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반도체 왕국' 인텔의 굴욕…퀄컴에 인수제안 받기까지
창사 56년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텔이 퀄컴에 매각될 처지로 내몰렸다. 인공지능(AI) 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이어, 반도체 패권을 되찾기 위한 핵심 사업으로 파운드리를 낙점했지만 막대한 투자 비용과 기술 격차에 발목이 잡힌 결과다. 퀄컴의 인텔 인수 시도는 반독점법의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지만, 한때 '반도체 왕국'으로 불렸던 인텔이 인수 위기에까지 봉착했다는 점 자체가 굴욕적이라는 평가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퀄컴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텔과 합병하는 방안 등 초기 단계에서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양사의 실제 대화 여부와 거래 조건에 대해서는 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접촉 사실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900억달러(약 120조원)가 훌쩍 넘는다. 이번 인수가 성사될 경우 최근 수년간 이뤄진 M&A 중 가장 규모가 큰 '세기의 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몰락은 전략적 실수와 AI 붐에 대처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인텔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윈텔(윈도우+인텔) 동맹'을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도 PC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해왔다.
그러나 PC 시장에 안주하면서 모바일 칩 시장 성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인텔은 여전히 'x86 아키텍처' 기반 PC·서버용 CPU 시장에서 75%대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주력인 PC·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경쟁사 AMD가 바짝 추격해오며 한때 90%가 넘던 시장점유율을 계속 빼앗기고 있다. 인텔의 올해 데이터센터 부문 예상 매출은 126억달러로 AMD(129억달러)에 밀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AI 열풍이 불고 있는 시장 변화도 읽지 못하면서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AI 칩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이다.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올드보이' 겔싱어 CEO의 책임론도 나온다. 팻 겔싱어(63)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3년 전 취임하면서 파운드리 사업에 수천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중국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파운드리 사업에 끼지 못하자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는 서비스 사업으로 인텔의 문화는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인텔은 지난 2년간 250억달러(약 33조원)를 쏟아부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글로벌파운드리와 타워세미컨덕터 등 인수를 통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섰지만 M&A는 결국 무산됐다. 특히 테슬라가 필요로 하는 자동차 자율주행에 필요한 칩도 인텔은 제공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인텔은 내년에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회사 비용을 100억 달러 삭감하며 주주 배당금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이런 계획을 발표하면서 겔싱어 CEO는 "AI 붐이 예상보다 훨씬 급격했고,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야만 한다"고 털어놓았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만약 퀄컴이 인텔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퀄컴의 반도체 사업 영역은 순식간에 넓어지게 된다고 평가한다. 모바일뿐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PC), 그리고 AI 시대에 더욱 각광 받는 서버용 반도체도 사업 품목으로 편입하게 되는 것이다.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의 36%를 차지한 세계 1위 업체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AP 출하량 점유율로는 대만 미디어텍(32%)이 퀄컴(31%)을 앞서지만, 퀄컴은 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AP를 만들기에 매출에서 앞선다. 시가총액은 인텔의 2배인 1880억달러에 달한다.
퀄컴은 영국 회사 Arm의 설계 지적재산권(IP)에 기반해 모바일 AP를 제작해 왔으나 최근 수년새 변화를 모색해왔다. 지난 2021년 반도체 스타트업 누비아를 인수한 후 PC용 칩에 오라이온 CPU를 적용하고 있고, 앞으로는 AP도 Arm 기반이 아닌 오라이온을 사용하겠다고 'Arm 탈출'을 선언했다. 퀄컴과 Arm은 누비아가 사용했던 Arm 기술을 퀄컴이 쓸 수 있느냐를 두고 3년째 특허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만약 퀄컴이 인텔의 소비자 컴퓨팅 사업부(CCG)를 인수한다면, 인텔의 풍부한 설계 기술을 흡수해 Arm으로부터 독립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WSJ 등 외신은 인수가 실제로 성사되기엔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등 벽이 높다고 분석했다. 인텔이 피인수에 동의한다 해도, 반도체 업계에서 인텔 정도의 거대한 기업 합병이 허가받은 사례가 드물어서다. 인수 제안 사실을 전한 소식통들도 이번 거래가 확실하지 않다며 주의를 당부했다고 WSJ는 전했다.
무엇보다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실제 두 기업 모두 중국의 반독점 당국에 의해 다른 회사 인수 추진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인텔은 이스라엘의 타워 세미컨덕터를 인수하려다가 실패했고, 퀄컴도 네덜란드의 반도체 회사 NXP 세미컨덕터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었다. 더구나 인텔이 미국 국방부와 최근 30억 달러어치 국방용 첨단 반도체 공급 계약을 맺는 등 미국 국가 안보에 직결된 회사란 점도 인텔 매각을 어렵게 하는 점이다.
인텔 인수를 강행할 경우 퀄컴은 각국 반독점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인텔의 일부 자산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WSJ는 "거래가 진행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며 "그럼에도 (인수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인텔이 지난 50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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