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만난 ‘현대사의 석학’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반 헌법적인 12·3 비상계엄 ‘광주’ 경험 덕분에 초기 진압
극우 준동·진보 대안 미흡 ‘혼돈”
’“윤석열 검사독재는 퇴행 그 자체박근혜 국정농단과 결이 달라
전두환보다 과격하고 찌질하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은 1987년 10월 항쟁 이후 다져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다.
친위쿠데타에 동원된 계엄군을 시민들이 막아냈고, 국회가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했다는 측면에서 허약함과 함께 놀라운 회복력도 보여줬다.
다만 이후 내란 행위를 옹호·지지하는 극우세력의 준동, 보수 정당의 방향성 상실, 진부한 관료 시스템과 안일한 보신주의, 진보 정당의 비전과 대안 미흡 등이 뒤섞이는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9일 새벽에는 극우세력 일부가 헌법기관인 서울서부지법에 침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등 사법부 테러 사태까지 발생했다.
광주일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 ‘민주 성지’ 광주를 주제로 꾸준히 책·논문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석학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유신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단독), ‘김대중 시대의 민주주의와 인권’(공저) 등 올해만 2권의 책을 내며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특강’, ‘독설’, ‘유신’ 등 그의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그의 논문은 인용 횟수 상위권에 항상 오를 만큼 독자, 연구자 등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인 한 교수는 이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었다.
기자를 만나자 3월 29일까지 사무실 한 켠에서 진행되는 전시회 ‘혁명의 리듬’의 작품들을 우선 소개하기 시작했다.
20여 개의 작품과 작가를 설명하며, 그는 과거와 현재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가 하나로 이어져 지금의 결과를 낳고 있으며, 현재가 과거의 행위를 규정한다는 의미다.
“80년 광주가 더 잘해라·더 힘내라 말 걸어”
한 교수는 지난 2020년 7월 펴낸 ‘민주주의 역사 공부 2 5·18 민주화운동’에 이렇게 썼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끝없이 광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1980년 광주는 우리에게 좀 더 잘하라고, 좀 더 힘내라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죽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지요.
광주는 우리 역사 속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 중 하나가 아닙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을 뒤집어 놓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구조 자체를 바꾼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계승해서 더 좋은 오늘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와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우리나라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의 대처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무엇을 하며 사는가.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다. 1948년 7월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이후 헌법을 파괴한 사람들 300명을 선별해 ‘반헌법 행위자 열전’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터진 것이다. 원고 5만 매를 출판사에 넘기고 이제 곧 교열을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별책 부록을 만들어야겠다. 원래 노태우 정권까지만 정리할 생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탄핵되었는데.
▲박근혜는 국정농단으로 금을 넘나들었다면, 윤석열은 아예 금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 버렸다는 점에서 결이 완전히 다르다.
=해방 이후 짧은 시간에 굴곡의 역사를 거쳐 구축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해 사고를 낸 것이다. 돌발적인 상황이지만,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게 되는 과정, 음주운전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과정에서 허약함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너무 빨리 발전한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계엄군보다 시민들이 먼저 국회에 도착해 막아낸 것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에서도 없었다. 허약한 부분도 있지만, 놀라운 부분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기괴하고 이상한 것이다.
이 쿠데타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던 힘 역시 광주에 있었다. 광주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이러한 일들이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44년여가 지나 친위쿠데타를 막아낸 것은 놀랍고 대단했다고 평가한다.
위기의 원인은 단기적으로 윤석열의 검사독재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무기와 법제로 통치를 하는데, 과거에는 무기를 든 군사들이 독재를 했다. 당시 군인들은 엘리트였고, 단순하고 과격한 측면이 있었다. 윤석열은 검찰독재를 했는데, 그들은 엘리트도 아니고, 단순·과격에 더해 무식하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최소한 민족과 공동체에 대한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살다가 전두환을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윤석열은 퇴행, 저열함, 찌질함 그 자체다.
“지배 세력 한 번도 제대로 교체된 적 없어”
=계엄 이후 보수의 극우화, 우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 사태는 보수의 민낯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정선거론은 이성이 몰락한 극단적인 어리석음으로, 이념적으로 오른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퇴락한 것이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민족,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데, 그들에게는 그저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일념밖에 없다. 역사 발전을 거쳐 추출된 헌법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가치마저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복잡한 절차에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지배 세력은 한 번도 제대로 교체된 적이 없다. 통일신라, 고려·조선 등이 1000년, 500년을 이어온 것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상징일 것이다. 조선 양반은 고려 호족의 연속선상에 있고, 조선의 주도 세력은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았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친미파가 되고, 다시 보수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의 500년은 양반이 나름대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하기도 했고, 땜질식 개혁도 했으며, 도덕성도 일부 갖춰 유지된 것이다.
