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진의 껍질 벗겨내는 회계]
조세법률주의 원칙이 중요하듯이
요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그냥 줄여서 상증세라고 하자– 개편이 활발하게 거론된다.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며 부의 세대간 이전이 늘어나고, 젊은 세대 입장에선 상속이나 증여 이외엔 마땅히 목돈을 만질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영향도 있지 싶다. 그런데, 세무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현재의 상증세법을 보면 상속세 부분보다 증여세쪽의 규정이 복잡도 하고 분량도 많다. 누구라도 들어봤을 ‘일감 몰아주기’나 ‘일감 떼어주기’ 같은 규정들이 이에 포함된다.
뭐 쉽게 눈치챘겠지만, 이런 규정들의 배경은 거의 대부분 재벌 내지 큰 부자들의 우회적인 세대간 부의 이전에 대한 과세를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들은 사후약방문처럼 어떤 부자가 크게 해먹고(?) 나서 생긴 것이다. 하나의 규정이 생기면 또 다른 방법을 고안하고, 그러면 또 그에 대응해서 다른 규정이 생기고... 다시 반복. 이러다 보니, 점점 조항이 늘어난다.
그래서 상증세에선 '포괄주의' 개념을 도입해서, 아예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무상으로 얻는 경우에는 이를 증여로 보고 과세를 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규정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물론 부자들, 재벌들의 절세와 탈세를 넘나드는 우회적인 증여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조세법률주의의 대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최근 상법개정안에 대해 필자가 가졌던 생각도 사실 이런 포괄주의적 과세에 대한 느낌과도 비슷했다. 이사의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합병이나 분할 등 주요 경영행위에 대해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이사선임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같은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는 취지는 좋지만, 투기자본이나 행동주의 펀드에 악용되거나, 소송 남발 등으로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 특히 투자와 혁신과 관련한 과감한 경영의사결정을 저해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한화 총수일가 현금화 수단된 유상증자
그러나, 며칠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습적 3조 6천억원 유상증자 발표를 보며 – 사실은 그보다 얼마전 삼성SDI 유상증자 추진 소식에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 역시나 소액주주들을 위해선 좀 더 강력한 제도적 접근이 불가피하겠구나 싶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표 당시 “국방 산업의 수출 확대, 생산능력 확충, 글로벌 M&A 추진”을 유상증자의 주요 목적이라 밝혔다. 유럽과 NATO의 군수 수요 확대, 방산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3% 이상 급락, 고점이던 75만 원대에서 60만 원 초반까지 하락했다. 이후 총수일가측 인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서 일부 반등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이미 금이 간 상태였다.
별다른 예고 없이, 주가가 역사적 고점을 찍은 직후 발표된 대규모 유증이었다.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목적이라면 자사주 매각, 차입, 정부지원 등 다양한 수단이 있음에도 굳이 희석을 동반하는 유상증자를 강행한 배경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유상증자 직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조 3천억원 규모로 ‘한화오션’의 지분을 매입했다. 한화오션은 구(舊) 대우조선해양으로, 한화그룹이 인수한 조선 부문 계열사다. 문제는 이 지분을 매각한 주체가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총수 일가가 100% 소유한 비상장사다.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상장사 자금으로 총수일가 회사로부터 고점의 지분을 사들였고, 다시 이를 충당하기 위해 시장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셈이다.
이 구조는 투자자들에게 “총수일가의 현금화 수단”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 김동관 부회장(장남) 중심의 승계 구도를 이미 공고히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지주회사인 ㈜한화 지분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때 필요한 자금은 수천 억~수조 원에 달할 수 있다. 즉, 현재 지분 구조상 김동관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직접 현금을 가지고 ㈜한화 주식을 사들일 필요가 있는데, 바로 이 자금의 일부를 이번에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놓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솔직히 너무 뻔한 그림인지라 좀 당황스럽다. '아예 대놓고 이런 일을 추진하는구나' 싶어 그 당당함이 부럽기도 하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SK이노베이션의 SK온 물적분할, 최근에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추진까지 소액주주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총수일가나 대주주의 이익을 챙기고, 자기돈을 들이지 않고 승계작업을 이뤄내는 마술 아닌 마술들은 끊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13%이상 폭락한 것을 보면, 엄청난 재무적 지식이 없는 개미투자자들마저도 ‘에이 좀 심하잖아!’하고 느꼈나 보다. 계열사 주가까지도 동반 하락했는데, 이런 시장의 외면은 일종의 경고장이 될 수도 있다.
총수일가 중심의 꼼수가 반복되는 기업은 기업 이미지 훼손에 따라 주가는 저평가되고, 외국인·기관 수급도 이탈하면서 결국 기업의 성장성과 자금 유치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총수일가도 손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장의 (감시)기능만으로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우선 정보비대칭성이 확연하다. 일반 소액투자자는 ‘언제 유증할지’, ‘내부 거래 계획이 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한편, 총수일가는 정보를 먼저 알고 준비하거나, 합병·유증 시점을 직접 설정한다. 그러니 주가로 제재하긴 이미 늦어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게다가 소액주주들은 말 그대로 소액주주다. 지분 모두를 합치면 과반이 넘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잠자는 주주들’로서 주총에도 무관심하다보니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 관여가 힘들고, 결국 총수일가가 가진 20~30% 지분이 100% 권력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시장에서 문제로 인식해도 제도적 제어 장치가 없다면 꼼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즉 '기울어진 운동장' 이슈로 귀결된다.
상법 개정 '찬성'하게 한 특별한 사례
역설적이지만, 사실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상법개정안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사례가 되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발표는 2025년 3월 20일이었다. 그 직전인 3월 14일, 삼성SDI도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소액주주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이자,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전체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대주주 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대주주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훨씬 어려워지고, 합병이나 유상증자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커진다.
따라서 이들 유상증자는 ‘상법 개정 이전, 마지막 창문이 닫히기 전에 실행된 결단’으로 해석된다. 제도적 제약이 생기기 전, 총수일가 중심의 구조 개편을 밀어붙인 것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타이밍 탓에 오히려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지만, 어쨌거나 제도적인 개선 없이는 언제든 이런 식의 총수일가를 위한 유상증자 같은 꼼수가 반복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시장 기능은 단기적 경고는 줄 수 있지만, 제도 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러한 시도들이 더는 통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상법 개정은 그 출발점이다. 필자는 찬성이다.
※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겸 세무사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세무조정 업무뿐 아니라 실사, 경영진단,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교환 근무후 귀국해 SOX 404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내부통제 관련 컨설팅 업무를 했다. 2008년부터는 IFRS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으며, 2010년이후 KDB생명보험, ING생명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재무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회계와 세무, 기업구조조정, 경영기획 및 관리, 금융·보험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를 출간하고 강의로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