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강사 접고 장애견 300마리 구조한 청년 [개st하우스]
“장애를 가진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해 치료하려면 큰 돈이 들죠. 그 돈이면 더 많은 유기견을 살릴 수 있지 않느냐는 댓글이 달리고는 해요. 저도 ‘이게 맞나’ 고민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마저 포기하면 장애견들은 기댈 곳이 없어요. 모두가 포기한 생명도 거듭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지난 8월 26일, 늦여름 녹음이 우거진 강원도 홍천의 외딴 산골 마을.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좁은 논두렁길을 따라 30분을 달리자 새하얀 펜션 한 채가 나타납니다. 햇살 아래 졸고 있던 개 두어 마리가 마중 나오고, 이어서 농구장 넓이의 앞마당에서 잡초를 솎아내던 청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유기동물 임시보호처이자 동물 동반 펜션인 ‘두푸딩 하우스’의 운영자 이현화(36)씨입니다.
현화씨는 본명보다는 인스타그램 활동명이자 저서 ‘결 고운 천사들’의 필명인 ‘두푸딩 언니’로 더 유명합니다. 활동 분야는 유기동물 구조와 임시보호. 직접 지은 개인 펜션에서 구조한 동물을 돌보고, 또 펜션을 임대해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동물 치료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두푸딩 하우스를 통해 입양자와 맺어진 유기견은 무려 300여 마리. 주로 입양 가능성이 희박한 장애견이나 크게 다친 개를 구조해 직접 돌보면서 얻은 성과입니다. 현화씨는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유기동물을 구조하다 보니 치료비가 많이 든다”면서 “펜션 수익에 더해 시민들의 후원이 쌓여 기적을 일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간 구조한 수백 마리 유기견 중에서도 현화씨에게는 유독 가슴 아린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폐쇄된 국내 최대의 사설 유기견보호소 애린원에서 구조한 9살 스피츠 믹스견 청아입니다. 청아는 앞다리가 안으로 휘는 안짱다리 장애가 있어 기어다니듯 걷는 데다 성격마저 소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화씨가 정성껏 돌본 덕분에 지금은 다리 장애를 딛고 여느 가정견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하게 달릴 수 있게 됐죠.
현화씨는 “청아는 그간 구조한 300마리의 장애견 중에서도 가장 애틋한 아이”라며 “장애를 딛고 달리는 청아와 함께 행복할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다”며 사연을 전했습니다.
현화씨가 처음부터 동물구조에 뜻을 품은 것은 아닙니다. 10년 전 그는 사교육 1번지인 강남 대치동의 입시 영어 강사였습니다. 고액 강의료를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고 있었지만 끼니도 거른 채 달리는 삶에 지쳐갔다고 해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참여한 유기견 봉사활동에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생명을 돌보며 얻는 보람이었어요. 그 뒤로 본업을 접고 전업 구조자에 도전하게 된 거죠.
다만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해서는 치료비를 포함한 운영비와 구조한 동물을 돌보기 위한 보호공간이 꼭 필요했는데요. 현화씨는 비용과 공간,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합니다. 평소에는 5마리 이하의 유기동물을 좋은 환경에서 돌보다가 고객이 동물과 함께 숙박을 희망하면 공간을 임대해주는 동물 동반 펜션 임대업을 떠올린 거죠. 그렇게 현화씨는 홍천에 임대용 펜션 두푸딩 하우스, 경기도 포천에는 임시보호처 핏어펫 쉼터를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장애견을 구조할 때면 현화씨의 SNS 계정에는 같은 질문이 꼬리표처럼 달립니다. 건강하고 어린 유기견도 넘쳐나는데 왜 치료와 돌봄이 어려운 장애견과 노견 구조를 고집하느냐는 물음이죠. 이를테면 구조견의 심장 수술비로 500만원이 들었다고 알리면 “그 비용이면 건강한 개 10마리를 살리는 게 낫지 않냐”는 식입니다. 이에 현화씨는 “저 또한 ‘큰 돈 들여 한 마리 살리는 게 맞는가’ 자문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저마저 포기하면 장애견들은 기댈 곳이 없다. 정성을 들이면 모두가 포기한 생명도 결국 거듭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청아가 구조된 애린원은 유기동물 봉사자들에겐 아픈 이름입니다. 2010년대 운영 당시에는 전국 각지의 유기견을 조건없이 수용해 보호 두수가 1000마리에 달하는 등 ‘유기견의 희망’이라 불리던 곳이었죠. 하지만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운영진이 중성화나 급여 같은 기초 관리조차 할 수 없게 됐고, 방치된 개들은 3000마리까지 불어났습니다. 애린원은 개들이 번식과 아사를 반복하는 끔찍한 ‘유기견 지옥’으로 전락했고, 결국 시민과 동물단체들의 항의로 2019년 폐쇄됩니다. 남은 개들은 동물단체 30여곳으로 분산 수용됐어요.
그중 입양 가능성이 적은 장애견과 노견을 포함한 1000여 마리를 수용한 곳이 바로 비글구조네트워크가 설립한 충북 보은의 쉼터였습니다. 안짱다리로 태어나 걷는 것조차 힘든 장애견 청아도 그곳으로 가게 됐고, 그런 녀석을 봉사자였던 현화씨가 발견한 겁니다. 사람을 피해 견사 구석에 숨던 청아. 하지만 매 주말이면 견사 청소를 하러 찾아오는 현화씨 품에는 안겼다고 해요. 현화씨는 “이대로 보호소에서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 사랑스럽고 가여운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청아가 장애를 딛고 가정견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현화씨의 품에서 청아는 1년간의 재활을 시작합니다. 먼저 휘어진 앞다리를 반듯하게 바로잡는 교정 수술을 2차례 받았습니다. 거액의 수술비에 수개월의 재활교육까지 도와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현화씨의 헌신적인 노력 덕에 청아는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여느 개처럼 달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습니다.
지난 8월 26일, 개st하우스팀은 홍천의 펜션에서 청아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입양 교육을 돕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하자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청아가 달려 나왔습니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도 전혀 짖지 않고 건네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더군요. 다만 사람이 안아서 드는 것을 싫어해서 도망다니더군요. 현화씨는 “청아가 안거나 쓰다듬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털을 손질하거나 동물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스킨십에 익숙해지면 좋겠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미애쌤은 해법으로 자발적인 스킨십 교육을 제시했습니다. 개가 원할 때 스킨십을 시도해 스킨십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방법인데요. 보호자는 손바닥 위에 간식을 올려두고 개가 스스로 간식을 먹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면 개는 간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보호자의 손바닥과 접촉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점차 범위를 얼굴에서 옆구리, 다리 등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30여차례 반복하자 효과가 나타났는데요. 청아는 스스로 사람의 손바닥에 얼굴을 갖다 대는 등 스킨십을 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였습니다. 미애쌤은 “스킨십의 주도권이 보호자가 아닌 개에게 있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애를 딛고 달리는 주인공 청아가 가족을 기다립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을 참조해주세요.
-9살 스피츠 믹스견
-암컷(중성화 완료), 6.5㎏
-슬개골이 건강하고 잘 달림. 실내 배변교육 완료
-성격이 소심하지만, 익숙해지면 다가와 장난기를 보임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인스타그램 @doopooding 혹은 카카오톡 doopooking으로 문의해주세요.
■청아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5번째 견공입니다 (105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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