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오르면 수출에 좋다?”… 고환율 시대 ‘수익성 딜레마’
장기화 땐 80% 기업 이익률 하락
“경상흑자 늘어도 고환율 구조로”

달러당 1500원을 웃도는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수출 기업의 이익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환율 상승은 단기적으로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과 실적을 높이는 호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고환율이 길어질수록 물가 상승에 따라 생산 비용도 늘고, 이를 판매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되레 영업이익률이 감소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환율이 제자리로 돌아오던 한국 경제의 기존 공식도 옛말이 됐다.

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환율 변동이 수출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 오를 때 수출 기업의 61.8%는 원화로 환산한 이익이 늘며 영업이익률이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4년 수출 실적이 있고 재무 정보가 공개된 기업 1만8371곳을 분석한 결과다. 국내 기업의 약 70%는 수출이 수입보다 더 많은 ‘순수출’ 기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환율 장기화는 수입물가 인상에 따른 ‘수익성 딜레마’를 촉발한다. 환율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비용 증가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못하면 영업이익률은 낮아진다. 고환율 환경이 길어지면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기업 비중이 80.1%로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도원빈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의 영업이익률 상승 폭도 2% 포인트 내외에 불과했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물가 상승에 따른 파급효과가 이익 증가분을 상쇄했다”고 진단했다.
고환율에 따른 실적 여파도 산업별로 엇갈린다. 환율 10% 상승 시 생산자 물가에 미치는 간접적 파급 효과는 석유화학, 자동차, 자동차부품 업종 순으로 컸다. 국내 정유사나 협력업체에서 중간재·부품 등을 조달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 탓이다. 반도체 등 정보통신(IT) 산업은 제품 생산을 위한 핵심 제조 장비나 소재를 수입하는 탓에 직접적 환율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수출 증가·달러 유입 확대→환율 안정화’로 이어지던 역학관계도 희미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이전 경상수지 흑자는 대체로 환율 하락과 함께 나타났다.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달러가 환율을 끌어내리며 균형점을 찾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5년부터 경상수지 흑자가 커져도 환율이 오르는 경향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2023년 2분기 이후엔 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환율 상승 흐름이 상당 기간 동반되고 있다. 김지현·김민 한은 국제금융연구팀 과장은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민간의 해외자산 비중 확대와 미국 자산 집중 현상이 특히 이런 경향을 더욱 확대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출과 환율 공식이 깨지며 외환시장 관리는 더 까다로워졌다. 한은 연구진은 “단기적 수급 불균형 완화 대응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외환시장 심도 제도를 위한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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