놓은 ‘질주하는 샐리 가드너’는 네 다리를 배 안쪽으로 잔뜩 웅크린 채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철도로 대륙의 시공간을 재편했던 스탠퍼드의 내기는 인류가 수천 년간 믿어온 시각적 관습을 단숨에 폐기했다. ‘관습적 시각’과 ‘기계적 사실’이 충돌한 미술사의 첫 번째 교통사고였다.
완벽한 재현이라는 독점적 권리를 카메라의 렌즈에 빼앗긴 화가들은 이제 자신의 불완전한 눈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돌려야 했다. 고민의 정점에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푸른 말’이 탄생한다.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 색채를 해방시켜 추상이라는 거대한 문을 열어준 그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4년 만에 끝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1916년 베르됭 전투에서 36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한편 1950년 포화가 쏟아지는 절망의 한반도에서 그려진 민화 ‘무신도(백마장군)’는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우선 말보다 장군이 크다. 칼 길이가 말 길이 만하다. 서양의 원근법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의미의 원근법’이다.

카메라의 기계적 사실에 작가의 예술적 진실로 응답하던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다시금 카메라를 든 조각가가 등장했다. 권오상은 대학 시절 ‘가벼운 조각’에 대한 고민 끝에 사진을 새로운 재료로 선택했다. 3미터에 달하는 작품 ‘기마경찰’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축구 훌리건을 제압하던 기마경찰을 모델로 한다. 보통의 말보다 1.5배가 넘는 거대한 사이즈에 압도된 작가는, 뒷발에 차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말의 엉덩이를 찍을 때면 멀리서 줌 렌즈를 당겨야 했다. 긴 촬영이 지루해진 말은 훈련장을 한 바퀴 돌고 올 때조차 자신을 향하는 카메라를 의식했다. 작가만큼이나 집요했던 말의 시선도 3000번이 넘는 셔터 소리에 담겼다.

병오년 말띠해의 화두는 더 이상 말이 아니다. 과거 도시를 마비시켰던 ‘피크 호스’ 시대를 지나 ‘피크 휴먼’의 정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현대미술사를 바꾼 결정적 ‘말의 순간’들을 복기해본다. 카메라가 미술을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세계관 구축이라는 전환점을 가져왔듯이, AI는 ‘도구적 인간’에서 ‘창조적 인간’으로의 역할 재배치를 촉구한다. 인류의 다음 장을 향해 달리는 가장 강력하고 빠른 말 위에 기꺼이 올라탈 준비가 됐는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7호·설합본호(2026.02.11~0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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