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그릇을 이어 붙이며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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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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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진 그릇 깨진 그릇은 그릇으로 가치를 상실한다. 그렇다면 더이상의 가치는 없는 걸까 |
| ⓒ 안소민 |
3년 전 이사 온 날엔 이삿짐센터 직원 분께서 내가 제일 아끼던 컵의 손잡이를 깨뜨렸다. 차마 버릴 수 없어 컵의 손잡이를 본드로 붙였다. 어설프긴 했지만 예전같은 형태는 갖추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깨진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본드로 이어붙이는 '재미'가 시작된 것은. 올해 들어 벌써 세 개째다.
한 번 깨진 그릇은 그릇으로서의 쓸모는 다 한 셈이다. 아무리 촘촘하게 본드로 마감했다 해도, 한번 금이 가서 미세한 파편이 떨어져 나간 것은 그릇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볍고 듬성듬성한 고체 덩어리를 잠시 넣어둘 순 있지만, 흐르는 것들은 담아낼 수 없다. 흐르는 것들은 틈새를 파고들기 마련이어서, 기필코 누수된다.
그런데 난 왜 이 깨진 그릇을 어쩌자고 다시 이어붙이는 걸까.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인데.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하는 것들인데, 구질구질하고 궁상맞으니까 그냥 빨리 버리는 게 상책 아닐까. 하지만 어떤 것들의 존재 의미는 내가 선점하기도 한다. 쓸모없어도 좋고 구실 따위 없어도 좋다. 더 이상 밥이나 국을 담는 식기류가 아니라는 위치만 내가 다시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쓸모'와 '용도'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쓸모와 효용을 따졌다. 꼭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마 그 숱한 고민들 대상 중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나' 아닐까. 나는 언제까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인간으로 소비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버틸 수 있을까.
얼마 전 두 살 아래 프리랜서 후배와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오십 줄을 바라보는 나이. 연차와 경륜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아슬아슬하고 빠듯하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에서 말이다.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각자 재미있는 '변신'을 해보자며 웃음을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러한 '변신'이 생각만큼 유쾌하지도, 녹록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더 이상 이 사회에 우리의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사회인으로서의 내 쓸모를 직시하며 마음이 누수되는 순간들을 오백 번 쯤은 지켜봐야 하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여기저기 금이 간 밥그릇이 갑자기 진품명품의 '진품'으로 둔갑하는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오랫동안 정을 붙였던 내 깨진 그릇의 쓸모가 아닌 '존재'를. 그것은 더 이상 밥공기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쯤으로 해두자. 고정된 시각만 바꾸면 깨진 그릇은 내 일상에 버려야 할 물건이 아닌, 하나의 오브제로 존재할 수 있다. 깨지기 쉬운 소재의 그릇은 파손 위험은 있지만 그 대신 일상에 크고 작은 충격을 준다.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그릇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존재의 전환이다. 그들은 별일 없는 한, 평생을 밥공기로 충실히 살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는 평생 플라스틱 밥공기로 살 것인가? 아니면 쓸모를 상실한 깨진 그릇이 될 것인가?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는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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