지금 보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주 최부자집은 사방 100리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책임을 졌다. 그 사회를 유지할 책임감이나 도덕성을 가진 지배층은 사라져버리고, 자신의 기득권만 잡으려는 ‘앞잡이’만 남아 있는 것이다. 진영 논리 속에 내세울 만한 비전이 없다 보니 지역 감정에 의지하고, 그 동력이 떨어진 뒤에는 북한이나 중국을 이용하려 하는 정도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박철언, 박세일 등과 같은 건전한 보수가 있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가만히 있어도 퇴행인데, 뒤쪽으로 내달려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보수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다 같이 굴러가야 좋아지는데, 보수가 너무도 황당한 퇴행을 계속하니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역사에서는 진보보다 합리적인 보수가 이끌어야 더 발전해왔다. 진보는 꿈을 꾸고 악을 쓰며, 합리적인 보수는 이를 깨달아 수용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인적 자원이 왜 이렇게 축소됐는지, 왜 개혁적인 보수는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허송세월 보내”
=진보 세력 역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가 있는가. 상대적인 진보만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색깔론과 국가보안법의 제약이 그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진보 정부가 세 차례, 15년 집권을 했는데, 사실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망감만 안겼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정부다.
80%의 지지율에 취해서 개혁은 뒷전에 두고 박근혜 당시의 관료들이 만들어 놓은 정책을 표지만 바꿔 추진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집권 경험을 두 번이나 하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역할을 했는데도, 5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너무 화가 나는 부분은 촛불로 찾은 정권을 5년 만에 내줬다는 것, 노무현과 같은 매력적인 지도자를 허무하게 보내고 아무런 반성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목표만 있었으며, 정책과 사업으로 정교하게 시행해 가는 계획은 전무했다.
선의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검찰개혁, 부동산 정책, 남북대화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운동권들의 생각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우리는 지금 무엇을 갖춰나가야 하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보수는 진영 논리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엘리트주의, 혐오 등도 과감히 던져야 한다. 진보는 극우세력의 상수화에 대응하면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대타협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북한의 토지개혁에 자극을 받아 농지개혁에 나섰다. 당시 김성수 등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혁명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농민들도 그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타협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타협을 통해 출발했다. 당시 지주들은 땅을 내놓았는데, 지금 재벌들은 곳간이라도 풀어야 한다. 선의만 가지고 시작한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거친 제도들은 손질해야 한다. 보다 정교한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배 문제를 고민할 필요도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들에 대한 분배가 이뤄지고 나서 대한민국은 한 번도 제대로 된 분배가 이뤄지지 못했다. 1987년 대한민국과 2025년 대한민국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졌는데, 청년과 서민들은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공장에는 정규직, 도급, 용역, 사내하청 등 노동자의 신분이 모두 다를 정도로 복잡해진 양상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중산층이 절반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최근 강연을 다니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린이집 원아 15명 가운데 장래희망을 쓰라고 했는데 2명이 ‘정규직’이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있다면.
▲내란 진압을 우선 단호하게 해야 한다. 다만 하수인은 놔두고 배후와 뿌리를 캐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최소한의 책임자만 처벌했으면 한다. 처벌의 범위를 넓히면 새출발을 하는데 반발만 커진다. 과거사 정리는 가장 가까운 것, 즉 내란 행위를 제대로 정리하면 된다. 친일파 정리 같은 것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개혁은 단칼에 해야 하며, 집권 6개월 이내에 신속하게 조치해 공포와 불안감을 없애야 할 것이다.
보복 같은 것은 자중하고, 검사 탄핵 같은 졸렬한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개혁에 전력을 다하고 과감한 포용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우리 세대는 모두 후천적으로 광주의 자식이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에게 할 말이 있는가.
▲광주·전남 시도민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세대는 모두 후천적으로 광주의 자식이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1980년 5월은 한국 전체의 역사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줬다. 김대중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토호 세력은 영남이나 호남에 똑같이 존재하고, 광주의 새로움도 점차 사라져 마치 축소되어 가는 것도 못내 아쉽다.
전체적으로 볼 때 광주의 힘이 이번 내란 사태를 막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를 보다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 지금 광주를 잘 가꿨으면 한다.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죽을 줄 알면서 남아 있었던 사람들과 마치 어떤 드라마처럼 무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지금 대통령이 누구냐, 좋은 세상이 된 것이냐”라고 물어왔는데, “대통령이 유신 본산인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이고, 비상계엄을 한 윤석열”이라고 답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후대의 책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석열이 굉장히 못된 짓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소중함에 대해 세대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화 과정을 성찰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공부시켰으며,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놀라움과 감동,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부산의 집회에서 노래방 도우미라는 여성이 외쳤던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민주주의에,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외침, 한강 작가의 “1979, 1980년의 기억은 직접적으로 경험했든 간접적으로 경험했든,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밤중에 거리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 등을 기억해야 한다.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이 민주주의를 누가 지켰는지 기억해야 한다.
보수는 늦었지만 이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15~20%의 상수로 지리멸렬하게 사라질 것이다.
정계 개편도 예상할 수 있다. 민주당 내 진보 세력, 민주당 중도보수와 국민의힘 보수의 결합, 극우세력 등으로 삼분될 가능성도 있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광주 #전남 #민주주의 #보수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